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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밖에 없다.

EAST-TIGER 2021. 12. 29. 14:58

최근 어느 해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일들 중 몇몇은 생생하여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겨울바람이 거세어 그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쓴다. 

난방기의 온기가 사람의 온기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낮은 덧없고 밤은 서럽다.  

 

정 안수집사님으로부터 COVID-19 추가접종을 받았다.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김 집사님이 먼저 권유했다.

별다른 증상이 없었고 약도 먹지 않았다.

"벌써 6개월이 지났구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늘 앞서간다.

 

거의 2년 만에 석 목사님을 만났다. 

빈손으로 가는 것이 민망하여, 

케이크 몇 조각들을 사서 중앙역으로 갔다. 

이상하게 석 목사님 집으로 갈 때마다 자주 기차가 연착된다. 

40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넘게 걸렸다. 

사모님이 만드신 저녁 식사를 함께 먹었다. 

오랜만에 마주 앉았지만 대화는 담백했다. 

진공관으로 된 스피커를 통해 함께 음악을 들었다. 

3시간 정도 만났고 집으로 돌아왔다. 

유난히 습기 찬 밤이었다.

 

제주도에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졸렬한 성격처럼 그림 역시 눈에 보이는 것 외에는 그리지 못한다.

그런 그가 사람들 앞에서 그리는 것을 가르친다.  

포털에서 이름만 검색해도 이렇게 개인 정보가 나오는데, 

왜 거짓말들을 하며 한동안 그 난리를 쳤을까? 

역시 죄인은 말이 많다.

그가 "망고"를 언급했을 때 웃었다. 

혹시 "바나나"를 썼다면 어땠을까?

11년 전처럼 또 남자 친구를 옆에 두고 내 앞에 나타났다. 

정말 변하지 않은 편력이다.

여전히 수틀리면 쓸데없는 말들로 자기 자신을 파괴한다.

그는 내가 왜 떠났는지에 대해 아직도 알지 못한다. 

성장의 가능성이 없는 퇴보를 보는 기분이다.

그를 향한 어떠한 연정도 내게 없다. 

나를 더 이상 찾지 않길 바란다. 

 

처음으로 "Black Friday"에 쇼핑을 했다. 

옷 몇 벌과 신발 두 켤레를 구입했다.

오랜만에 방에 큰 상자들이 놓여있다. 

옷들과 신발들이 다행히도 몸에 맞아 반품 없이 정리했다.

 

중고등부에 새로운 선생님들이 왔다.

이제 나를 포함하여 6명이 되었고 숫자적으로 충분하다. 

이제부터 또 새로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지만,

학생 임원들을 보며 지나온 시간들이 가져다준 성과들도 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무엇을 한다는 것이 즐겁고 고통스럽다.

신은 그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듯 자꾸 나를 그 안으로 밀어 넣는다. 

즐겁고도 힘겹구나. 

 

세탁기가 고장 나서 몇 번 집 근처 무인 세탁방에 가서 빨래를 했다.

이용요금은 3.50€라서 큰 부담은 없었다. 

"빨리 세탁기를 고쳐." 

메아리처럼 귀에 들리는 말에 Frau Stein으로부터 업체를 소개받아 세탁기 수리를 맡겼다.

수요일 오전 11시에 두 남자가 찾아왔고, 

몇 번 세탁기를 작동하며 문제를 찾더니 물에 젖은 천 조각을 내게 주었다. 

"이게 세탁기 밑에 있는 모터에 걸려 있었어요." 

자세히 보니 내 것이 아니었다.  

몇 초 뒤에 세탁기는 고장 난 것이 아니라 잠시 불편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모터에 걸려 있던 그것을 보니 몇몇 감정들도 잠시 일시 정지되었다. 

두 남자는 그것을 내게 주고 나에게서 65€를 받아갔다.

세탁기에 옷들을 넣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몸을 돌려 책상 앞으로 가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세탁기 고쳤어." 

