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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日記/Hello- Yesterday

아쉽지만 행운을 빈다

EAST-TIGER 2018. 10. 6. 01:50

오랜만에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이었고, 

한국에서 그날을 보냈다.  

책을 읽다가 졸리면 짧은 잠을 잤고, 

다시 일어나 책을 읽었다. 

가끔 베란다 창문에서 먼 곳을 바라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들은 길쭉한 아파트들이다. 

그리고 상가들, 도로 위의 차들,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들로 시선이 옮겨간다. 

독일 내 방 창문에서는 Wolfgang의 집과 정원, 삼각지붕 집들, 

나무들 그리고 하늘이 보였는데.. 

내가 지금 한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한국에서는 비에 젖은 세상을 보는 재미가 있다. 

뭔가.. 흐르지 않고 스며드는 느낌이 든다. 

어딘가에 고여 있는 걸까?   

어머니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부끄럽다. 


10월이 되었다. 

한 달의 첫 날이 특별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역시 여러 첫 날들 중에 하루였다. 

저녁에 장미를 만났고 함께 식사를 한 후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지난주에 빡빡한 일정으로 가족과 동유럽 여행을 해서, 

아직 피로감이 남아 있다고 내게 말했다. 

여행에서 겪은 일들을 말해주면서 자신이 느낀 유럽의 느낌들을 말했다. 

그 느낌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느낌들과 대부분 달랐다. 

"첫 경험" 위에 또 다른 경험들이 덧붙여지지 않으면,

강렬하게 남고 처음 가진 편견들이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 

밤 10시가 조금 넘어서 우리는 헤어졌다.  


어머니는 여전히 내게 많은 음식들을 해준다. 

대략 평소 독일에서 먹었던 양의 두 배 이상이고, 

먹고 나면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식사 후 집 근처에 있는 작은 산을 타거나, 

길게 거리를 정한 후 달린다. 

그러나 나의 운동량이 어머니의 사랑을 이길 수 없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죄와 벌>은 심리 소설이라 읽기가 쉽지 않다. 

극 중 인물들의 심리 상태와 그에 따른 행동들의 인과성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빠르게 내용이 전개되기 보다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심리와 동선이 이야기 전개의 속도를 조절한다.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을 엮은 책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구어체로 된 강의록이라서 읽기가 편하다. 

중요한 문장들은 형광펜으로 표시를 하면서 읽고 있다.  

독일을 떠날 때 Schelling 철학 연구집을 한 권 가져왔는데, 

중요한 논문부터 읽고 있다. 


생일 축하 인사를 한 수정 누나와 대화를 했고, 

내가 한국에 있다는 것도 알려줬다. 

누나는 약간 놀랐지만 금새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했다. 

주로 이 교수님과 학교에 대해 대화를 했고,

선춘이 누나가 석사 논문 쓰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내게 말했다. 

새벽까지 대화를 하고 서로 잠이 들었다. 


수술 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특별히 두려움도 없고 빨리 그날이 지나가길 바란다. 

Youtube에는 수술 이후 달라진 면들을 보여주는 동영상들이 있어서, 

나 역시 그렇게 달라질지 의문이 들면서 기대도 된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은 좋지 않다. 


목요일에 단비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연락을 했다. 

합정역에서 만났고 지난 번에 내가 비용을 다 지불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오늘은 자기가 다 내겠다며 나를 이끌었다. 

단비가 정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고,

조금 걷다가 단비가 정한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그 근처에서 유명한 카페라고 말했지만 나는 처음 들었고 처음 왔다. 

카페에는 유명 문학가들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고 책장들이 있었다. 

평소 카페에 가면 자주 마시는 얼그레이를 그날은 술을 마시듯 마셨다. 

생각해보니 한국에 온 후 지금까지 술을 마신 적이 없다.

카페에서 나온 후 우리는 주변을 걸었고, 

걷다 보니 처음 만났던 합정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일찍 헤어졌다.

뭔가 서로 "0"이 된 상태인 느낌이 든다. 

다음에 만나서 식사나 차를 하면 누가 먼저 계산을 할까?

단비는 나를 또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이전 그리고 지금의 남자 친구들이 부담스럽다. 


어느덧 운영하고 있는 음악방이 2주년을 맞이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음악을 듣고 있다. 

서로 간의 말이 거의 없는 방이지만, 

원래 의도했던 방의 목적을 달성한 느낌이다. 

가끔 음악 방송을 할 뿐 예전처럼 멘트 방송은 하지 않고 있다. 

언젠가 다시 할 것 같지만 지금과 근래는 아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가진다.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일을 하거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렇게 되었다.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불편하면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함께 있음으로써 얻어지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어야 의미가 있고,

무엇보다 서로 편안한 느낌으로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위해 일정을 조정해서 만나려는 사람들이 있고, 

나 역시 그들의 여유로운 시간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아쉽지만 행운을 빈다. 


어쨌든 하루가 정확히 가듯이, 

내가 다시 독일로 돌아갈 날도 정확히 다가온다. 

언제 떠날지 언제 다시 돌아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언제"는 가깝게 그리고 멀리서 내게 다가오고 있다.

속도에 두려움이 없어야 하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언제"의 속도도 달라질 것이다. 


빗소리가 들리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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