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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인간은 국가와 집단 내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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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인간은 국가와 집단 내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EAST-TIGER 2018. 8. 15. 08:22


한동안 영화 보는 것이 귀찮게 느껴져 책을 읽었다. 

한번에 2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 영화를 보는 것보다, 

하루 50쪽 정도 문학책을 읽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누군가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오랜만에 하게 되었고, 

그와 더 즐거운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나도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동안 그와의 대화는 한동안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나서 잠시 생각들을 정리한 후 습관처럼 이 글을 쓴다.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예전부터 영화 <타인의 삶>을 볼 기회들이 있었고 실제로 앞부분을 조금 보다가 멈췄다.

독일에서 이 영화를 본다는 것과 배우들의 독일어 대사를 집중해서 듣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Florian Henckel von Donnersmarck 감독의 연출과 음악 그리고 세트가 인상적이었고,  

고인이 된 배우 Ulrich Mühe와 독일의 국민배우들인 Ulrich Tukur, Sebastian Koch, 

Martina Gedeck, Thomas Thieme를 한 영화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에서 재현된 1984년 동베를린의 모습은 기존 색에 짙은 회색을 덧칠한 것처럼 탁했다. 

출연 배우들이 따뜻함이 전혀 없는 각지고 모가 난 조형물들에 손이나 몸을 접촉을 할 때, 

문득 추운 겨울날 아침 맨발로 화장실 바닥 타일을 밟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축축하고 회색빛 날씨들은 영화의 시간적 배경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시인과 배우의 삶이, 

통제와 감시를 추구하는 국가 권력의 실행들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연출은,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게 만들어 강한 설득력을 느끼게 한다.   

통일된 독일에서 동독의 국가 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거나 피해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국가가 직접 도움을 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공개되지 않는 국가 권력 피해 사례들이 있고,

다수의 피해자들은 국가가 인정하거나 협조하지 않으면 자신의 피해를 증명할 수도 없다.  

영화를 보면서 Peter Weir 감독의 <트루먼 쇼>가 생각났다. 


이 영화는 내 기억에 머물 것이고 누군가에게 추천할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들에 익숙해져요."


정치와 경제 이념으로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가 

"국가주의" 또는 "전체주의"와 연관되어 이해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국가가 사회와 국민들의 정체성과 생활양식들을 규정하고 통제하려는 시도들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나타난다. 

어느 국가의 역사든지 도청, 검열, 사찰, 납치, 감시, 감금, 고문, 조작, 암살 같은 단어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한 국가 권력들은 늘 소수의 사람들의 의지에 따라 행사되었고 그들의 의지가 사실상 국가 이념이자 법이었다.

인간이 국가 시스템의 부당함과 불법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저항할 것인지 적응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국가 권력은 그 선택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느 편에 서 있느냐에 따라 감시와 통제의 강도 역시 달라진다. 



"HGW XX/7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헌정합니다."


인간은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국가 권력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한국을 기준으로 출생신고를 하면서 태어났음을 국가에 알린다.  

학교 입학식과 졸업식 그리고 조회 때마다 당연한듯, 

모두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 

교육부 주관으로 이루어지는 학업성취도 평가시험을 정기적으로 봐야 하고,

대학에 입학하려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봐야한다.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만든 순간부터, 

국가는 주민등록번호와 지문만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성인 남자라면 징병을 위한 신체검사를 받고 등급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실행해야 한다.  

군대 밖에서는 만날 것 같지도 않고 친구가될 수 없는 사람들이 전우가 되어, 

서로를 의지하고 감시하며 같은 공간에서 일정 기간 동안 통제된 생활을 해야한다. 

전역 후에도 예비군 훈련과 민방위 훈련을 받아야 한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 회사의 요구에 따라 개인정보가 담긴 서류들을 제출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 각종 신고서를 해당 주민센터나 관청에 제출해야 한다. 

사망신고를 하면서 죽었다는 것을 국가에 알린다.  

이렇듯 인간의 삶은 단 한번도 "국가주의"와 "전체주의"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국가와 집단 내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일들과 할 수 없는 일들 그리고 애매한 일들이 있고, 

이 세가지 일이 어떤 비율로 있느냐에 따라 자유의 정도는 체감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와 집단 구성원들이 동등한 권리와 권력을 갖지 않는 이상, 

언제라도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삶과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의 삶"으로서 국가 권력으로부터 감시와 통제를 받더라도, 

인간과 인간 간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개인의 삶"은 계속된다.

인류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국가 권력과 시스템에 순응하거나 그것들에 의해 희생되었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그것들에 저항하며 죽거나 기어코 승리하여, 

국가 권력을 축소하거나 제한했고 시스템을 개선했다.

이것은 인간이 환경과 시스템에 적응하면서 그것들에 저항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 힘과 능력이 발휘되는 한 개인의 삶은 타인과 집단 그리고 국가 권력자들과 국가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다. 

영화에서 시인 드라이만과 여배우 질란트의 삶이 첩보 요원 비즐러의 삶을 변화시켰고, 

몇 년 뒤 베를린 장벽을 무너지게 한 것처럼.  

이런 점들에서 국가와 집단을 구성하는 최소 조건들이 "인간"과 그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국가와 집단의 권력 행사는 최우선적으로 개인의 자유 보호와 인권 신장을 위해 실행되어야 하고,

개인이 국가와 집단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의지와 선택에 따른 결과로서만 가능하다.

그 외에는 국민들과 구성원들이 합의한 법과 질서로 국가와 집단이 운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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