 

논문 발제를 위해 Herr von Assen에게 교정을 부탁했고, 

늘 그랬듯이 간결하게 교정하여 돌려주었다. 

교정 후 몇 장 더 써야 할 것 같아서 더 쓰는 중이고 다시 최종본을 보내야 한다.

게으름은 항상 이럴 때 더 잘 찾아온다.

우선순위가 낮은 다른 일들에 기웃거리고 괜히 피곤하다고 느낀다.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빠르고 느리게 계속할 일을 할 뿐이다.

여기까지 쉽게 온 것이 아니다.

 

한 때 여당에는 대선주자들이 많았었다. 

안희정, 박원순은 불행하게 낙마했고, 

이낙연, 추미애, 김두관, 정세균은 기성 정치인들로 신선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이 대선후보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권이 만들어 낸 최대 실수다. 

야당에게 강력한 대선주자를 선물했고, 

많은 국민들이 정치검사에게 희망을 걸게 만들었다.

그동안 한국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기상천외한 일들이 많았는데,  

김종인, 윤석열, 김한길, 김병준, 이준석으로 구성된 과두체제를 보니 또 그럴 조짐이 보인다. 

윤석열은 정치력보다 개인 권력에 의한 독단을 좋아하고, 

이재명은 정책의 빠른 실행과 그에 걸맞은 성과를 좋아한다.

둘 다 차가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다른 두 얼굴처럼 보이지만 시대의 한 얼굴일지도. 

 

넷이 함께 탄 버스에서 둘이 내리더니, 

하민과 나만 남았다. 

함께 Düsseldorf 중앙역으로 걸으면서 대화했다. 

"저는 싸우는 거 좋아해요. 싸워야 그 사람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거든요." 

싸움에는 기술이 필요하고 그 기술의 목표는 화해여야 한다.

"저는 즐겁게 해 줄 자신이 있어요."

이론과 실제는 전혀 다르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고, 

설령 이해하더라도 어느 순간 오해할 수 있는 여지는 다분하다. 

그 오해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다시 오해한다.  

열차가 도착할 시간이 되어서 헤어졌다. 

하민이는 주경이와 점심 식사를 한다고 했다. 

 

최 집사님이 그동안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들에 대해 사과하면서 김치를 담아 주셨다. 

김 집사님은 수줍게 팩에 담은 김치통을 내게 내밀었다.

천 집사님과는 화상으로 대화를 나눴다. 

김 집사님이 미리 크리스마스 선물과 카드를 주셨다. 

올해 성탄절에는 35개의 카드를 쓸 예정이다.

특별히 두 개의 선물을 준비했다.

 

Blog BGM을 몇 곡 추가했고 자주 듣는다. 

"춥다."라는 말이 그냥 나올 정도로 집 안과 밖은 완연한 겨울이다. 

올해는 날씨가 유난스럽다. 

효성이가 생일이라서 축하 인사를 했다. 

같은 날 부모님 결혼기념일이라 축하 인사를 했다. 

이틀 뒤에는 수진이 생일이라서 축한 인사를 했다.

 

16일 논문 발제는 잘 끝났다. 

Kolloquium에서 서로 인사만 하던 한국인의 이름을 처음 알았다. 

같은 날에 서로 각자의 논문 일부를 발제할 예정이었는데, 

내가 먼저 할 줄 알았지만 지도 교수님은 그가 먼저 하길 원하셨다. 

"Kant를 먼저 보고 그다음 Schelling을 보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그는 내게 한국어로 번역된 발제문을 주는 친철함을 보였고, 

읽다 보니 어떤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고 싶은지도 조금 알았다.

그의 모습에서 불과 몇 달 전의 내 모습을 본다. 

그의 발제가 끝난 후 내 발제가 시작되었고, 

그 어느 때의 발제보다 적극적으로 말하고 대답했다. 

"전체적으로 Herr Seo가 논문에서 하고 싶은 말들에 동의합니다." 

