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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기있는 목소리는 오후의 위로였다

EAST-TIGER 2017. 2. 27. 07:33
2월 말이다. 

내 기억에 한 해의 3월이 이렇게 빨리 다가온 적이 있었던가..?

지금 기억에 없기에 나는 '지금' 이 순간에 느끼는 시간의 속도에 놀란다. 

분명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행되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생각나고 기억되어 있지만, 

그것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는

늘 그것들이 지향하고 있는 목표가 이루어지거나 관련된 기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아마 내가 시간의 속도에 놀란 것은,

그만큼 목표의 이루어짐과 기간의 지나감에 가까워졌다는 것일 수도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오기 전에 강풍을 동반한 비가 일주일 넘게 내린다. 

그래서 하루에 1-2잔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커피를 많이 마시고 있다. 


Frau Freude는 여전히 병원에 있고, 

그녀의 자녀들이 간간히 병문안을 하고 있으며,

Herr Freude는 거의 매일 그녀를 보러 병원을 찾는다. 

나이가 들면 신체 어딘가는 고장 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어디가 먼저 고장나더라도 불평할 수 없다. 

단지 먼저 고장 났을 뿐, 나머지들도 다 고장날테니까. 

신께 바라는 것은 그래도 그 고장의 시간이 좀 더 늦춰지기를,

그리고 그 고장이 너무 치명적이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독일에 온 이후 매일 나의 가족과 친구들, 공동체,

그리고 Herr Freude와 Frau Freude를 위해 기도한다. 

나는 어느 저녁에 병문안을 마치고 온 Herr Freude에게 말했다.

"단 한번만이라도 당신과 Frau Freude와 함께 이 식탁에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신이여 Frau Freude를 건강하게 하소서. 


요새는 사람들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어릴 때 장래 희망 란에 적었던 직업부터,

나이가 들면서 갖게 되는 여러 꿈들.

내 생각에 그 꿈들은 단 한번도 그 꿈들을 가진 자들을 배신하지 않았다. 

꿈을 가진 자들이 그 꿈들을 배신한다고 본다.

'현실'이라는 단어는 '꿈'이라는 단어의 생명력을 갉아 먹는다.

나 역시 그 '현실'이 단 한 조각이라고 내 꿈을 갉아 먹지 않도록 노력 중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무척 치열하다.  


악기 연습은 전혀 하고 있지 않지만, 

빅밴드 연습은 계속 하고 있고, 

솔로 연주를 해야 하는 곡들도 늘어났다. 

논문 집필로 인해 연습할 시간을 내는 것도 부담스럽다. 

언제 다시 나는 악기를 연습하며 나의 '시간'들을 가질 것인가..?

잠시 음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시기이다.


논문을 쓰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은,

논문에 언급 되는 사람들의 생각과 주장들을 이해하여,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글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고민이다.

여러 학자들이 쓴 참고 서적들을 읽으며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들도 있다. 

어느 날 나는 Schelling의 실천철학이 가진 의미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글로 표현할 수 없어서 아침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고민했고,

Kant의 실천 이성과 Fichte가 표현한 자아의 분할 가능성을 이해할 수 없어서 2-3일 고민했다.

고민 후에 쓰여진 글은 언제나 소중하다. 

그것들은 결국 나의 것이 되었거나 어느 정도 된 것이다.

이럴 때마다 '외국어'는 무척 힘겨운 소통 도구이다.


하루는 어머니와,

하루는 아버지와 길게 통화를 나누었다. 

나는 이 두 분의 조합이 환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두 분 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고,

그것에 대한 책임감과 성과 역시 확실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일의 성격에 유연하지 못하고, 

어머니는 일의 성격과 관계 없이 탁월하다.

그래서 아버지는 기존에 자신이 했던 일 외에 새로운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없고, 

어머니는 무슨 일을 해도 평균 이상의 능력을 발휘한다.  

나는 아버지가 65세 정년을 마치고 은퇴하신 것만으로 할 일을 다 하셨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공직자였으며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존경하는 인품과 언변을 가졌다. 

어머니는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압도하는 생명력과 의지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피가 내 몸에 흐르고 있다는 것에 신께 감사한다. 


지난 주 수요일 이후부터 감기 증상이 나타나 힘겹다. 

독일에 와서 두번째로 걸린 감기이고,

올 겨울만 두번째이니 실로 기이하다. 

점점 회복 중에 있지만 목소리가 가라앉고 가래를 동반하여 귀찮다. 

그리고 오늘은 코가 막힌다.

휴식을 많이 취하지 못해서 아쉽다. 


오늘 진영이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생기있게 느껴지고 재미있게 들렸다. 

처음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진영이가 아닌 줄 알았다. 

그리고 이것 저것 이야기 하는 것이 무척 유쾌했다. 

마치 가까이 있어서 지금 내가 사는 곳에 오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목소리일 뿐이다. 

나는 여기에 진영이는 거기에 있다. 

그래도 그 생기있는 목소리는 오후의 위로였다. 


예전에 친한 교수님이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독일 유학은 인내를 배우는 시간이다"

나는 이 말에 100% 동의한다. 

인내는 내가 얼마나 간절하고 치열한 지를 함축한다. 

그리고 그 인내의 끝에서 나는 또 다른 인내를 만날 것이다. 

결국 나의 삶은 인내로 시작해서 인내로 끝날 것이다. 

인내의 굴레를 벗어나는 순간, 

그것이 나의 한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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