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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날들 중 한 날처럼 보냈다

EAST-TIGER 2018. 9. 30. 23:00

한국에 온지 일주일이 되었다.
가까운 지인들은 내가 한국에 왔다는 것을 이미 알기에 만났고, 
주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예정이지만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일을 하고 있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들의 일정을 존중해야 한다.
어쨌든 작년과 다르게 조용한 방문이라 나를 찾는 사람들은 없고,
작년처럼 휴대 전화번호가 없기에 모든 연락은 메신저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만나기 전에 정확한 시간과 장소는 필수이다.
그 외에는 집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처음으로 명절 때 큰집에 가지 않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앞으로 큰집에 갈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 낯설긴 했지만 익숙해 질 것이다.
나는 가족끼리 명절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네 명이지만 앞으로 더 많아질 수도 있다.
작년처럼 올해도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화요일에 아버지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오래 전에 아버지와 함께 외출한 기억이 있는데.. 정말 오랜만이었다.
두 개의 전시회가 있어서 함께 관람했다.
물체나 그림 또는 사진, 영상에 박제된 생각들과 감정들을 느끼는 것이 좋다.
아버지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 상설 전시장으로 들어섰고,
그때부터 아버지와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전시품들을 관람했다.
아버지는 조선 후기 이후의 역사를 좋아하지 않으신다.
"보면 뭘해, 마음만 아프지.."
정치적으로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아닌,
상식과 몰상식의 싸움으로 한국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역사를 주제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 말고 또 누가 있을까?
갑자기 든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하여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수요일에 기태가 찾아왔다.
아침부터 만나자고 연락이 왔고 개인 차를 몰고 집까지 찾아왔다.
1년만에 다시 만난 기태였지만 그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다.
그는 결혼을 했고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일을 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곧 사업을 할 생각이라고 한다.
우리는 함께 점심 식사를 했고,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서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작년과 달리 길게 대화를 했으나 주제가 다양하진 않았다.
대화는 서로 주고 받을 수 있을 때 즐겁고 유익하다.
기태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갔다.
또 언제 볼 것인가..?


같은 날 밤에 단비를 만났다.
노량진에서 만났는데 오랜만에 가서 그런지 새로움이 느껴졌다.
아주 오래 전에 나는 이 근처에서 살았었다.
단비는 만나자마자 노래방을 가자고 했고 근처에 그녀가 잘 가는 노래방에 갔다.
기존 시간에 서비스로 추가되는 시간들이 많아서,
오랜만에 목이 쉴 때까지 노래를 불렀다.
최신 노래들을 듣고 알고 있지만,
부르고 싶은 노래들은 오래된 노래들이다. 
오랜만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널 지우려 해>를 불렀고,
처음으로 넥스트의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를 불렀다.
단비는 의외로 남자 노래들을 자주 불렀고,
나 역시 평소대로 여자 노래들을 몇 곡 불렀다.


자정쯤 노래방에서 나왔고,
단비는 대화가 하고 싶다며 장소를 찾다가 우리는 Hollys Coffee로 들어갔다.
한국은 "24시간"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은데.. 뭔가 가혹한 느낌이 들었다.
더 가혹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주문한 커피와 차를 들고 층계를 올라가면서 본 풍경들..
층마다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공부를 하는 듯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늦은 시간까지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이곳까지 와서 무언가를 하게 하는 것일까?
저마다 심각하고 무표정한 얼굴들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5층으로 올라가니 단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들을 단비가 다시 말했고,
그 이야기들에 대해서 이미 여러 번 말했기에,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말들은 별로 없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단비의 지금 남자 친구와 이전 남자 친구 그리고 단비가 서로 만났고,
셋이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만한 광경이었지만 단비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단비와의 대화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테이블에 혼자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주로 남자와 여자가 마주보고 대화하는 테이블들이 많았다.
그들의 표정이나 행동들을 은근히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새벽 1시가 넘어서 카페를 나섰다.


작년에 처음으로 심야버스가 다닌다는 것을 알았기에,
집 근처로 가는 심야버스 노선을 찾았지만 노량진에는 없었다.
단비는 조금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단비에게 시간이 늦었으니 집으로 갈 것을 부탁했다.
단비와 작별하고 일단 근처 심야버스를 타서 신대방 사거리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신도림역까지 걸어갔다.
걷기도 했고 가볍게 뛰기도 했다.
오랜만에 보는 새벽 풍경들은 흥미로웠다.
택시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들이 들렸고,
불켜진 식당에는 노래들과 대화 소리가 들렸다.
가끔은 불꺼진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고,
택시기사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곳도 있었다.
가장 흥미로운 풍경은..
야구모자를 쓴 남자가 트레이닝복을 입고 달리면서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려 그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았다.
새벽 2시가 조금 넘었던 시각이었다.

