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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더딘 걸음이다 본문
늦봄이지만 초봄 같은 날씨들이 계속되고 있다.
굳게 닫힌 창문 밖의 서늘한 바람이 방안에서도 느껴져 긴 옷을 꺼내 입었다.
혼자 지내기에 적당한 듯 넓은 듯한 공간은,
책상 주변을 경계로 질서와 무질서를 표현하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시간 속에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졸리면 잠을 자야 하는 내가 참 한가하다.
나는 여전히 알약 두 개로 하루의 모든 끼니를 때울 수 있고,
1시간만 푹 자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원한다.
5월부터 독일의 모든 교회는 온라인이 아닌 현장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사역하고 있는 교회 중고등부 역시 17일 기점으로 다시 현장 예배를 시작하기 위해,
교사들과 함께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담임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자연스럽게 현재 상황과 논의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결론적으로 유. 초등부처럼 중고등부도 영상 예배를 매주 준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현장 예배가 막 재개된 시점이라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바로 작업에 들어갔고 금요일 새벽에 완성했다.
구입한 지 10년이 넘은 노트북에게는 힘겨운 작업이었고,
유학 중에는 영상 작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삭제했던 영상편집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무료 프로그램들은 내게 필요한 옵션들은 제공하지 않는다.
작업하다가 문득 혜민이가 생각났다.
매번 "영혼을 갈았다"며 내게 말하면서 만들었던 카페 홍보 영상들..
그 일을 그만둔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언젠가 혜민이가 내게 물었다.
"언제 다시 영상 작업을 할 생각이에요?"
나는 대답했다.
"나중에 혹시 결혼하면 가족을 위해 마지막 남은 힘을 써야겠지."
그때를 위해 지금은 효율적으로 작업을 할 생각이다.
생각해보니 혜민이와 대화를 안 한 지 오래되었다.
내게 연락이 없을 때는.. "난 지금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미뤄졌던 Abitur가 5월 초부터 시작되었다.
주애, 유진, 정민, 상우가 보게 되어서 각 사람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지난 주일부터 화상 앱 Zoom을 이용해서 담당하고 있는 반 모임을 다시 시작했고,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 때문에 즐거운 주일 오전이었다.
이번 주부터 TV판 <에반게리온>을 매주 서로 두 편씩 보고,
모임 때 서로의 의견들을 들어볼 예정이다.
김 권사님과 대화를 나눴고 천 집사님과도 대화를 나눴다.
아주 오랜만에 단비로부터 연락이 왔고,
예전과 다르게 문자로만 대화를 나눴다.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생긴 변고에,
큰 위로가 되지 못할 말들을 단비에게 했다.
확실히 단비의 삶에서 어떤 계기가 될 것이다.
정 교수님과 차 교수님의 생신이라서 축하인사를 드렸다.
자민이 형의 생일이라서 축하인사를 전했다.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었던 서진이와 통화로 안부를 전했다.
4월 말에 아마존에서 구입한 마스크 100개가 예상보다 일찍 배달되었다.
지난주에 장을 보러 나갈 때 썼던 마스크 한 장은 일단 자기 역할을 다했다.
희망과 절망,
용기와 두려움,
성실과 나태,
지와 무지,
나의 하루는 이 두 사이를 계속 오가는 것으로 채워지고,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은 그 사이에서 고민했던 어떤 결정체들이다.
무척 더딘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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