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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밤은 풍성하지 않다.

EAST-TIGER 2021. 9. 1. 04:42

흐린 날들이 많았던 8월이었다.  

올해 여름은 서늘하고 하늘에 구름이 많다.

여러 면에서 그동안 독일에서 보냈던 여름이 아니다.

처서가 지났으니 한국은 가을일 테지. 

독일의 가을은 9월 말부터 시작이지만, 

올해 가을은 내게 그 어느 해보다 더 일찍 다가왔다. 

침묵하며 고민하기 좋은 시간이다.  

 

Köln 중앙역 앞에 있는 대성당 뒤쪽으로 가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가봤고, 

평소 Haltern am See에 있는 호수를 보고 싶었는데 처음 보았다.

Düsseldorf가 어떤 도시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독일 유학 후 여름방학을 방학처럼 보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올해 여름 한 달은 방학 같았다.

그 방학은 완전히 끝났다.  

이제 또 나를 방과 그 주변에 가둔다. 

 

석사 논문 때보다 많은 글을 쓴 것은 확실하다. 

이미 많이 지루하고 점점 지쳐가고 있다. 

독일인이든 한국인이든 얼굴과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언제 끝나냐?"는 질문을 던지면,

감정이 조금 섞인 안드로이드처럼 반응하며 대답한다.

어떤 안부 인사가 된 것 같아서 싫어진다.

유희열은 13곡이 담긴 TOY 7집을 만들 때까지 7년 걸렸다. 

올해 가을이면 7집이 나온지도 7년이 된다.

유희열은 거의 매일 들을 것 같다. 

"TOY 8집 언제 나와요?"

앨범 작업을 하듯이,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고민하며 글을 쓰고 있다.

 

2017년 대선 이후 한국 사회는 몇 년간 "종북좌파 몰이"를 했다. 

진보적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남북문제에서 인권을 주장하면, 

"종북좌파냐?"라고 물었다. 

2022년 대선이 다가오는 지금,

한국 사회는 또다시 몰이를 하고 있다. 

"너 페미냐?"    

이 질문에 대한 대답 때문에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몰아지고 정리된다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답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 

사회 발전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듯한 질문과 의혹들로, 

포털과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바삐 돌아간다.

그렇게 돌아가다 보면 어느새 발전을 이룬다.

정(These)과 반(Antithese)이 있어야 합(Synthese)이 되듯이. 

 

친한 사람에게서 나와 다름과 생각의 차이를 발견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때 내 나이가 몇이고 어떤 생각들로 둘러싸여 살았는지에 따라 달랐다. 

그 다름과 차이 때문에 서로 가까웠는데 멀어졌고 기억에서 잊힌다.

시간이 갈수록 냉정하고 단단했던 것들이 어딘가 깨어지고 다져졌다.  

그렇게 잊히더라도 삶의 어느 순간에 문득 생각이 난다. 

그가 없는 곳에서 그와 내가 마주설 때, 

그의 표정은 내가 기억하는 표정들이다.

왜 그렇게 나를 바라보는지,

왜 그렇게 너를 바라보는지.

물어봐도 답할 수 없다.  

사라져도 또 나타날 너.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라고 물었을 때, 

"아니,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때 그의 시선은 나에게서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가까이 있지만 여러 부분들은 이미 멀어졌거나 멀어지고 있었다. 

그게 내게 하고 싶은 말이었나 보다. 

그가 처음으로 화를 냈을 때,

그 모습이 고스란히 하나의 기억이 되어 내게 남았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드러나지 않은 얼굴에서 감정들이 버무려진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듯 공항에 도착했다.

서로 최소한의 말과 몸짓으로 헤어짐을 대신했다. 

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보내는 공항에서 사진을 찍지 않았다. 

역에서 집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여러 비행기들이 이륙하여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낮게 내려앉은 회색 구름들 속에서 비가 내렸다.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서서히 무거워졌다.

 

Gelsenkirchen 외국인청은 내게 여권 재발급을 요구했다. 

언제 체류 연장을 심사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하나하나 트집을 잡으려면 잡을 수 있는 관청이다. 

요구대로 해줄 수밖에 없고 그래야 불편하지 않다. 

오랜만에 Bonn 한국 대사관 분관을 가야 한다. 

일단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설명했고 인터넷으로 방문 예약을 했다.

여권을 만든 지 벌써 10년이 되어간다라.. 아득하다.

  

문을 열자 차가워진 빈 방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나를 맞이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주방 선반과 냉장고를 열었다.

가지런히 정돈된 물건들과 식재료들. 

성격이 느껴져서 잠깐 동안 바라봤다.

식사를 하고 몸을 씻은 후 책상 앞에 앉으니,

잠시 멈춰있던 일상의 부분들이 재생된다.

침대 옆에 있던 아이폰 전원 플러그가 사라졌다. 

