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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과 이념 이전에 사람을 보아야 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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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과 이념 이전에 사람을 보아야 한다.

EAST-TIGER 2010. 5. 31. 15:55


  6·2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 집에도 개인별 선거홍보자료가 도착했고 어느 때보다 두툼하다. 집 밖을 나가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후보자별로 열띤 선거운동을 하고 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웃으며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거나 홍보전단을 나눠준다. 선거운동에도 레벨이 있나보다. 어떤 후보는 용달차를 끌면서 대형비전에 홍보음악을 틀어놓고 선거운동을 하지만 어떤 후보는 피켓만 들고 직접 걸어 다니며 선거운동을 한다. 


  예전에 있었던 선거에 비해 많은 후보들이 나온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에 붙어있는 후보자 포스터들은 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길게 늘여져 있고 홍보문구도 요란하다. 매스컴에서는 각 정당별로 이번 선거를 임하는 마음과 선거활동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4년마다 있는 선거라서 그들의 의지가 느껴지고 스스로가 정당성을 자처하며 표를 호소한다. 유심히 보니 개중에는 낯 두꺼운 사람도 있고 표리부동한 정치인들도 눈에 띠었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8명의 후보자를 선택해야한다. 너무 많은 선택에 각 부분별로 후보자들의 공약을 보니 4명쯤 넘어가자 정신없다. 공약이 비슷한 후보들도 많았고 서로의 공약을 비판하는 후보자들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크고 작은 선거를 겪어오면서 공약이 나빴던 후보는 없었던 것 같다. 공약은 참신하기도 했고, 파격적이기도 했으나 공약을 지키는 후보는 많지 않았고 상황에 따라 변질되었다. 그래서일까? 선거는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하는 위대한 주권행사이지만, 선거에 나온 후보자들은 시민을 기만하는 거짓된 선동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젊은 나로서는 고민이 많이 된다. 어쨌든 이번 선거로 처음으로 정계에 입문하는 정치인들이나 기존 정치인들은 훗날 총선과 대선에서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란 무엇으로도 해석될 수 없기에 누가 진실한 사람인지 거짓된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무척이나 어려웠기에 우리나라 정치역사 속에서 기회주의자적인 정치인들은 득세를 했고, 소신과 정절을 지킨 정치인들은 바보취급을 당하며 죽음을 맞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20·30대는 선거를 통해 부정부패 정치인들을 척결하여 세상을 바꾸려고 들 것이고, 이후 세대들은 그것에 상관없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다. 서로의 방향성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신뢰이고 문제점은 신뢰의 완성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일부 시민들이 ‘자연적 노예’ 라고 말했는데, 이는 국가통치에 참여할 만한 충분한 이성을 갖지 못하고, 자연적 지배자인 다른 사람들의 이성과 명령에 따름으로 이익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정확한 지적이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공약이나 사람의 됨됨이를 보지 않고 정당이나 이념을 통해 이익을 추구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정치(正治)를 하지 않고 정치(情治)를 한다. 그래서 옳은 일에 옳다고 말 못했고 잘못된 일에 분개하지 못했다. 찬성에 대한 맹목적 반대와 이념의 양극에서 벌어지는 도발이 해방 이후 우리 정치역사의 대부분이다. 그래서 시민들과 정치인들 모두 신뢰를 잃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정당과 이념 이전에 사람을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기꾼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었다면 사기당하는 피해자들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은 잘 속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정당과 이념 속에 지금까지 속고 살아왔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후보는 정당과 이념 속에 갇혀 정치(情治)를 하는 사람이 아닌,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시정하려는 정치(正治)인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온전한 정치(政治)가 된다. 그것이 진정한 용기이고 선거에서 드러나야 할 시민의 참된 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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