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서로에게 날카로운 흉기이다 본문
금요일에는 3개의 소포를 받았다.
전부 카메라에 관련된 소포들이었고 드디어 D300s가 왔다.
아침에 브라운슈바익에서 상준이 형이 찾아왔다.
지난 9월에 학교 때문에 도시를 옮기고서 근 3개월만이었다.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찰나에 대훈 전도사님도 오셔서 셋이서 대화를 나눴다.
두 분 다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주로 학교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아직 입학하지 않아서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에게도 해당되는 일이기에 귀담아 들었다.
상준이형이 와서 금요일 점심과 저녁은 함께 식사를 나눴다.
하지만 유쾌했던 자리는 아니었다.
그동안 쌓여있던 분노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폭발했고
소수였지만 그 분노는 사람들을 당황케 하였다.
게다가 분노의 대상은 2살 많은 형이었고
어쨌든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던 형이었다.
그러나 그가 내게 보여준 말과 행동들은
그동안 나를 무척이나 괴롭게 했다.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기 위한 말과 행동은 분명있다.
사람은 개인적으로 이기적이고 집단적으로도 이기적이다.
어느 곳에서든 피아식별을 통해 모여 있는 사람들 중
자기 편과 다른 편을 구별 짓는다.
그리고 다른 편에 있는 사람들을
기회가 있을 때나 가끔 의도적으로 깐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귀가 간지럽고 재채기를 하고,
비난하고 판단하는 그 사람들로부터 원망과 증오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각오는 이미 되어 있어야 한다.
어디선가 어느 때에 누군가에게 비난과 판단의 화살을 쏘았다면,
반드시 그 화살들은 삶의 어느 순간에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
선의든 악의든 간에 우리는 서로에게 날카로운 '흉기'이다.
나 같이 소수와 깊은 관계를 갖으려는 사람에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수가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실망을 주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계속 실망을 줄 때가 있고
노력에 비해 저조한 성과나 발전 역시 있다.
그럴 때는 괜시리 괴로워지고 그 자리를 떠나고 싶어진다.
근래에 이 문제로 함께 대화했던 친구는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갖는 지나치고 불필요한 관심이
지금 겪는 '괴로움'의 원인으로 보았다.
한마디로 그냥 자기랑 맞는 사람들이랑만 어울리라는 것이다.
그의 말에 머리로는 동의하지만 가슴으로는 동의할 수 없었다.
신이 만약 인간을 사랑하여 매일 매순간 표현했다면,
우리는 하루도 제대로 살기 힘들었을 것 같다.
사랑하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그 관심에서 나온 온갖 대화와 조언들은
자유로운 본능과 신의 뜻을 어기는 것에 익숙한 인간들에게
시간이 갈수록 날선 흉기와도 같이 다가와 '잔소리'에서
언젠가는 '신'이라는 대상을 잊은 채 그 관심에 저항하고
신을 피해 멀리 떠나거나 아니면 죽이려 들 것이다.
이미 신 역시 인간의 이러한 모습들을
창조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신의 위대함 중 하나는
스스로의 죄를 알거나 또는 모르는 거나
이 땅에서 인간을 살아가도록 용납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가끔 그 죄를 깨닫게 하셔서
처참하고 흉악스러운 스스로를 바로 보게 한다.
전날 새벽에 돌아왔기 때문에 피곤했지만
오랜만에 중고 시장에 다녀왔고 시내에도 갔다왔다.
별 소득은 없었지만 다행히 미루어 왔던 이발을 했다.
머리를 깎으니 상한 마음마저 도려낸 것 같다.
오후에 긴 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이 밤을 보내려 한다.
바람이 무척 강하게 불고 비가 내린다.
더이상 힘들어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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