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아직 집 안은 "겨울"이다 본문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큰 날들이지만 봄은 그런 차이에서 생겨난다.
수선화들의 줄기들이 조금씩 보이고 벌들이 새로운 집터를 찾거나 주변을 탐색한다.
두꺼운 파카를 벗고 가벼운 재킷을 입고 목이 높은 신발보다 가벼운 스니커즈를 신는다.
옆집 마당에 농구 골대를 설치되더니 아이와 그의 의붓 아버지가 농구를 하기 시작했다(원래 그들은 축구를 했었다!).
실내에서 두었던 국화 줄기들을 몇 개 잘라서 정원에 삽목을 했다.
낮의 길이도 길어져 밤은 점점 짧아진다.
겨우내 잠들었던 감정들은 점차 생기를 얻고 있다.
논문을 쓰고 있지만 진행 속도는 느리다.
일단 문장들의 연결이 자연스럽고 날카로워야 하기에 좀 더 생각들을 많이 하는 편이다.
여러 학술 논문들을 읽을 때 같은 문장들이 단어들만 바뀌어서 문단의 여러 부분들을 차지하거나,
글의 흐름이 거대한 담론으로만 진행되어 아무런 유익함을 느끼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석사 논문 역시 어느 부분들에서는 의미가 같은 문장들이 많이 등장했었다.
지금 쓰고 있는 논문에서도 분명 그런 부분들이 있겠지만 최대한 담백하고 분명하게 쓰고 있다.
분명하게 쓰기 위해서는 그 "분명함"에 명분을 주는 근거들이 있어야 한다.
그 근거들을 찾는 것이 어쩌면 속도가 느린 이유들 중 하나이다.
아주 강력한 다른 이유는 역시 나의 게으름이다.
즉흥 연주에 대한 한계가 느껴져서 이론적으로 접근하여 연습 중이다.
음악은 코드들의 통합과 분리로 구성되는데,
통합된 코드들 안에서는 즉흥 연주가 쉽게 이루어지지만 아이디어의 부족함을 느꼈고,
분리된 코드들 안에서는 어색한 음들을 선택하여 재빨리 반음 올리거나 내리는 연주를 했었다.
기본기에 충실하지 못하면 발전 단계에서 다시 그 기본기로 돌아가야 한다.
스케일과 코드음들을 기본으로 손의 움직임과 직관적인 반응,
그에 따른 멜로디의 유의미함을 코드들 내에서 발현하려 한다.
지금 발전 단계에서는 귀보다 머리의 반응 속도가 빨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루 10시간 이상 음악을 생각하며 직업이나 학업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불규칙적인 시간들 속에 정열과 나태를 오가며 취미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의지로 자신의 기량과 음악적 감성을 발전시켜야 한다.
사람이 하는 거의 모든 일에는 돈, 시간, 정성이 필요하다.
이 세가지 중에 하나라도 부족하며 그 결핍이 반드시 나타난다.
지금 내게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그 시간의 농도가 진해지면,
더 높은 수준의 정성을 요구할 것이고 돈은 내 욕망의 충족을 위해 쓰여질 것이다.
이사 갈 집을 계속 찾아보던 중에 Frau Freude로부터 전화가 왔다.
2년 전에 입원했던 병원에서 4주간 더 있어야 할 것 같다는 것과,
자신의 남편이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서 판단과 행동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Herr Freude는 눈에 보일 정도로 모든 면에서 약해져 있다.
나는 최근 둘의 모습을 보며 "늙어감"에 대해 종종 고민한다.
몸과 마음의 일부분들이 점차 사라지고 마지막 한 조각마저 사라진다면,
더 이상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닐까?
나와 Freude 부부는 지난 5년 동안 한 집에서 함께 살았고,
나는 평생 그들의 배려와 호의를 잊지 못할 것이다.
전화가 끝나기 전에 그녀는 내게 말했다.
"이사 가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마세요. 아마 계속 머물러도 될 거에요. 평소대로 논문에 집중하셨으면 합니다."
2년 전과 같은 그녀의 따뜻함이었다.
오랜만에 달렸다.
겨우내 실내에서만 운동을 해서 나의 몸은 부분적으로 깨어있을 뿐,
전체적으로는 굳어 있었다.
늘 달리던 길의 모퉁이를 돌 때 굳어 있던 양 무릎이 강제적으로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숨은 급하게 차 올랐고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올 때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몸의 근육들이 전체적으로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에 따른 아픔도 느껴졌다.
이틀 뒤에 다시 달리니 움직임은 부드럽고 이전보다 더 여유롭다.
나는 태생적으로 건강한 몸과 강한 힘을 가졌지만,
그런 몸과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늘 다음을 생각하며 운동을 해야 하고 힘을 써야 한다.
내가 지금 운동을 하고 힘을 유지하려는 것은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나는 죽는 날까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위협에 대한 "저항"의 의지를 간직할 것이다.
여자 없는 집에 남자 셋이 살고 있다.
나는 여자가 가진 힘을 어릴 때부터 느껴왔다.
남자는 여자 없이 살기 힘들다는 것과,
남자는 오직 여자로 인하여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거의 진리에 가깝다.
반대로 여자는 남자 없이도 자기들끼리 살아갈 수 있고,
여자는 꼭 남자로 인하여 행복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남자들 여럿이 나와 행복에 대해 논하는 영화나 소설은 별로 본 적이 없지만,
여자들이 여럿이 나와 행복에 대해 논하는 영화나 소설은 상대적으로 많다.
남녀 간의 묘한 감정들이 오가는 장면들이 없는 영화나 소설들은 거의 없다.
진정 누군가를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는 매순간 함께 있었음을 바라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분리를 또한 전제한다.
떨어져 있을 때의 그리움과 함께 있다는 만족에서 찾아오는 권태.
여자 없는 남자 셋은 서로 친하지만 모두 자기의 여자들을 그리워한다.
아직 집 안은 "겨울"이다.
은미가 결혼을 했다.
원래는 2월 전후로 한국을 짧게 방문할 생각을 했었으나,
작년 가을에 동생과 함께 방문을 해서 은미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몇 개의 영상들과 사진들을 보내줬다.
2월에 동생과 정효, 현준의 생일이 있어서 축하 인사를 했다.
석원이 형이 대학원을 졸업해서 역시 축하 인사를 했다.
작년 12월 말부터 올해 1월 초까지 지출이 많았다.
새로운 학기의 등록금을 내야 했고 헤겔 전집을 구입했다.
여기에 집세와 보험료, 외식비, 식료품비들이 고정 지출이다.
분명 나는 더 여유롭게 살 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유학 생활을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부모님은 스스로 절약하며 사는 삶을 내게 보이셨다.
물론 부모님과 나는 예정된 의지에 의해 지출되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오직 동생만이 그의 의지외에 상황에 따른 지출이 상대적으로 많다.
나는 그런 동생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끼지만 그것은 그의 능력에서 비롯된 자기 과시이다.
아마 나 혼자 산다면 부모님의 돈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삶을 산다는 것은 내 안에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능력이 아닌 부모의 능력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 증명에서 비롯된 삶이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내게 있어서 돈은 언제라도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직접 돈을 벌 때부터는 나 혼자만의 삶이 점점 지양될 것이다.
지금 나의 삶에서 돈은 내 것이 아니니 쓸 때마다 그 "근원"을 생각한다.
별이 보이는 동네에서 집을 마련하여 살고 싶다고 늘 소망한다.
자연의 변화와 그 흐름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
오늘도 다가올 날들에 대한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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