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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고통이고 고통이 열정이다

EAST-TIGER 2019. 4. 1. 05:54

요란했던 태풍은 지나가고 봄이 왔다. 
일찍부터 봄꽃 주변들을 날아다니던 벌들이 태풍으로 인하여 자취를 감췄을 때, 
나는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그들이 어디로 갔고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일찍 피었던 수선화들도 거센 비바람에 힘겨워했고, 
며칠 동안 흐린 날씨로 인하여 해와 달, 별들을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밤에 창문 너머 떠 있는 맑은 달을 보았을 때 반가움을 느꼈다. 
집 옆에 있는 벚나무는 어느새 흰 꽃들이 만개했다. 
벌들은 다시 나타나 꽃을 찾고 집 지을 곳을 찾는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정도로 "빈 문서"와 마주하고 있고, 
이미 쓴 문장들을 고치거나 새로운 문장들과 연결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문단을 이루고 장을 이룰 것이다. 
쉽게 논박할 수 없는 글을 쓰는 것이 항상 내재된 목표이다. 
당연하게도 그런 글은 쉽게 쓰여지지 않는다.
계속 쓰고 다듬고 추가하고 다시 보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 

학문의 즐거움은 만물의 이치를 알게 되는 것에 있다. 
이치는 여러 가지인 것처럼 보이나 하나의 이치만 있고, 
하나의 이치를 알게 되면 보이는 것들 속에 이치가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치가 무엇이고 그것이 보여지고 느껴질 때 나는 웃을 수 있다.
위대한 사상가들은 자신이 파악한 이치에 대한 자기 변론이 가능했다. 
그 변론들은 하나의 이치를 말하고 있다. 

테너 색소폰 넥에 붙어 있는 코르크가 찢어져서 금요일에 수리를 맡겼고, 
화요일에 넥을 집으로 가져왔으나 접착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다시 가서 수리를 맡겼다. 
결국 수요일에 수리된 넥을 가지고 오케스트라 합주 연습에 참여했다.   
수리비는 한국보다 비쌌으나 사는 도시에 수리점이 한 곳 뿐이라 어쩔 수 없다.

 
Frau Freude는 집으로 돌아왔으나 이제는 휠체어를 타야 움직일 수 있다.
어느 날 오전에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오니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서 주방으로 갔고, 
그녀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고 그녀 역시 반가움을 표했다. 
"이사갈 곳은 정했나요?"
그녀의 말은 지난번 전화와는 다른 말이었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Freude 부부에게 그동안 여러 도움과 관심을 받았고 그것은 평생 기억하며 감사할 것이다. 
이제는 서로 작별해야 할 시간이고 그것이 전혀 기분 나쁘거나 아쉬운 일은 아니다. 
더 머무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서로가 잘 알고 있다. 
가끔 Herr Freude의 특유의 화법과 말투가 거슬리고, 
옆방에 사는 간병인이 하는 말과 태도들이 신경 쓰이지만, 
나는 이 집에서 큰 불만을 가질 수 없다. 
이별을 예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떤 경계가 점점 뚜렷하게 그어지고, 
그 경계는 서로 멀어지게 하고 차가워지게 한다.
Frau Freude와 짧게 대화한 그날 이후로,
한 집에 사는 Freude 부부와 나는 서로 피하는 듯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인간은 비슷하다. 

최근 색소폰 연습을 하면서 달라진 점은 알고 있고 연주할 수도 있는 것들을, 

의식과 무의식에 상관없이 연주할 수 있도록 연습하고 있다. 

한, 두 마디 정도의 프레이즈를 키를 바꿔가며 연습하고, 

그 프레이즈를 어느 곡에서든 연주할 수 있게 내면화한다. 

기본적으로 도미넌트, 메이저, 마이너로 2개의 프레이즈들을 12키로 연습한다.

실력이 늘고 있다는 느낌은 주어진 곡의 코드들을 보고 반응하는 나의 손과 그에 따른 소리에서 느낀다.

 

지난 토요일에 Christian이 오랜만에 방문했다. 

예전 같았으면 Freude 부부와 함께 식사를 했겠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나는 근래에 있었던 일들과 지금의 상황들을 적어 그에게 메일을 보냈고, 

그것에 대한 응답으로 그가 나를 찾아와 함께 대화를 했다.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Aasee 주변을 걸었다. 

자신도 Bali에 갔었던 적이 있어서 나에게 지난 여행이 어땠는지 물었다. 

서로 쓰고 있는 글들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함께 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그가 살고 있는 Gelsenkirchen는 익숙한 도시이고,

그 근처 Bochum에 살았을 때 알게 되었던 분들도 여전히 살고 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1-2번은 주일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갔었다. 

함께 살게 된다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대략 왕복 3시간을 기차와 버스에서 보내야 할 것이고,

지금 하고 있는 밴드들은 정상적으로 활동하기가 힘들며,  

그중 빅밴드와 오케스트라는 그만두거나 특별한 경우에만 참여하게 될 것이다.

집세는 조금 더 내야 할 수 있고 부가세 역시 유동적으로 내야 한다. 

지금 아니면 Christian과 함께 살 수 있는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막연하게 언젠가 함께 살 것을 원했고, 

함께 있는 공간을 연구소처럼 만들자고 했었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과 낯선 것들과의 조우.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4월 중순 이전에 결정을 지을 것이다. 

 

오케스트라에서의 활동은 지금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알게 한다. 