 

신도림역에 도착해서 다시 심야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서 내렸다.
우연히 옆을 돌아봤을 때 오래 전 사랑했던 여자 친구에게 이별을 고한 장소가 보였다.
원래는 카페였는데.. 지금은 노래방으로 변해 있었다.
자주 지나가는 거리였는데 왜 이제서야 그런 변화를 느꼈을까?
이미 모든 것은 변했고 다시 되돌리기에는 너무 지나왔다.
또 몇 개의 사랑들이 그 위에 얹어졌다. 
그렇지만.. 그때의 기억은 아련하게 남아있다.
갑자기 "춥다"는 느낌이 들었다. 


짧은 머리를 하고 Bali 여행을 한 후 한국에 오니 근심이 생겼다.
거울에 비친 나의 머리에 탈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여러 원인들을 들 수 있겠지만 아마도.. 석사 과정을 하는 동안,
특히 작년에 석사 논문을 쓰면서 탈모가 빠르게 진행된 것 같다.
유학 가기 전에 찍었던 증명사진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니 머리 스타일에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유전적이었다면 어릴 때부터 미리 경계를 했겠지만,

30대 중반이고 자연적인 현상이라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해외가 아닌 한국에서 "탈모"는 좋은 이미지가 아니다.
보이는 것들이 좋아야 보이지 않는 것들도 좋아지는 나라이다.
만약 내가 유학 후 한국에서 살게 된다면,

더 늦기 전에 지금 탈모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부모님도 적극적으로 내 의견에 동의를 했다.
특히 어머니는 내게 "가서 점도 빼달라고 해라!"고 말했고,
나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유독 한국에는 탈모 치료 병원들이 많다.
병원 뿐만 아니라 한의원, 민간 요법 등 다양한 탈모 치료소들이 있다.
그만큼 외모에 무지 신경 쓰는 나라임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거리를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탈모가 진행되고 있는 남자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요즘은 탈모가 심한 여자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이 나라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여러 정보들 살펴 본 후 치료 받을 병원을 정했고 위치는 압구정에 있었다.
금요일 오후로 방문 예약을 잡았다.


압구정역으로 가려면 7호선을 타고 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해야 한다.
금요일 오후 4시쯤 7호선을 탔다.
주로 사람이 많으면 스마트폰으로 팟캐스트를 듣고 자리에 앉으면 책을 읽는데,
그날은 자리에 앉았기에 평소대로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읽었다.
근래에 읽는 책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다.
"완역본"이라는 이름처럼 책이 크고 두꺼운 편이다.
글자도 큰 편은 아니라서 처음에는 눈에 잘 안 들어왔지만,
천천히 읽다보니 적응이 되었고 읽는 속도도 빨라졌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니,
사람들은 핸드폰을 보거나 이어폰으로 무언가를 듣고 있었다.
나 혼자 커다란 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내 왼쪽에 앉은 여자는 앉자마자 졸기 시작했고 왼쪽 허공에 머리를 자꾸 흔들었다.
신경이 쓰일 정도로 동작이 컸기에 가끔 여자를 본능적으로 보았다.
고속버스터미널역에 도착할 때가 되어 자리에 일어났을 때,
다리를 벌리고 졸던 그녀의 발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그녀에게로 돌렸지만,
그녀는 계속 졸고 있었다.  


지하 1층에 있는 병원은 모발 치료만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었다.
접수를 한 후 아이패드로 병원 소개와 함께 모발 이식 과정을 보았고,
미세먼지 제거소를 지난 후 진료실에 가서 원장을 만났다.
Youtube에서 본 그 사람이 내 앞에서 인사를 하고 말을 걸었다.
옆에는 검은 옷을 입고 "실장"이라는 명찰을 단 여자가 서 있었고,
가끔 나와 원장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왔기에 원장의 말들이 낯설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취미가 비슷함을 알고 흥미롭게 대화했고,
내가 공부하는 것에 대해 몇 가지를 물었다.
그러더니 잘 다듬어진 색연필을 들어 내 이마선을 중심으로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마치 도화지가 된 기분이었고 당연하지만 저항할 수 없는 상태가 싫었다.
이후로도 계속 웃음을 동반한 대화가 지속되었지만,
억지로 웃는 척을 해야 했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원장은 나보고 거울을 들어달라고 부탁했고,
거울 속에는 이마에 색연필로 그려진 선들이 가득한 내 모습이 보였다.
순간 보고 있기가 민망하여 힘겨웠다.  
진단과 상담이 끝난 후 원장과 실장이 동시에 자리를 비웠다.
혼자 남겨진 방에서 거울을 보며 나는 말했다.
"왜 이렇게 된거야?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잠시 후 "실장" 명찰을 단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어느 일본 만화책에서 본 것 같은 시선이 흐릿한 중년 여자였다.
진단에 따른 수술 방식과 필요한 모발 수, 모낭 수를 말해주었다.
그리고 치료비를 말했고 수술 날짜를 알려 주었다.
나는 차분하게 들으며 말했고 특별히 감정적인 변화도 없었다.
기분이 불쾌해지면 평소보다 더 차분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말하고 행동한다.
그래야 상대에게 감정을 들키지 않는다.
우리는 어느 정도 합의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진료비를 지불했고 나는 효성이를 만나러 갔다.
잠깐 하늘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신촌에서 1년만에 효성이를 만났다.
작년에도 신촌에서 만났는데 올해도 비슷한 거리를 걸으며 식사를 했고 차를 마셨다.
내 지인들 중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괜찮을 것 같은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오랜만에 내 이야기를 받을 만한 사람과 함께 있으니 멈추지 않고 말이 흘러 나왔다.
서로의 근황들을 확인하고 고민들을 풀었다.
효성의 풍성한 머리털이 오늘은 더욱 눈에 잘 들어왔다.
우리는 신촌, 홍대, 합정 거리를 걸으며 대화했고,
다시 홍대로 돌아와 헤어졌다.