 

Christian은 나를 만나고 싶어 했지만, 

그때마다 일이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묘한 엇갈림은 자칫 오해로 이어지기 쉬운데, 

벌써 세 번이나 엇갈렸다.  

만나서 대화하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겠지.

"이봐, 어쩌다 보니 엇갈릴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럴 때 경험상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긴 해명을 하지 않아도,

더 잘 이해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해준다.

같은 성별끼리는 왜 이렇게 너그러운지..   

 

방을 나서기 전에 했던 청소. 

축제 같았던 날들의 흔적들을 비워내고 닦아내며,

다시 온전한 혼자로서의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지를 스스로 주입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또 축제 같은 날들이 다가오겠지.' 

'그날들도 즐거울 테지.'

'그때는 무엇을 할까?' 

...

그런 저런 생각들을 하던 나를 흘겨보던 눈빛과,

잘 들리지 않던 낮은 목소리는 어떤 엇갈림.

생각들은 저마다 갈 길을 잃었고 흩어졌다.

순간 주입된 의지에 다른 의미들이 내려앉았다.

따갑고 쓰리다.  

 

비 내리던 늦은 오후에 찾아온 우울. 

누가 있든 없든 찾아올 것들은 찾아온다. 

잠은 충분히 자서 더 잘 생각은 없었다. 

Blog 배경음악을 새로 선곡했다. 

이제 변함없이 선곡된 것들은 "최애"라 할 수 있겠다.

음악을 들으며 우울을 맞이했다. 

 

마지막으로 눈물 흘렸던 적이 언제였던가? 

울 뻔한 것을 울었다고 해야 하나?

오래된 기억을 더듬으면,

무기력한 순간에 신을 찾으며 기도했을 때 분명 난 울었다.

울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잘 울지 않기에 나의 눈물을 본 사람들을 기억한다.

유학생활 동안 몇 년간 울 일이 없어서,

스스로 "인간"이 맞는지 물어봤던 적도 있다.  

아아.. 가끔 영화나 Video Clip들을 보다가 울 뻔했지.

누군가 내 옆에서 눈물을 흘리면, 

쓸쓸해지고 무력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불쾌한 관념.

그 관념을 쫓아내기 위해 말한다. 

"울지 마."  

 

대학 도서관에서 예약된 책들을 찾기 위해 Münster에 갔다. 

중앙역에서 나오려는 순간 소낙비가 내렸다.

출입구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몇 발자국 너머에서 맹렬히 내리는 비를 보았다. 

우산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문 밖으로 나갔다. 

잠깐 뒤를 돌아보니 비와 나는 그들의 눈에 어떤 풍경이 되었나 보다. 

비는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했고 그칠 때면 햇볕이 내리쬤다. 

전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더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급격히 지루해졌다. 

짧은 문자들이 오고 갔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마트에서 식료품들을 구입했다. 

방에 들어서자 몸이 나른하고 몽롱했다.

다시 짧은 문자들이 오고 갔다. 

책상 앞에 있다가 너무 피곤해서 침대에 누웠고 잠이 들었다.

30분이 조금 지나 전화가 와서 더듬거리며 받았다.

다음 날 아침에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전화를 끊고 아침에 다시 봤을 때 방에는 나 혼자만 있었다. 

 

Netflix 드라마 세 편을 보았다. 

<미스터 션샤인>, <킹덤> 시리즈, <나의 아저씨>. 

드라마를 보면 여러 가지가 눈에 들어오고 감상들이 떠오르기 때문에, 

한 편을 보더라도 여러 장면들을 되새긴다.

<미스터 션샤인>은 다소 과한 로맨스만 제외하면 좋은 시대극 드라마다.    

<킹덤> 시리즈는 여러 좀비 영화들의 오마주가 보이고 사극 형식의 판타지 물이라 취향은 아니지만,

에피소드가 쌓이면서 보이는 괜찮은 연출과 문제의식들이 있다.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몇 년째 가지 못한 한국을 간접 체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도청을 통한 공감과 연민, 사랑은 신선하지 않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기억에 남은 몇몇 장면들은 가끔 생각나면 찾아서 다시 볼 것이다.  

OST에서 세 곡을 Blog 배경음악으로 선곡했다. 

 

쓸데없는 배려가 그에게는 무관심처럼 보였고,

침묵 속에 되새기는 시간이 다가오지 않음이 되었다. 

"네!"에서 "아니오!"로 넘어가는 마음들을 추격하던 날,

나의 "그늘"에서 흘리던 눈물. 

무미건조한 말들만 둥둥..

 

자다가 깨서 다시 잠들지 못했던 새벽. 

여러 생각들에 엉켜서 의미 없는 몸짓만 하고 있을 때, 

문득 부모님이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갑자기 오전에 걸려온 전화에 놀라셨다. 

