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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것들이 많은 날들이다.

EAST-TIGER 2021. 3. 23. 07:49

버리는 것들이 많은 날들이다. 

오랫동안 썼던 침대와 매트리스를 버렸고, 

몇 년 전 동생이 쓰고 버리라고 했던 여행가방도 이제야 버렸다. 

유학 올 때 가져왔던 가죽 가방도 버렸고 신발 몇 켤레를 버렸다.

옷 몇 벌을 버렸고 침구류 중 불필요한 것들을 버렸다. 

깊고 얕은 의미들을 가진 여러 종이들도 선별하여 버렸다. 

쌓여있는 신문들을 이번 주에 버릴 것이다. 

 

버려짐은 비워지는 것이고, 

비워짐은 채워지기 위한 조건이다.

얼마큼 채워질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버려진 것들과 채워지는 것들은 등가 교환될 수 없다. 

지금 버려진 것들은 지금 버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채워지는 것들은 한 번에 채워짐을 지향하지 않는다. 

버려진 것들이 있었던 자리들이 깨끗해 보이는 이유다.

 

태풍이 지나간 이후 조금씩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달리기를 할 때면 바람의 저항을 이겨내야 하고, 

차가운 공기들이 운동복 틈 사이로 들어오지만, 

나의 몸은 생기 있게 앞으로 나아간다. 

속도를 올리면 30분 달리기가 20분 가까이 줄어든다. 

무거웠던 움직임이 가벼워지니,

봄의 기운이 몸에 먼저 닿았나 보다. 

 

두 달 가까이 꿈같은 날들을 보냈다.

달콤하지도 않고 매콤하지도 않은 밋밋함. 

그 밋밋함은 어쩔 수 없는 지금의 맛이었다. 

25일 이후에 아니면 그전에 꿈은 그 끝을 맞이할 것이다.

꿈이 현실이 되어 현실이 꿈처럼 될 것인지, 

꿈은 그저 꿈으로 남아 스스로 점점 사라질 것인지, 

어떻게 꿈이 끝날 것인지는 모르겠다. 

끝은 분명히 있다. 

 

흐리고 바람이 불던 오후에 달리기를 하다가 어떤 여자를 보았다.

다리가 짧은 개와 함께 산책을 나온 것 같다. 

안면홍조가 있었고 패딩에 비니를 쓰고 있었다.

개줄을 쥔 왼손과 전자담배를 든 오른손. 

푸석한 그녀의 얼굴과 회색이 도는 눈빛. 

Marina가 생각났다. 

짧은 순간 그녀를 지나쳤지만 인상적이었다.  

금요일에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다가,   

헬리의 얼굴에서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한 사람이 가진 삶의 무게는 얼굴에서 나타난다. 

 

멀리서 사람이 온다고 한다. 

올지 안 올지 모르겠다. 

그 사람도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누가 올 수도 있으니 "나"로 가득한 방을 청소하고 정리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대청소를 했었다.

"나"로 가득한 방에 다른 사람이 머물 수 있으려면, 

"나"를 일부 죽이거나 제한해야 한다.

그렇게 "같이"나 "함께"가 가능해진다. 

청소하고 정리될수록 방은 원래의 모습을 조금씩 찾는다. 

그 사람이 오지 않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코로나 시대고 사람의 마음은 의심 많고 변덕스럽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개인의 삶들 간의 충돌이다. 

개인의 삶을 단 몇 초나 몇 분만에 가늠할 수는 없다. 

다행스럽게 친절한 시간이 있었다.

강 같은 삶에 돌멩이들이 떨어지면 파동들이 생긴다. 

돌멩이들과 파동들의 영향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강 같은 삶은 바다 같은 삶으로 변할 수 있다.   

멀리서 사람이 올 수도 있다고 한다. 

 

수의 도움으로 비트코인을 비롯한 코인 정보들을 보고, 

거의 매일 기사 하나 이상을 읽는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주식과 코인 시장 등 재테크에 관심이 많다. 

동생도 주식을 한다고 하니 나만 빼고 다들 하고 있는 듯싶다. 

아직 투자를 해야겠다는 실천적 의지는 없다. 

암호화폐는 스스로 화폐로서 가치와 기능을 보여야 할 것이고, 

주식은 사고팔고를 하기 싫다면,

우량주에 투자하여 원하는 수익률까지 기다렸다가 팔면 된다. 

나중에 주식과 코인 시장에 투자를 할 수도 있으나, 

지금은 "나"에게 투자한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축제"와 같지만,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재미없는 연극을 보는 듯 지루하다. 

박영선, 오세훈, 안철수 중 한 명이 서울 시장이 된다는 전제적 사실.

여당을 찍으면 실속 없는 정책들만 쏟아질 것 같고, 

야당을 찍자니 정부 견제랍시고 반대만 일삼고,

선출된 시장은 대권을 노릴 기회만 볼 것 같다. 

서울 시민들에게는 선택 난이도가 있는 선거다. 

해외에 있는 서울 시민으로서, 

저 세 사람 중에 누구도 시장이 되지 않으면 좋겠다.

노련한 한국 정치인들은 공정과 정의를 추구하지 않는다. 

차라리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을 원한다. 

 

성 권사님께 안부 인사를 전했고 답신이 왔다.

염 집사님은 한국으로 귀국하셨다. 

김 권사님의 어머니께서 소천하셔서 전화로 애도를 표했다. 

혜리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겠다고 해서 반대했다. 

서진이가 생일이라서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하민이와 오랜만에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어머니와 오랜만에 길게 대화했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신비롭다. 

가볍게 만나 한 순간 뜨겁게 관계를 맺고 쉽게 헤어지는 것이 트렌드가 된 시대에서,

신뢰로 만들어진 관계와 깊은 교제를 바라며 사람을 찾는다. 

함께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사람에게 갖는 기대들은 허무하고, 

언제든 상처 받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었을까? 

서로 알아보지 못하면 불가능했다. 

그것이 힘들고 귀찮아서,

한때는 아무나 만났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이후 기대할 것들을 기대하고,

보이는 것들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는다. 

스치고 놓치더라도, 

만날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신비로움"이 있다.  

 

"LH 사태"는 전혀 낯설지 않다.   

정부 주도 주택 사업 정보들을 취급하는 현직 LH 직원들이,  

물욕 없이 맡은 일들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이것은 정부와 그 산하 어느 기관들에서든 일하는 공무원들에게도 해당된다.

직업은 오랜 전부터 권력이자 사회적 지위를 대변한다.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이 가진 특성과 이해관계를 살펴서,

그 혜택들을 친인척들이 누린다. 

이 적폐의 근절은 거의 불가능하다.

 

가끔 통화하는 상대가 나와 대화 도중에,

어떤 표정을 짓고 어디에 시선을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화 중에 상대의 말들이 심심하거나 지루한 느낌으로 들리면, 

나도 모르게 말을 멈추게 되고 뻔한 말을 하게 된다. 

"재미없죠?" 

나는 왜 그렇게 재미없는 말들을 늘어놓았을까? 

그 재미없는 말들을 재밌다고 웃으며 들어줬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서로의 "재미없음"이 "재미있음"이 되었을 때, 

대화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깊어진다. 

 

버려지고 다시 생김으로써,

비워지고 다시 채워짐으로써, 

과거의 일들은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위한 좋은 토대가 된다.

그 토대 위에 나는 살아있는 동안 고통과 성장을 겪는다.

더 이상 미래가 없고 현재의 마지막 순간이 과거가 될 때,

인간의 삶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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