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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박지성의 은퇴와 한국 축구 본문
아시안컵이 끝난 이후 이영표와 박지성이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두 선수는 지금까지 내가 본 국가대표팀 선수들 중 독보적인 존재였다. 이영표의 영리한 수비능력과 정확도 높은 크로스는 최고였고, 박지성의 폭발적이고 성실한 플레이는 축구선수를 넘어서 인간적인 귀감이었다. 이런 두 선수를 더 이상 A매치 경기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고, 한동안 A매치 경기에서 선수들과 축구팬들은 둘의 빈자리를 체감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박지성보다 이영표의 은퇴가 더욱 아쉽다. 두 선수 모두 다른 선수들로 대체될 수 없는 능력을 가졌지만, 이영표의 능력을 대체할 선수는 박지성보다 더 없다고 본다. 나는 그동안 A매치 경기를 보면서 이영표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한국 축구의 수비수준이 꽤 격차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늘 불안한 수비진에 홍명보 이후 믿을만한 수비수는 단연 이영표였고, 그는 자신의 포지션에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안정된 수비와 적절한 오버래핑, 그리고 빈틈없는 볼 키핑은 이미 아시아권을 넘어섰고, 조광래 감독 역시 그를 A매치 경기 때마다 거의 풀타임으로 출전시키며 신뢰했다. 나는 경기 도중 박지성이 교체되는 것은 가끔 보았는데, 이영표가 교체되는 것은 별로 보지 못했다. 그만큼 이영표는 한국 축구의 수비진에 유일한 ‘믿을맨’이었다.
그가 없는 국가대표팀 수비진은 상상하기 힘들다. 누가 그의 자리를 대체할 것인가? 비록 오른쪽 풀백이지만 아시안컵에서 차두리는 언론에서의 높은 인기와 따뜻한 인간미가 없었다면 전문가들과 축구팬들에게 질타를 받을만한 플레이를 보여줬고, 뛰어난 신체조건과 순발력은 좋지만 아직 수비능력과 크로스의 정확도는 떨어진다. 오히려 그는 수비수라기보다 공격수 같은 느낌이 들고, 나이도 서른이 넘었다. 이외에 김동진, 홍철, 윤석영은 더 많은 검증이 필요한 선수들이며, 이영표와 비교하기에는 A매치 출전 경험이 너무 적다. 이렇듯 벌써부터 이영표의 빈자리는 커 보인다.
한편, 박지성의 이른 국가대표팀 은퇴는 아쉬운 일이지만, 그의 말대로 부상에 대한 우려가 어느 때보다 심하다. 이미 심한 무릎부상을 당한 적이 있기에, A매치 경기들마다 풀타임 출전이 어느 정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맨유와 국가대표팀 중 맨유를 선택한 셈인데, 좋은 결정이다. 남은 3~4년 동안 현역시절의 불꽃을 더 타오르게 할 최적의 무대로 맨유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고, 한국과 아시아 축구를 위해서도 그의 선택은 존중받아야한다.
나는 그가 아시안컵 이전에 은퇴를 선언했다면 무척 낙담했겠지만, 아시안컵을 보니 그의 은퇴 이후 한국 축구의 세대교체가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 같다. 박지성의 멘탈을 갖추기에는 아직 무리겠지만, 미드필더에서 이청용을 중심으로 구자철과 기성용, 윤빛가람, 이용래 등은 확실한 인재이다. 이번 아시안컵은 그들을 위한 무대였고 원하던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앞으로가 무척 기대된다. 박지성의 은퇴가 이영표보다 덜 아쉬운 것은 잠재성이 풍부한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몇 년 뒤에 박지성 ‘선수’가 아니라 ‘감독’으로 만나게 되지 않을까? 흥미로운 상상이다.
끝으로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은 이번 아시안컵에서 많은 가능성을 보여줬다. 기존의 세트플레이나 특정선수의 능력에 의존한 플레이가 아니라, 미드필더로부터 공격수에게 연결되는 패스플레이와 센스 있는 플레이가 돋보였다. 충분히 우승할 수 있는 실력과 자질이 있었지만, 가장 아쉬웠던 경기는 이란과의 8강전이었다. 정말 근래에 보기 드문 한국의 일방적인 경기였는데, 90분 내에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연장전을 치룬 것이 아쉬웠다. 일본과의 경기는 한국과 일본 축구의 높은 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고, 월드클래스에 가까워졌다고 본다. 조광래 감독의 말대로 이제부터는 좀 더 정확도 높은 패스와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가 필요하고, 과감하면서도 정확한 골 결정력을 길러야 할 때이다. 분명한 사실은 짧은 시간동안 허정무 前 감독시절 때보다 진일보했다는 점이다. 나는 그 부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영표와 박지성의 은퇴로 한국 축구의 세대교체는 절정에 이를 것이다. 둘을 비롯한 2002년의 주역들이 이제는 현역에서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한국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또한 한국 축구 역시 새로운 스타 탄생을 준비하고 있고,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실력을 갖춰나가고 있다. 정말 머지않아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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