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여자 없는 남자들] 하루키 소설들의 특징 본문
오랜만에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단편 소설들을 읽었다. 나는 그의 문체가 좋고 여전히 그가 본 세상과 묘사되는 상황들이 좋다. 예전만큼 소설의 내용에 열광할 수 없지만 부분적으로 의미있는 단락들이 나를 잠시 생각하게 한다. 단편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은 총 7편의 소설들로 구성되었고 내용들은 남녀 관계에서 문제를 겪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이혼 또는 사별을 하거나 이별을 앞둔 남자들의 삶을 통해 그들이 느끼는 "여자 없는 삶"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냈다. 결말이 행복하지 않지만 그것이 어떻게 보면 여자 없는 남자들의 삶이 아닐까 싶다. 여자 없는 남자의 삶은 행복하지 않다.
"내가 아닌 것이 되는 게 좋아요?"
"다시 원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안다면."
"원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적은 없어요?"
가후쿠는 잠시 생각했다. 그런 질문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도로는 정체되고 있었다. 그들은 수도고속도로에서 다케바시 출구로 향하는 참이었다.
"그런다고 달리 돌아갈 데도 없잖아." 가후쿠는 말했다.
미사키는 그 말에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드라이브 마이 카" 32p>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소설은 <독립기관>으로 내용이 어렵지 않았고 읽으면서 공감하는 부분들도 다른 소설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았다. 하루키의 판타지적 감성이 많이 드러난 소설은 <기노>와 <사랑하는 잠자>들이다. 전작인 <해편의 카프카> 또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보았던 초현실적인 설정들이 언급한 소설들에서도 등장한다. <예스터데이>는 전작 <노르웨이 숲>의 느낌이 많이 있고, <드라이브 마이 카>와 <셰에라자드>는 전작 <태엽 감는 새>와 <1Q84>에서 볼 수 있는 상황 묘사들이나 등장 인물들 간의 대화들이 있다.
"그나저나 이상한 일이죠." 아가씨는 사려 깊게 말했다. "세계 자체가 이렇게 무너져가는 판에 고장난 자물쇠 같은 걸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그걸 또 착실히 고치러 오는 사람도 있어요. 생각해보면 참 이상야릇하다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뭐,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의외로 그런 게 정답일 수 있어요.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 <"사랑하는 잠자" 308p>
여자 없는 남자들은 여자가 있었던 지난 날들을 추억하며 새롭게 만난 여자들과의 로맨스 또는 친근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런 남자들의 삶에 작가인 하루키는 허전함과 쓸쓸함 또는 여자와의 기약 없는 이별을 설정한다. 생각해보니 하루키의 소설들에서 남자들은 그런 설정들의 "여자 없는 남자들" 이었다. 그들은 또 다른 "여자" 를 찾아 어떤 모험을 시작한다. 그것이 하루키 소설들의 특징이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모퉁이 하나를 돌면 자신이 이미 그곳에 있음을 당신은 안다. 하지만 이젠 되돌아갈 수 없다. 일단 모퉁이를 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단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다.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그건 여자 없는 남자들이 아니고는 이해하지 못한다. 근사한 서풍을 잃는 것. 열네 살을 영원히 - 십억 년은 아마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리라 - 빼앗겨버리는 것. 저멀리 선원들의 쓸쓸하고도 서글픈 노랫소리를 듣는 것. 암모나이트와 실러캔스와 함께 캄캄한 바다 밑에 가라앉는 것. 한밤중 한시가 넘어 누군가의 집에 전화를 거는 것. 한밤중 한시가 넘어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는 것. 지와 무지 사이 임의의 중간지점에서 낯선 상대와 만날 약속을 하는 것. 타이어 공기압을 측정하며 메마른 길바닥에 눈물을 떨구는 것. <"여자 없는 남자들" 327-328p>
하루키의 단편들은 단순히 단편으로 종결되지 않는 느낌이다. 그것은 하루키의 장편들에서 본 듯한 어떤 "조각" 들이고 앞으로 쓰게 될 장편의 "밑그림" 일 수 있다. 단편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서 등장한 남자들은 앞으로의 하루키 소설들에서 다시 등장하여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內 世 上 > 圖書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리랑] "우리가 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 어찌하겠는가?" (0) | 2018.03.09 |
---|---|
[인간 실격]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요조는 분명 착한 사람이었다 (0) | 2017.11.03 |
[굿바이] 비범하고도 순결한 문학인 (0) | 2012.11.22 |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직접"에 가까운 적극적인 간섭 (0) | 2012.11.19 |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거짓과 위선에 둘러 싸인 모든 진실들.. (0) | 2012.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