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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향해 쏴라] 내일은 오늘을 살아남은 선물 본문
추석 연휴 마지막 날에 영화가 보고 싶어져
그동안 보지 못하고 두었던 영화들 중<내일을 향해 쏴라>를 보았다.
원제는<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인데,
일본에서 개봉 당시<내일을 향해 쏴라>라고 영화제목이 붙여졌다.
예전에 케이블TV 영화채널에서 몇 번 보았으나 부분적으로만 보아서,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보았다.
"그 아름답던 옛날 은행은 어디 간 거요?"
"자꾸 강도가 들어서요."
"아름다움을 지키려면 그정도는 참아야지."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는 미국 서부에서 갱단을 이끌고
주변 은행과 열차를 습격하여 돈을 훔친다.
그러나 사람들을 해치지 않고 낙천적인 삶을 사는 두 사람이라,
그들에게 강도짓은 그저 재미있는 놀이와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열차를 털다가
그들을 집요하게 추격하는 무리들을 만나게 되자,
평소에 부치가 가고 싶다고 말한 볼리비아로 함께 떠난다.
볼리비아로 온 두 사람은 예전과 같이 강도짓을 하면서 악명을 떨치지만,
미국처럼 큰 땅도 아니고 그들이 쉴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결국 볼리비아 정부는 경찰과 군대까지 동원하여 그들을 잡으려 한다.
"자네만큼 착한 인물도 없고 선댄스만큼 손 빠른 녀석도 없지만
그래봤자 쫓기는 무법자에 불과해. 끝난거야."
부치 캐시디 역의 폴 뉴먼(Paul Newman)과
선댄스 키드 역의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는 멋진 콤비였다.
두 명의 남자배우가 주인공인 대부분의 액션영화들을 보면,
한 사람은 재치있고 유머스럽지만 싸움을 못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재치있고 유머스럽진 않지만 뛰어난 싸움실력을 가지고 있다.
폴이 전자의 인물이고 로버트가 후자의 인물인데 정말 잘 어울렸다.
둘 다 전성기 시절 할리우드 꽃미남 배우로 명성이 높았고,
수많은 영화들에서 열연하여 국내에서도 알려진 배우들이다.
아쉽게도 폴은 2008년 9월 27일에 사망했는데(이 글을 쓰는 바로 오늘이다),
죽기 전까지 영화배우로서의 열정을 불태웠다.
로버트는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 영화에서 맡았던 배역의 이름을 따서 선댄스 협회를 만들어
선댄스 영화제(The Sundance Film Festival)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그는 감독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는데,
1980년에 제작된<보통사람들>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는다.
감독인 조지 로이 힐(George Roy Hil)에게 이 영화는 그의 두 개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스팅>인데 재미있는 사실은 로버트와 폴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이다.
어떻게 보면 그는 로버트와 폴과 함께 찍은 영화들로 영화감독의 명성을 쌓았고,
로버트와 폴도 그와 함께 찍은 영화들로 할리우드 스타가 되었다.
조지 로이 힐은 1971년<내일을 향해 쏴라>로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데이빗 린 상을,
1974년<스팅>으로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그는 70년대 초반을 수놓았던 명감독이었으나 이후로는 대학교수직에 전념한다.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하나가 있는데
바로 B.J. Thomas의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이다.
부치가 선댄스의 애인인 에타와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흘러나온 노래인데,
노래 제목처럼 비 내리는 날이 아니고 오히려 해가 쨍쨍한 맑은 날이다.
그러나 마음 속에는 따뜻한 비가 내리는 것처럼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했고,
부치와 에타가 주고 받는 대화와 감정이 돋보이는 명장면이다.
비가 오면 어디선가 늘 들려지고 있을 이 노래..
이 노래는 이미 국내외적으로 큰 인기를 지금까지 누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가사도 낙천적인 미국인들의 삶을 잘 반영하고 있다.
B.J. Thomas는 지금도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마지막 엔딩신은 이후 다른 영화들에서도 자주 사용된 엔딩신인데,
결과는 예상되지만 긴 여운과 일말의 여지를 남기는 효과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효과로는 이준익 감독의<왕의 남자>의 엔딩신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은퇴는 해 봤으니 이젠 뭘 해 볼까?"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
파란만장하면서도 극적인 그들의 삶이 흥미롭다.
그들은 총 앞에 서기보다 총 뒤에서의 삶을 살았다.
총 앞에 서서 삶을 살았다면 진작에 누군가의 총을 맞아 죽었겠지만,
총 뒤에서 은행과 열차를 털고 사랑과 우정의 소중함과 삶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죽기 전까지 아메리칸식 농담과 자신들의 꿈을 잃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들이 악명 높은 강도범으로 평생 추격 당할 처지이자,
강도짓 외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라 평하겠지만,
아우토반 같은 인생을 숨가쁘게 달리면서 낭만과 풍류를 즐기는 용기를 가졌다.
그리고 늘 또 다른 내일을 향해 총을 쐈다.
악명 높은 범죄자들은 언젠가 마땅한 처벌을 받게 된다.
미궁으로 끝나거나 공소시효가 지나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지만,
평생을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것 역시 만만치 않고,
공의의 신(神)이 있다면 그들의 허물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 자체는 나쁘지 않다.
물론 어디까지나 영화니까 가능한 말이다.
일반적으로 범죄자들의 실제적인 삶을 알 수 없다면,
그냥 그들이 조용히 처벌을 받게 무관심 하는 것이 더 좋다.
피해 당한 사람들은 동정이나 공감보다 처벌과 죽음을 원하기 때문이다.
"은행은?"
"쉽고 잘 익었고 탐스럽지."
"은행 얘기야?, 여자 얘기야?"
"하나 얻으면 다 얻은 셈이지."
무사들은 칼로써,
카우보이들은 총으로써,
그들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들은 무기를 들어 사람들을 해치거나 무법자가 되었지만,
황량한 벌판이나 공터에서 살얼음판 승부를 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는 또 다른 도전자를 기다린다.
후세 사람들은 그들의 정신을 높게 평가하며 심지어 '낭만' 이라 칭송한다.
물론 지금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그것이 낭만이었다.
그리고 불꽃처럼 살다가 연기같이 사라졌다.
그들에게 내일은 오늘을 살아남은 선물이다.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군복무 시절 병장 때가 생각났다.
전역을 세달여 정도 앞두고 방산무기화력시범단으로 영상지원파견을 가게 되었는데,
각 예하부대에서 파견 나온 정예 파견병들이 모이니 10명정도 되었다.
대부분 상,병장들이고 나이도 비슷해서 밤샘작업에도 즐거웠다.
8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파견이라 추석을 같이 보내게 되었는데,
파견지역이 산골짜기라 특별히 외출하여 나가 놀다가,
돌아오는 길에 비디오 가게에 들러 영화 몇 편을 빌렸었다.
그리고 TV 앞에 앉아 담당장교와 함께 밤새 과자를 먹으며 영화를 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만월(月)은 온 세상을 비추었고 주위에서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다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졌고 그때 만났던 파견병들은 그후로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정의롭고 낭만적인 내일을 향한 총을 쏘고 있다.
오늘 본 영화처럼 그들도 어디선가 내일을 향해 총을 쏘고 있을까?
아니면 그것을 시기하는 추격대의 추격을 받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벌써 총과 말을 버리고 어디에 숨었거나 죽었을까?
누군가가 내 뒤를 추격하더라도..
좌절과 죽음이 엄습하더라도..
나는 오늘, 내일을 향해 총을 쏜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일을 선물로 받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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