거의 4/4박자로 연주했던 나에게 6/8박자나 2/4박자 등은 낯설다. 

여러 악기들이 각기 다른 음들을 연주해서 하나의 곡을 만들기 때문에, 

나 역시 그 음들을 틀리지 않고 연주해야 한다. 

악보를 보는 눈과 연주하는 손이 함께 반응해야 한다. 

오케스트라에서의 첫 공연은 다음 주 토요일 오후 2시. 

 

빅밴드에서는 늘 하던 곡들을 연습 때문에 연주의 어려움은 없다. 

6월 말에 공연이 있고 그 공연이 이 밴드에서의 마지막 공연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해 보니 5년 넘게 이 밴드에서 활동 중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는 멤버들은, 

리더이자 지휘자인 Thomas, 테너 색소폰의 Andreas 그리고 기타의 Michael 뿐이다.

 

재즈밴드 "Jazz it up Blue"에서의 합주는 개인적으로 도움이 된다. 

스탠다드 곡들을 연주하기 때문에 낯설지 않고,

멤버들이 완전히 다 모인 경우가 올해 딱 한 번이기 때문에, 

기존의 곡들을 반복해서 연습을 한다.

주로 나와 Werner 그리고 Michael이 모여서 연습하고, 

즉흥 연주는 나 혼자서만 한다. 

매 합주 때마다 향상된 나의 연주를 느끼지만, 

이상하게 합주가 시작되면 연주하고 싶었던 프레이즈들보다, 

정말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프레이즈들을 더 많이 연주한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의 발전이다. 

 

오랜만에 Frau Freude와 주방에서 대화를 나눴다. 

쓰레기 봉지를 버리러 가던 중에 주방 쪽으로 눈을 돌렸더니 서로 눈이 마주쳤다.

봉지를 버리고 문을 열어 주방으로 들어갔다. 

휠체어에 앉은 그녀의 눈은 옅게 푸르스름했다. 

그 눈은 그의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듯 했고, 

창백한 무릎과 종아리가 보였다. 

"피골상접"이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몸은 야위었다.

"미안하게 되었네요. 당신을 이사가게 해서." 

지난번에 했던 말들을 대부분 반복했고 또 언젠가 반복할 것이다. 

상주하고 있는 간병인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듯 보였다. 

짧게 대화했고 서로 다시 만나 대화할 것을 기약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다행이었다. 

 

"친구"는 무엇일까? 

너무 쉽게 주변 사람들에게 "친구"라는 단어를 허락하는 것 같고, 

그 단어의 의미를 확인하기에는 쉽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 외에 다른 적절한 단어가 없어서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어쨌든 내가 "친구"라는 단어를 그에게 쓴다면,  

그에게는 어떤 친근함과 서로 맞닿아 있는 지점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이 나와 그를 대등하게 만든다. 

나에게 "친구"란 그런 대등한 존재이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이거나 어느 한 쪽으로의 기울어짐이 오래된다면, 

"서로 대등하다"는 느낌이 없거나 점점 줄어들 것이다. 

만약 누군가를 "친구"라고 부른다면,  

나는 그를 나와 대등한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고,

만약 내가 누군가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내가 그런 대등한 존재로서의 사람을 만난 것이다. 

 

오랜만에 영환이 형과 대화를 나눴다. 

일본 유학을 잠시 접고 한국으로 돌아간 다음, 

다시 어학 시험 보고 대학원에 입학을 목표로 하겠다고 내게 말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교육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고, 

나에게 도움을 부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로 만나기를 원하지만.. 엇갈린다. 

벌써 그렇게 엇갈린 것이 10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내가 언제 형을 마지막으로 보았던가..?

지금은 어두침침한 형의 자취방에서 함께 라면을 먹었던 기억이 생각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형의 말들은 "엘리트주의"에만 머물러 있다.

 

단비와 짧게 대화를 나눴고 원하던 모델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들 때문에 그녀의 일이 걱정된다. 

여전히 단비는 밝고 진취적이다. 

영일이 누나와 짧게 대화를 나눴다. 

육아에서 벗어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한다고 말했다.

어느 악단이나 밴드든지 피아노가 가장 고민이 많을 것이다. 

누나는 고민하는 음악가이다. 

어머니와도 짧게 대화를 나눴다.

평소에는 아버지와 대화를 하는데 어머니가 내 생각이 난다며 말을 거셨다. 

이사와 평소 생활에 대해 물으셨고 나는 그에 알맞는 말들을 했다. 

은미와 짧게 대화를 나눴다. 

오 교수님의 생신이 있어서 축하 인사를 드렸다. 

지혜가 결혼한다고 모바일 청접장을 보여주며 말을 걸었다.

 

오늘부터 섬머 타임이 시작되어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으로 좁혀졌다. 

1시간 정도 지나면 4월이고 개강이다. 

이미 지도 교수님과 메일로 대화를 나눴고 목요일 Kolloquium에서 만날 것이다. 

토요일에는 지난 한국 방문 이후로 5개월만에 이발을 했다. 

가끔 밤에 초를 켜서 복도에 둔다. 

기르고 있는 국화들이 꽃을 피우고 있으나 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널부러지고 펼쳐져 있는 책들은 책상 앞에 내가 앉기를 기다린다.

달과 별도 보이지 않는 3월의 마지막 밤은 안과 밖이 모두 조용하다. 

어떻게든 멈출 수는 있겠지만 내 스스로가 멈출 수는 없다.  

열정은 고통이고 고통이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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