조교인 Alexandra도 평소대로 논문의 몇몇 부분들에서 나와 말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1시간 30분 정도 지나고 발제는 끝났다. 

강의실을 나설 때 잠시 현기증이 났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아주 오랜만에 무겁지 않았다. 

 

우체국에 가서 부모님과 동생을 위한 크리스마스 카드들을 보냈다. 

Weinheimer 부부와 Donald에게도 우편으로 카드를 보냈다. 

4일 만에 30장의 카드를 썼고 너무 앉아 있다 보니 엉덩이에 종기가 생겨 짜야했다. 

올해는 토요일이 성탄절이라서 성탄절 예배는 실시간 온라인 예배로 드렸고, 

주일은 평상시대로 현장 예배로 드렸다.

예배 후 모든 공동체원들이 미리 준비한 선물을 서로 교환했고, 

밤을 새워 쓴 카드들도 3명을 제외하고 주인을 만났다.

선물들은 모두 전달되었다. 

가방과 손에 선물 꾸러미가 가득했다. 

훈이와 형준이와 점심 식사를 했다. 

비가 내렸다. 

 

"미안해"라고 말했으면 끝날 일이었다. 

누군가는 이 말의 필요성을 아예 못 느꼈고, 

누군가는 이 말을 해야 할 시기를 아주 놓쳤다. 

미안하지 않으니 고마움을 모르고,

고마움을 모르니 사랑을 모른다.

"배려"라는 단어로 포장한 그대의 이기심.

나는 "배려"를 바라지 않는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이 세 가지 말만 할 수 있다면 "배려"하지 않아도 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불로소득을 규제하는 방법은 세금밖에 없다.

거둬진 세금은 저소득층을 위해 쓰여야 한다.

그들이 실질적인 노동자이자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돈이 승계 가능한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장에 경제를 맡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지금은 정부 주도 하에 계층별, 소득별 섬세한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   

이 개편이 이루어진 후 기본 소득 지급의 가능성을 말할 수 있다. 

 

아버지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후 집에서 격리 생활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곁에서 회복을 도우셨다. 

자식들이 없는 집에서 두 사람은 2주 동안 함께 지냈다. 

아버지는 완치되셨고 어머니도 음성 판정을 받았다.

어머니가 확진되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버지는 어머니처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밖에 없다. 

 

유진이 아버님인 서 집사님이 지난주에 소천하셨다. 

2년 전 박 장로님이 비슷한 시기에 소천하셨는데, 

다시 겨울에 추도 예배를 했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없었다. 

해병대에 입대하여 월남과 파독 광부 생활을 했던 서 집사님. 

세 남매들은 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들을 말하며 울었고, 

아내이신 김 권사님은 일을 쉬며 병상에 누운 남편을 돌봤다.

"아침식사까지 함께 하고 잠깐 학교에 일이 있어 간 사이에 일이 생겼어요."

임종은 아들이 보았다며 아쉬워했다. 

서 집사님은 그 아들이 철든 것을 보고 가셨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머물 수밖에 없는 세상인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스스로를 소개하며 익숙해지는 것이 버겁다. 

받아줄 수 없는데 받아들이는 척하는 것이 느껴지고, 

오해한 것을 이해하고 그 이해가 확신이 되는 것을 본다. 

나는 티격태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늘 편안하고 따뜻한 위로를 원했다. 

지혜로운 말과 행동들도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럴 수 있을는지.. 

 

이렇게 2021년 끝에 있다. 

날씨는 무척 춥고 비가 자주 내린다. 

이제 다시 글을 써야 하고 끝을 봐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하든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이 신경 쓸 것 없다. 

부끄럽지 않고 비굴하지 않은 삶을 원한다. 

가진 것이 별로 없으니 작은 것에 감사하며 살겠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거짓 없이 진실할 것이다. 

친구들과 가끔 식사와 차를 하며 대화하고, 

평소 생각하고 공부했던 것을 여러 방식들로 표현할 수 있으면 된다. 

나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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