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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셜"이다

EAST-TIGER 2018. 9. 18. 22:07

지난 목요일에 했던 동생과의 대화 이후 지금까지 분주하다.
열흘 정도 휴가를 쓰게 된 동생이 내게 함께 여행을 가자며 말을 걸었고,
나는 별로 여행을 갈 생각이 없었기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가 대화 도중 문득 동생의 외로움이 느껴져서 마음이 흔들렸다.
"외롭다"는 감정은 인간에게 보편적이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소비하고 조절할 것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에게 외로움은 무거운 침묵과 차가운 "조용함"이라면,
동생에게 외로움은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과,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삶의 "지루함" 같은 것이다.
그런 동생의 외로움이 오고 가는 대화 중에 느껴져서,
나는 동생이 바라는 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인도네시아 Bali 섬으로 여행을 갈 것이고,
이후 함께 한국으로 가서 부모님을 만날 예정이다.
"오피셜"이다.

동생과 나는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크게 다투었다.
그 다툼은 실망스러운 것이었지만,
나는 동생의 변하지 않은 부분들을 인정해야만 했다.
아마 동생도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동생은 가까스로 회복한 남매 관계가 다시 단절되는 것이 두려웠을까?
동생은 내 앞에서 많이 울었고 많이 말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런 동생의 모습과 상관없이 관계는 다시 단절되었을 것이다.
가족이기에 치열한 대립보다는 비겁하더라도 수용할 수 있는 "평안"을 원했다.
지금의 나는 그럴 생각이 별로 없다.
작년에 한국 방문을 위해 동생이 소속된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면서,
나는 동생의 일과 삶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고 그것에 감동을 받았다.
이후 올해 초 동생이 나를 만나기 위해 독일로 왔고,
우리는 3일 정도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그때 나는 "여자"이면서 "사람"인 동생의 존재를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동생은 나의 "일부"가 되었고,
예전처럼 기약없는 "단절"을 택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동생의 외로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런 동생을 지키고 위로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나의 아버지는 "단절"로 인하여 가족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동생을 위해 스스로 "친구"가 되었다.
나에게는 유난히 냉정하고 엄하셨던 아버지의 그 결정에 동의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내가 다음 차례가 된 것이다.

여행 가기 전이고 Christian이 온다고 해서,
급하게 그러나 깨끗하게 화장실 청소를 했다.
내 경험에 의하면,
화장실이 깨끗한 집은 다른 공간들도 깨끗한 편이다.
서로 연락을 지속적으로 주고 받았지만,
작년 11월에 Christian을 마지막으로 보았으니 거의 1년만에 만난다.
그 전에는 1-2달에 한 번 이상은 만났다.

여행과 함께 한국 방문이 확정되자,
기르고 있던 수염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부모님은 나의 단정한 모습을 좋아하시고,
나 역시 그런 모습으로 부모님을 뵙고 싶다.
면도기로 몇 번 입 주변을 휘저으니 금새 예전 얼굴이 거울 속에 나타났다.
관리와 유지는 쉽지 않고 귀찮지만,
파괴와 제거는 쉽고 간단하다.
아직 배송도 안 된 전기 면도기는 당분간 쓸 이유가 없다.
삶의 지혜가 이렇다.

토요일 오후 1시가 조금 안 된 시간에 Christian이 왔다.
Freude 부부는 점심 식사를 준비했고,
나는 빨간 자동차에서 내린 그와 집 앞에서 기쁨의 포옹을 했다.
뒤이어 Freude 부부도 반가운 인사를 그와 나눴다.
그는 3년만에 Freude 부부를 다시 만났다.
식사를 하면서 Christian은 Freude 부부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했고,
나는 이미 그와 연락을 하며 지냈기에 새롭지는 않았다.
식사 후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Christian과 함께 내 방으로 왔다.

나는 입지 않은 옷들을 Christian에게 주었다.
대부분 한국에서 입었던 옷들이고,
독일에 온 이후 옷장에 유기된 옷들이다.
순식간에 두 박스 분량의 옷들이 정리되었고,
몇몇 옷들은 Christian도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이후 함께 시내로 나갔다.

