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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호텔] "너도 금방 죽어, 그걸 잊지 마!" 본문
오랜만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았다. 배우 김민희와의 불륜 이후부터 그와 그녀의 이름이 나온 연예기사들 밑에는 거의 비난 댓글들로 채워져 있고, 두 사람이 계속 함께 지내거나 결별을 하더라도 평생 대중의 비난은 피하기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영화감독으로서 홍상수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거장"이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좋은 필모그래피를 가졌고, 김민희 역시 "배우"라는 직업이 잘 어울린다. 둘이 함께 하는 영화 작업에서도 좋은 결과들이 있기에, 두 사람에게는 사랑과 일이 어디서나 자연스러울 것 같다. 나는 그들의 사생활보다 그들의 영화에 더 관심이 있다. 어쨌든 한국과 세계 영화계가 그 가치를 인정한 감독과 배우이다.
"정말입니다, 너무 아름다우십니다. 두 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풀잎들> 등, 최근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그와 김민희의 "증언"들을 듣는 것 같다. 삶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한 고민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언제나 "사랑"이다.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과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사연들과 그것들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들 속에서,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는 자신들의 심정과 고민을 말한다.
신작 <강변호텔>에서도 이전 영화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시인 고영환은 지금의 홍상수를 대변하는 것 같다. 은둔하며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영환의 삶은 흑백영화처럼 아무 색이 없다. 그 앞에 나타난 두 여자, 상희, 연주 그리고 영환을 찾아오는 그의 두 아들 경수, 병수 역시 색이 없는 삶이다. 이들은 현재 사랑에 실패했거나 이미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여자 없는 남자들과, 남자 없는 여자들 간의 대화들을 들려준다. 남자들의 대화는 "여자들이 무서워요."에 대한 주석이고, 여자들의 대화는 "남자는 우리랑 달라."에 대한 주석이다.
"미안한 것 때문에 인생을 살 수는 없겠더라고. 사람이면 진짜 사랑을 따라가야지!"
등장인물들 간의 짧은 대화에서 홍상수식 대화법이 가진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영화는 지루하고 잔잔하다. 홍상수 감독에게 딸이 있다고 했는데, 아마 이 영화는 자신의 딸에게 헌정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딸이 이 영화를 보면 "아버지" 홍상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너도 금방 죽어, 그걸 잊지 마!"라고 외치는 아버지의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순전히 한 편의 영화로서 이해한다면, 영환은 누군가에게 버림받는 것에 익숙하고, 버림받는다면 남자보다 여자에게 버림받기를 원한다. 버림받기 전에는 여자와 사랑을 했다고 믿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여자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남자가 되었다면, 죽음 외에 다른 선택이 있을까? "사랑 아니면 죽음을 달라" 같은 영화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故 마광수 교수가 생각났다. 그의 죽음에도 슬퍼하며 울어주던 여자가 있었을까? 영환의 죽음이 비참하지 않은 이유이다.
홍상수 감독의 새로운 신작 <도망친 여자>가 개봉할 예정이다. 아마 또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남자는 여자 없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것과, 여자는 남자를 미워하면서도 싫어할 수 없다는 것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이 가진 주제이다. 주제가 변함없다는 점에서 그의 영화들은 앞으로도 지루하겠지만, 봐줄 만은 할 것이다. "사랑" 때문에 이 땅의 거의 모든 인간들이 살고 죽는 것은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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