작년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어머니의 일을 도와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식사 전 반찬들을 꺼내어 식탁에 올려 놓고,
식사 후 반찬들을 랩으로 씌워 다시 냉장고에 넣는다.
그리고 식탁을 닦고 설거지를 한다.
가끔 어머니가 장을 보시다가 물건 들기가 힘드셔서 집으로 전화를 걸면,
나는 바로 어머니를 만나서 짐을 들어다가 집으로 가져온다.
간단한 일이지만 평소에 자식이 있고 없고에 따라 어머니의 감정들도 달랐을 것이다.
5년간의 유학 생활은 어쨌든 "가정적인 남자"로 만들기 충분했다.


토요일 저녁에 춘하 누나를 만났고 저녁 식사를 한 후 차를 마셨다.
2008년도에 교생 실습을 하면서 만났으니 올해로 벌써 10년째 만나고 있다.
"친구"로서 누나는 친절하고 헌신적인 면이 있고,
10살 정도 차이 나는 "선배"로서의 누나는 깊이 있는 말들을 한다.
내 친구들 중에 만나면서 "실망"이나 그와 비슷한 느낌들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차를 마시는 카페에서 누나는 내게 사진을 찍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나는 몇 장 찍어 간단하게 편집한 후 누나에게 주었다.
누나는 마음에 들었는지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그 사진들 중 한 장으로 바꿨다.
서로 가까운 곳에 살기에 언제라도 볼 수 있지만,
가깝다고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가끔 서로를 찾을 것이다.
그래서 누나에게 고맙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마주 앉아 긴 대화를 나눴고,
그 대화가 끝난 후 몇 분이 되지 않아 생일을 맞이했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감사 기도를 드렸고,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잠이 들었다.


생일이니까 억지로 나이를 먹는 것이 별로 좋지 않지만,
나는 내 생일 날짜를 좋아한다. 
9월의 마지막 날인 나의 생일은 가을의 입구이자,
무엇인가 끝을 알리는 날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주일이 생일인 오늘은 10월의 시작이 월요일임을 알게 한다.


집에서 어머니가 끓여 준 미역국을 두 끼 내 먹었고,  
방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어머니와 함께 오랜만에 내가 오랫동안 다녔던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동생은 오늘 휴가를 마치고 다시 Doha로 돌아갔다.
저녁 때 쯤 사람들로부터 생일 축하 인사를 받았다.  
여러 날들 중 한 날처럼 보냈다.


작년에 한국에 와서 읽다가 다 못 읽은 Hemingway의 <노인과 바다>를 다 읽었다.
우연한 계기로 혜리와 오랜만에 짧게 대화를 나눴다.
규빈이와는 짧게 대화를 나누고 있고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작년에 보려고 했지만 출장으로 보지 못했던 "사장님" 보경이를 올해는 볼 것 같다.
마찬가지로 무척 바쁜 장현도 올해는 볼 것 같다.  
독일로 돌아갈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수술이 이루어지면 아마도 예상보다 조금 늦어질 것 같다.

아마 이번에 돌아간다면 학위를 받지 않는 이상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


블로그를 보고 나를 알게 되는 사람들이 있고,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며 나를 알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메신저나 메일, 편지를 통해 나를 알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중 가장 내가 선호하는 것은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이지만,
어디서든 나의 말과 글들이 살아 있는 곳에서의 "나"를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그곳에는 오해와 이해, 비호감과 호감이 늘 부유한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대화를 한다.  

혹시 궁금한 것이나 의심이 들면.. 나에게 직접 묻는 것이 빠르다.

괜히 개인의 상상 속에 "나"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모나 나이, 출신,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대화가 흐른다면 그때부터 우리는 한 배를 탄 것이다.
진지하게 그러나 즐겁게 대화를 한다.


올해 생일은 나의 한국 방문처럼 조용하다.

거짓 없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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