많은 말을 할 수 없었다. 

"... 그냥 생각나서 전화했습니다." 

유별난 자식들이 여직 부모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압박에 집을 나가려고 몇 번을 상상했었다.  

지금은 내가 무엇을 하든 부모님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함께 지낼 날들이 함께 지내온 날들보다 현저히 적다. 

푸념인지 헛소리인지 모를 말들을 부모님께 조금 쏟았다. 

"매일 너를 위해 기도한다."

아버지는 정말 달라진 듯싶다.  

함께 근처 공원에 가신다고 한다. 

사랑하기에 결혼까지 하며 같이 살았는데,

이후 몇 번의 부부싸움과 다툼을 했을지 궁금했다.

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묵인과 그러려니, 속앓이, 이해 못함이 있었을 텐데..

각자의 Core는 크게 변하지 않았겠지만, 

그 주변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참을 수 있게 된 걸까?

그것들도 사랑이라며 살았을까?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을 키워 낸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위대하다.  

전화를 끊고 다시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잠은 아침이 되어서야 찾아왔다.

시차 없는 세계에 혼자 남았다. 

 

등 뒤에서 나의 하루가 전부 보일 때, 

신경 쓰이면서도 어떤 편안함이 있었다. 

복잡했던 표현들이 단순하고 분명해질 때, 

익숙해져서 그 의미들이 가벼워질 것 같아 근심했다. 

내게는 아무 일도 아니고 변한 것도 없었지만,

물먹은 목소리에 담겨 있던 단호함은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했다.

어쩌면 말보다 서로의 하루를 보여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어려웠던 시작과 달리 파괴와 끊어짐은 겉보기에 쉬워 보인다. 

숨겨지고 도려내지는 어떤 마음들. 

그것을 바라고 원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생기와 의미를 잃은 것들은 이제 "유물"들이 되었지만, 

최대한 원형 그대로 둘 생각이다.

완전히 사라질 기억들이 아니라면 같이 살아가려 한다.

소중했던 것들은 끝까지 소중하게, 

내가 시작한 일에 대한 마지막 책임은 항상 내가 진다.

확실히 나이가 들었다.    

 

지수가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나 유학을 그만둔다는 것이 여간 마음이 쓰인다.

지수가 직접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면 모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오랜만에 단비가 안부를 물었고 짧게 문자로 대화했다. 

혜리도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고 짧게 문자로 대화했으나 이틀 만에 계정을 삭제했다.   

나영이가 하는 일을 지지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나영이가 하고 싶은 대로 둘 수밖에 없다.

정 안수집사님은 더 이상 백신 접종을 교회에서 하지 않기로 했다.

가끔 기분 나쁜 문자들이 와서 도움을 받아 더 이상 오지 못하게 했다. 

 

3년 전 여름에 호날두가 맨유로 왔다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별로다.

이강인은 마요르카로 이적했고 황희찬은 울버햄튼으로 이적했다.  

두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을 볼 때 모두에게 좋은 이적이다. 

아스널은 감독 교체를 생각해봐야 한다.  

Wenger 감독을 내친 아스널은 몇 년째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 

 

기다리던 날들을 만남의 기쁨으로 보상받았을 때,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을 주었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작은 숨소리에도 반응했다. 

지금 해야 할 것들을 먼저 하고 근심 없이 이후의 일들을 하면 좋겠지만, 

어느 날 삶의 무게가 느껴지고 그리움의 바늘이 그곳을 향하면, 

나 역시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짊어지고 떠나야만 했을 것이다.

나도 말하고 있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 

 

일찍 잠들어서 그런지 조금 애매한 시간에 깼다. 

나뭇가지들과 잎들이 서로 바람에 실려 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잠시 평온해진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동이 조금 튼 허공에 손을 뻗었다. 

서늘한 새벽바람이 느껴졌다.

세수를 하고 의자에 앉아 글을 썼다. 

허기가 느껴져 식사를 했고 글을 조금 더 쓴 후 옷을 입었다.

비가 올 것 같아 작은 우산을 가방에 넣었다.  

선로 공사가 끝나서 주일 아침에 Düsseldorf 행 기차들이 예전처럼 자주 다닌다.

비가 내렸고 차창 밖으로 빗방울이 날카롭게 내려앉았다.

보고 있자니 어딘가 베이는 느낌이 들었다.

교회에 와서 늘 하던 일들을 했다. 

말씀 나눔을 하다가 감정이 격해졌다.

에스더가 그런 나를 보며 슬픈 표정을 짓다가 눈물을 흘렸다. 

나도 거의 울 뻔했다. 

교회학교 졸업식이 있었지만, 

중고등부 졸업생들은 개인 사정으로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건희, 건영 형제는 예정대로 교사직을 그만두었고, 

그들의 앞날을 위해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배 후 공과 시간에 종선이가 도착했고, 

에스더는 줄게 있다며 직접 만든 쿠키를 내게 주었다. 

