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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천우신조(天佑神助)’ 라는 말을 실감한 나이지리아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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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천우신조(天佑神助)’ 라는 말을 실감한 나이지리아전

EAST-TIGER 2010. 6. 23. 13:24


  신이 도운 경기였다. ‘천우신조(天佑神助)’ 라는 말을 실감한다. 한국은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 비겼는데, 비긴 것이 신기할 정도로 운이 좋았다. 일단 월드컵 진출 55년 만에 첫 원정 16강을 축하지만, 16강 이후는 장담할 수 없고 아마 그 이후에 대한 대안이 없을 정도로 지금의 한국은 여러 면에서 매우 우려된다. 


  한국은 경기 초반 고질적인 부정확한 패스로 불안한 경기운영을 했다. 이청용의 득점찬스가 있었지만, 도리어 실점을 당하면서 중반까지 나이지리아가 경기를 주도해나갔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선수들이 터프한 플레이를 하면서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이 잦은 경고를 받았고, 자연스럽게 소극적인 플레이로 전환하자 한국에게 공격찬스가 많이 생겼다. 특히 박지성과 이청용은 공수를 넘나들며 경기 내내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많은 공격찬스를 만들었다. 그들의 의지는 대단했고, 나이지리아 수비수들을 계속 괴롭혔다. 결국 연이은 세트플레이에서 기성용의 센터링을 이정수가 득점하면서 좋은 분위기 속에 전반전을 마쳤다. 


  후반 초반에 득점한 박주영의 골은 천금과도 같았다. 그의 부진을 만회하는 골이자, 오늘 경기의 최대 하이라이트였다. 이후 공격에서도 그의 움직임은 좋았고, 좋은 찬스를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축구가 멘탈 스포츠라는 것을 후반전에 실감했다. 역전에 성공한 한국은 자만하여 무리한 플레이를 했고, 나이지리아 선수들도 방어하는데 급급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나이지리아 선수들은 안정을 되찾았고, 라예르베크 감독은 마르틴과 오비나 두 공격수를 넣으며 무섭게 한국을 몰아쳤다. 그러자 한국 선수들이 당황하기 시작했고, 결국 김남일의 실책으로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동점이 된 후 나이지리아의 맹공은 거셌고, 한국은 지키는 플레이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경기종료를 맞이했다. 첫 원정 16강의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16강이 확정됐는데 왜 기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지난 그리스전을 보고 월드컵에서 한국은 강팀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전을 보고 오늘 나이지리아전을 보니, 불안감과 실망감을 떨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부정확한 패스와 불필요한 드리블 후 공을 뺏기는 모습이 너무 불안하다. 오늘 경기를 보는 내내 한국선수들은 패스훈련부터 다시 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단적인 예로, 예선 세 경기에서 미드필드진부터 공격진으로 패스로 연결되어 만들어진 득점이 전혀 없었다. 또한 불필요한 드리블이 공수 가릴 것 없이 너무 많다. 차라리 빨리 걷어 내거나, 정확한 패스로 연결해야 하는데 왜 자꾸 망설이는 걸까? 아르헨티나전과 나이지리아전을 본 축구팬들이라면 당연히 의문이 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허정무 감독의 소극적인 전술운영과 의아스러운 교체타이밍이다. 이건 대단히 실망스럽다. 오늘 나이지리아전에서 동점이 되자, 지키는 플레이를 선택한 그의 판단은 일각에서 좋은 판단이라고 볼 수 있지만, 세계 정상급 수비수들이 아니라면, 역습 없는 수비적인 플레이에서 실점은 시간문제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 라는 말처럼 계속 나이지리아 선수들을 괴롭혀야 했는데, 지키는 플레이로 일관하자 나이지리아 선수들에게 많은 공격 찬스를 내줬고, 실점에 가까운 상황도 있었다. 마치 아르헨티나와의 후반전과 비슷했다. 그리고 왜 교체타이밍이 늦는 것일까? 벤치 선수들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벤치 선수들과 주전 선수들의 기량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것일까? 후반전에 선수들의 얼굴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한데, 교체를 하지 않는 허정무 감독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정말 운이 좋은 감독이다. 


  첫 원정 16강으로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며 글을 써야 했는데, 이런 글을 쓰는 나도 아쉽다. 지금 상태에서 16강 상대인 우루과이를 상대로 한국이 이길 가능성은 낮다. 차라리 멕시코였으면 좋았을 뻔했다. 개인적으로 이 국민적 축제가 16강에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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