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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과 AI, 영화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EAST-TIGER 2011. 1. 14. 06:42


  새해부터 구제역과 고병원성 AI(조류인플루엔자)가 동시에 발생하여 가축과 조류에 대한 경계심이 커졌다. 특히 구제역은 지속적인 방역작업과 백신접종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140만 마리의 가축들이 살처분 되었다. 그런데도 구제역의 기세를 붙잡지 못했으니 앞으로 더 많은 가축들이 살처분 될 가능성은 높다. 게다가 살처분에 필요한 의약품마저 떨어졌고, 부족한 인력으로 인하여 방역작업에 나선 공무원 30여 명이 과로로 쓰러져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다. 후속조치로 피해 축산농가들의 시가 보상액만 현재 1조원에 가깝고, 백신 접종 비용만 수십억원, 방역 장비와 인력 동원에 수천억원의 비용이 들어감으로써 새해부터 정부는 의외의 비용출혈을 겪고 있다.


  현재 전국의 축산농가들과 조류농가들은 슬프고 불안하겠지만, 구제역과 AI는 인간이 만들어 낸 인재(人災)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구제역은 1934년 첫 발생 이후 66년만인 2000년에 다시 발생했고, AI는 1996년에 첫 발생 이후 2003년에 다시 발생했다. 이 둘의 공통점은 20세기에 이르러 처음 발생한 전염병들이고, 2000년대 이후에는 자주 발생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둘 다 아직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뚜렷한 백신이 없다. 


  언론매체를 통해 살처분을 당하여 매장지에 들어가는 가축들을 보면서 여러 장면들이 연상되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전쟁 중 전사자들의 집단 매장, 천재지변이나 건물 붕괴로 인한 매몰사고 등등.. 가축이 아닌 사람도 그렇게 땅에 묻힌다.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옆 동료들이나 모르는 사람들과 엉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은 얼마나 가혹한가? 하물며 같은 생명체이지만 인간보다 낮은 가치로 여겨져 살처분 당하는 가축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억울하다는 몸짓 하나 표현할 줄 모르고 순진하게 살처분 될 구덩이로 내팽개쳐진 가축들이 너무 가련하다. 가축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선택하지 못한 채 인간의 손에 죽었다. 


  살아있는 음식물 쓰레기를 땅에 묻었으니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강원 원주에서는 지난 4일 가축들의 피가 넘쳐 인근 도로로 흘러나오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경기 파주에서는 매장된 가축들에게서 피가 인근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지하수에까지 스며들기도 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농림부가 살처분 매장지로 집단가옥이나 하천, 도로에 인접하지 않은 장소와 사람, 가축의 접근을 제한할 수 있는 장소를 1순위로 정했지만, 지자체에서는 1순위 장소를 찾기 어려워 대부분 구제역이 발생된 농가 소유의 인근 경작지에 살처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실한 살처분으로 가축들의 피와 침출수가 새어나올 경우 구제역 확산과 2차 바이러스 발생, 토양·수질오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방역 당국은 이러한 가능성들을 낮게 보고 예방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오늘날 구제역, AI, 슈퍼 박테리아, 광우병 등이 발생한 원인이 무엇이고,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인간을 포함한 자연계에서 기존의 순리가 아닌, 개량된 방법이나 방식들은 늘 문제를 일으켰다. 마찬가지로 식용하기 위해 가축들을 기르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정상적인 사육이 아닌 비정상적인 사육을 추구한다면,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피해 역시 인간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가축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가축들은 자신들이 늘 먹었던 양식이 아닌, 인간이 주는 사료와 약을 먹었고, 주사를 맞았을 뿐이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이 왜 인간의 손에 살처분 당하여 죽는지 궁금해 할지도 모른다.


  날것으로 먹든 익혀서 먹든 육류음식은 언제 먹어도 맛있고 자주 먹고 싶은 음식이다. 그리고 먹는 순간 몸의 일부가 되어 기력을 회복하고 힘을 북돋는다. 그러나 이번 구제역과 AI 사태를 보면서 언젠가는 육류음식을 먹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과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을 보면 인간의 과실로 돌연변이 괴물이 나타났고, <레지던트 이블>에서는 T-바이러스로 인하여 인간이 좀비가 되는데, 이러다가는 영화가 현실이 될 수도 있고 언젠가 살처분 대상이 인간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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