공과 후 학생회 임원들과 첫 기도회를 했다. 

비는 계속 내렸다.

 

집에 와서 옷을 벗을 때마다 피곤함이 입혀진다. 

꿈이면 좋았을 3일이 지나갔다.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것 같은데, 

핸드폰을 보고 있으면 먹먹하다. 

뭔가 있었던 기능들이 자동 삭제된 느낌이다. 

침대에 누우니 넓은 회색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피곤한데 뭔가에 붙잡힌 듯 깨어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듯한 썰물의 기세. 

밀려나고 치워지고 버려진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고 깼다. 

글을 쓰다가 아침이 되어 다시 잠들었다. 

이제 밤은 풍성하지 않다. 

 

여권 재발급을 위해 증명사진을 찍어야 했다. 

마지막 증명사진은 3년 전 Münster에서 Canon EOS 6D를 쓰는 여자 사진사가 찍었다.

예전에 증명사진을 핸드폰으로 찍을 수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안내대로 따라 해 봤다.

평소 셀프 카메라를 잘 찍지 않기 때문에 어색하다. 

몇 장을 찍은 후 마음에 드는 것으로 규격에 맞게 편집했다.

USB에 파일을 담아 ROSSMANN에 가서 인화했다. 

27 Cent.  

좋은 세상에 산다는 것을 이럴 때 조금 느낀다. 

사진을 보니 며칠 째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는 얼굴이 보인다.

그냥 그때 둘이 했다면 좋았을 텐데..

계란 장조림을 다 먹었다. 

 

정직하고 깨끗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은 쉽지 않다. 

더럽고 냄새나는 모습들을 보게 되면 그 마음도 조금씩 허물어진다.

몇 개의 의심들이 확신이 되어 진실인 듯 보일 때, 

"아직 모른다."며 조용히 마음을 다스린다.

"알고 있지만 그럴 수 없다."는 말, 

"그럴 수 없지만 알고 있다."는 말. 

긍정과 부정은 동등한 무게를 갖지 않는다.  

 

아침 식사로 카레를 만들어서 먹었고,

전날까지 긴 옷을 입었는데 오늘은 반팔을 입었다. 

8월의 마지막 날에 Bonn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편도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Düsseldorf를 지나 Köln 중앙역에 도착했을 때 기차가 잠시 멈췄다.

천천히 기차가 움직이자 문득 몇 주 전에 걸었던 길들이 보였다.

날씨도 그때와 비슷했다.

언제 다시 걸을 수 있을까? 

"기적이 실제로 가능하냐?"는 질문과 같다. 

 

4년 만에 Bonn 분관을 다시 찾았다. 

석사 논문을 제출하고 2017년 대선 때 재외국민투표를 이곳에서 했었다.

구형 Straßenbahn이 다니는 도시들은 주로 대도시들이고, 

그 도시들에서 비슷한 풍경들을 본다.  

예정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 

간발의 차이로 나보다 먼저 들어온 여자가 용무를 보았다.

기다리는 장소에서 독도 사진첩을 보았다. 

12년 전 여름에 정섭이 형과 독도에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서 여권과 체류허가증, 사진을 제출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렸던 목소리가 들렸고, 

몇 분 동안 눈을 보며 대화하다 보니 어딘가 황 선생님의 느낌이 있었다.

메일을 보내라며 명함을 주었는데 실제로 성이 황 씨였다!

연관성을 더 찾으려 했지만 의미 없음을 단번에 깨달았다. 

닮았지만 같은 사람이 아니다. 

새 여권은 2주 뒤에 등기우편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용무를 끝내기 전에 NRW 지역 외국인청 근황을 물었다. 

"Düsseldorf, Essen 외국인청에 체류연장 신청한 사람들 중에는 1년 가까이 답장이 없는 경우도 있어요."

작별 인사를 하고 분관을 나섰다.

 

집에 돌아오니 저녁이었다. 

식사를 하고 씻으니 은근했던 피곤이 노골적으로 느껴진다.

책상 앞에 앉아 몇 문장들을 적어본다.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파란 베개를 안고 잠을 청한다. 

 

8월 31일이 이렇게 끝날지 몰랐고, 

9월이 이렇게 시작될지 몰랐다.  

일어날 일들이 일어났고,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새롭지 않은 시작을 한다. 

하루 적당량의 두 끼를 먹으면서 달리기와 맨손운동을 한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 때면 창가에 서 있거나 침대에 누워 듣는다.    

가끔 소리 내어 시와 글을 읽는다. 

써야 할 글들을 쓴다. 

그리워할 것들을 그리워한다. 

사랑할 것들을 사랑한다. 

잠을 편하게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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