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일기가 쉽게 쓰여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본문
이렇게 2월이다.
1월 말, 나는 독일 유학 이후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아,
흔히 '멘탈 붕괴' 현상을 겪었다.
나는 일주일 가까이 잠을 이루지 못했고,
몸 안의 세포들과 기관들은 긴장 상태로 부풀었다.
그리고 나는 가장 가깝고 절대적 후원자이자 현재 삶의 근거인 부모님께,
내 모든 감정을 쏟아내어 그들의 근심과 한숨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나를 그래도 지지하고 사랑한다.
순간 나는 그 '절대적 존재' 앞에서 부끄러워 힘겨워 했다.
언제였을까.. 그리고 나서 내 모든 것들은 어느 한 목표를 위해 폭발했다.
그 강렬한 폭발은 나에게 유학 초기 때의 의지와 마음을 기억하게 하고 다시 갖게 했다.
Frau Freude는 여전히 대학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Herr Freude는 지속적으로 그녀의 상태를 내게 말해줬고,
그녀가 곧 퇴원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예상되는 기일들을 몇번 알려줬지만,
그 예상들은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폐에 불규칙적으로 물이 차고 있다는 말을 해줬고,
집에 상주하는 간병인이 필요할 수도 있어,
경우에 따라서 내가 쓰는 방을 내어줄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즉 나는 이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
나는 순간 긴 한숨을 쉬었다.
Christian은 난민자 어학원 교사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단순히 어학 뿐만 아니라 난민자들의 고충까지도 상담하고 돕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여유로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단호히 내가 쓰고 있는 석사 논문을 교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Frau Freude와 Christian 모두 더이상 내 글들을 교정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순간 지난 학기에 라틴어를 공부했던 것을 안타까워했다.
차라리 더 빨리 논문을 써야 했던 것일까..?
잊혀지고 있는 라틴어 감각들은 내게 이렇게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순간 긴 한숨을 쉬었다.
붕괴된 멘탈을 다시 추스리고 나서 지도 교수인 Herr Mesch를 만나러 갔다.
거의 반년 이상 얼굴을 보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는 변한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짧게 내 지금의 상황들을 말했고 부탁을 했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테니 교수님도 저를 포기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는 짧게 말했다.
"나 역시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의 말은 지금 내게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소리치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잡생각이 들거나 스스로 힘겨워 할 때마다 계속 소리친다.
그것은 단순히 "할 수 있다", "절대 포기 하지 않는다" 라는 구호에 불과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욕설과 분노의 찬 괴성으로 바뀔 때도 있다.
그만큼 나는 유학 초기 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신은 그렇게 나를 깨우치고 단련시킨다.
그리고 언제라도 죽을 준비는 되어 있다.
나는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원래 넓었던 이마가 더 넓어진 느낌이 들고,
얼굴에 주름이 조금씩 생기는 느낌이 든다.
나의 몸은 세월의 흔적들을 남기려 드는 것일까..?
나는 누군가에게 '동안'으로 취급되며 호감을 받을 생각이 없고,
나이나 나의 신체적 어떤 것들을 숨기거나 속여서 어떤 목적을 달성할 생각도 없다.
세월이 지나 내 모든 몸이 허물어 질지라도,
나의 눈과 마음은 죽는 날까지 빛나고 강건할 것이다.
그것이 나를 '나' 답게 한다.
내리는 눈을 보았다.
분명 쌓이지 않을 것 같은 눈이었는데,
오래 내리니 쌓이기 시작했다.
그런 자연의 어리석음과 지혜를 보다보면,
나 역시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을 오간다.
3년 가까이 키우던 국화는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 국화가 진딧물의 습격과 삽목 실패로 죽게 되었을 때 생각했다.
"무엇인가.. 끝내야 할 때가 온 것일까..?"
항상 무엇인가 끝내거나 떠나야 할 때면 미리 찾아오는 사건들과 감정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끝내거나 떠난다.
독일 관념론을 주제로 한 논문을 분명 흥미롭지만,
그런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그리고 그런 논의들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그 이유는 그 논의들은 눈으로 확인하거나 증명될 수 없는 그 어떤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논문을 쓰면서 이 허상 같은 논의들에 흥미를 느끼는 것과 동시에,
왜 그들은 이런 논의들에 그렇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개념들과 글들을 남겼는지 궁금하다.
그건 어찌보면 반드시 한 쪽으로 기울어져 설명할 수 없는 영역과,
스스로 어떤 비판이나 비난에도 빠져나갈 '구멍'들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논문을 쓰면서 힘든 것이다.
막연히 철학을 떠올린다면 그것은 철학적인 동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철학적 논의들은 어느 정도 철학적 감각과 지식을 요구한다.
나는 그 감각과 지식들이 전무했다고 볼 수 있다.
신학은 철학과 비슷한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학문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그 둘을 비슷한 것으로 여전히 취급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정말 좋은 예이다.
나는 지금 철학적 감각과 지식이 겨우 조금씩 생기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3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리고 있다.
올해는 무조건 한국에 가볼 생각이다.
그리고 스스로 결단할 것이다.
더 공부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리고 그 두 가지에 대해 더 심도 있게 생각하고 고민하여,
앞으로의 삶을 어렴풋하게 그려낼 것이다.
결국 나는 노예가 될 것인지 자유인이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둘 다 쉽지 않다.
노예가 된다면 나는 죽은 듯 살 것이고,
자유인이 된다면 나는 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에 몸을 던질 것이다.
괴롭구나.. 이 가련한 존재여.
진영이와의 대화는 늘 기복이 있다.
그리고 그 기복은 이제 너무 익숙해서 그냥 두려한다.
가까이 다가오고 스스로 멀어지는 특기.
나는 여전히 '태양'처럼 그 가운데에 있을 뿐이다.
내 뜨거움에서 멀어질수록 차가워질 것이고,
가까워질수록 치열해 질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 가운데에 있을 뿐이다.
책 표지에 그려져 있는 Schelling의 얼굴을 보았다.
항상 굳은 표정이었던 그의 얼굴이 지금 처음으로 미소 짓는 듯 보였다.
도대체 나는 왜 이 사람과 이 사람의 생각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이 사람과 나의 삶이 조금 닮아 있다.
지금은 이 정도까지 밖에 말할 수 없다.
나는 계속 그의 철학 속에서 출구를 찾으려 한다.
일기가 쉽게 쓰여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나는 솔직히 내 상황과 마음, 생각들을 적는다.
언젠가 이 일기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때 지금의 감정들이 다시 잘 느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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