Christian과 커피를 마시며 거리를 걸었다.
그는 오래 전에 Bail로 여행을 갔었다고 내게 말했고,
"말라리아"를 조심하라고 조언했다.
그 조언은 별 생각 없던 나에게 "월요일에 의사를 만나러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서점에 들러 Max Weber의 책을 구입했고,
동생이 내게 부탁한 물품들을 구입했다.
Christian과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작별 인사를 한 후 그는 다시 빨간 자동차를 타고 떠났다.
또 만나겠지만 떠나는 그 자동차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Christian과 나는 벌써 5년 넘게 "형제"로 지내고 있다.

갑자기 정해진 일정으로 인하여 김진애 박사의 책을 급하게 읽었다.
130쪽 정도 더 읽어야 했는데 3일 동안 나눠서 읽었다.
떠나기 전 서평을 쓰려 했으나 시간이 없어서 나중으로 미뤘다.

주일 오후에는 Tilbeck Stift에서 공연을 했다.
매년 열리는 축제였지만 나를 비롯한 몇몇 멤버들은 전혀 몰랐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공연했고 분위기는 좋았다.
하지만 우리 밴드의 문제점들이 여실히 드러난 공연이었다.
베이스 연주자가 공석이라서 밴드 지휘자인 Thomas가 연주했는데,
연습이 아닌 실제 공연에서 지휘자가 없으면 몇몇 멤버들이 박자와 리듬을 놓치거나,
곡 진행을 잊어버리는 일들이 생긴다.
그 때문에 나는 좀 더 크게 소리를 내어 연주를 해야 했고,
가끔은 왼손으로 신호를 주면서 멤버들에게 곡 진행을 알렸다.
덕분에 내게는 즐거움과 진지함이 어우러진 공연이었다.
Ulrich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고,
몸이 피로하다는 것을 느꼈다.
거울을 보니 오른쪽 눈에 꼅 쌍꺼풀이 생겼다.
하지만 방과 계단 청소를 했고 빨래를 했다.

월요일에 의사를 만나 말라리아에 대해 상담을 했다.
독일 보건국은 Bali를 말라리아 위험 지역으로 지정하지 않았지만,
한국 보건 복지국은 위험 지역으로 지정했다.
친절한 대화에 약간의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예방 주사는 시기상 늦었고,
약을 처방해 주었지만 구입하지 않았다.
5일 동안 나의 건강함과 독일 보건국의 정보를 믿을 수 밖에..
나와 달리 동생은 전혀 걱정을 안하고 있다.

한인 도서관 담당자인 도현을 만나 책을 반납했다.
함께 야외 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서로의 근황을 전했다.
한국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도현은,
이번 학기부터 학부에서 심리학 공부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의 나이는 20대 후반에 접어 들었고 나와는 9살 차이였다.
문득 그의 "도전"에 어떤 막연함이 느껴졌다.
누군가도 내게서 그런 막연함을 느꼈을까?
매일 그 막연함과 불안감에 맞서 자신의 의지와 실력을 증명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오후 5시쯤 헤어졌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짐이 많았었는데,
유학 후 첫 방문이기도 했지만 나의 어리석음도 알게 되었다.
미리 계획하고 그대로 실천하겠다는 의지는,
가끔 보통의 의지로는 불가능하다.
이번에는 수화물 없이 짐을 가볍게 쌌다.

아침에 머리를 깎았고 샤워를 했다.
Frau Freude는 작년처럼 이동 중에 먹을 간식거리를 내게 주었다.
Herr Freude도 작년처럼 고속버스 정류장까지 차로 데려다 주었다.
학교 도서관에 빌린 책들을 모두 반납했다.
대출한 책의 수가 "0"으로 표시된 것도 오랜만이다.
오늘 독일은 영상 30도에 가까운 맑은 날씨이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여정의 시작.
나는 지금 어떤 감정들에 맞서고 있다.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다.

Frankfurt am Main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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