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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름과 도전을 기억하라! 본문
근래에 슬프게도 두 명의 도전자가 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인간이 가진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을 했고, 그것이 삶이었다. 나는 어릴 적에 몇몇 산악인들과 은퇴한 운동선수, 탐험가들이 자연을 상대로 무모한 도전을 할 때마다 "저렇게 해서 뭐하나? 누가 알아 주나? 월급은 받나?" 라고 중얼거렸다. 그들은 누가 시키거나 바라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고생하겠다고 자처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무모한 도전은 죽음과 가장 맞닿아 있으며, 익숙한 가정과 친구들과의 일상생활이 아닌, 낯설고 혹독한 그들만의 그라운드였다. 그 그라운드에서 그들은 자기 스스로를 의지하며, 구경꾼 없는 싸움을 해야 했다.
좌절은 그들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하지만, 언론과 사람들은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냉정하다. 관심과 후원 없이는 그들의 도전은 그들만의 도전이 되어버리거나 재도전 조차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항상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도전을 시도했고, 과거의 명성은 그들의 '현재' 앞에 큰 효력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오직 '현재'만이 자신을 대변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도전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몸이 아파도, 환경이 열악해도, 비난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의 '무모한' 을 넘어선 '무한' 도전은 계속 되었다. 그리고 그 도전의 끝은 영광과 죽음으로 극과 극이었다.
왜 그들은 계속 도전을 하는 것일까? 솔직히 그들의 도전정신은 근래에 호평을 받고 있지, 이전에는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매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도 잘 기억 못하는데, 중년이 된 왕년의 스타의 이름를 기억하기에는 우리 스스로가 너무 관대하다. 나는 2005년에 왕년의 수영스타 조오련씨가 두 아들과 함께 수영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횡단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지난해는 독도를 33번이나 돌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고생을 사서한다.". "수영말고는 할 것이 없나보다."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는 장성한 두 아들의 아버지였고, 이젠 여가로 수영을 즐겨도 될 나이였다. 나는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가 그런 도전을 해야 했는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도 일본의 극우파들의 독도 망언에 늘 한국민들의 자존심을 상처받았다. 그것에 분개하여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들도 있고, 거리나 인터넷 상에서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체육인으로서, 수영선수로서 폭력이나 격한 역대응이 아닌,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1인 시위였다. 그의 시위는 혼자였지만, 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받았던 국가적 자존심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왕년에는 불모지나 다름 없던 우리나라 수영계의 본좌이자 희망이였다면, 말년에는 우리나라의 보이지 않는 자존심이었다. 그의 도전의 삶은 죽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보다 앞서 불의의 사고로 안타까운 죽음을 당한 고미영씨도 여자의 몸으로 남자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남녀평등을 외치지만, 기회주의자적인 얍삽한 외침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녀는 직접적인 실천을 통해 남녀평등의 의지를 보였고, 그것만으로도 위대한 걸음이었다. 8000m 이상의 고산 14좌 중 11좌를 등반하면서, 이 세상에서 몇 사람들만 보았던 광경을 보았을 것이고, 체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산들의 정상마다 태극기를 꽂았다는 것은 강렬한 애국심이다. 마치 암스트롱이 인류를 대표해서 달표면을 밟았지만, 자기나라 국기인 성조기를 꽂은 것과 비슷하다. 작은 체구와 연약한 여자지만 대자연을 향한 불굴의 도전의지는 어떤 남자보다 강했다. 끝내 산은 그의 하산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의 피가 히말라야산에 스며들었기에, 그녀는 영원한 산악인으로 남게 되었다.
두 도전자의 삶은 아쉽게도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은 죽는 날까지 도전의지를 불태웠다. 노환으로 죽음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 당당히 맞섰다. 요즘같이 도전정신보다는 무사안일한 태도가 만연하고, 몸이 힘들거나 귀찮은 일에는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두 도전자의 삶은 귀감이 될 만하다. 누가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의지에서 비롯되었고, 그 행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생산적인 활동이었다. 두 도전자의 뒤를 새로운 도전자들이 나오기에는, 우리나라의 천박한 사고방식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 가슴 아프지만, 언젠가 누군가가 대한해협과 독도를 헤엄치고, 14좌 고산과 북극점에 태극기를 휘날리게 해줄 것이며, 그 역사적인 순간들을 한국민이 다시 보게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 희망을 얻을 것이고, 좌절과 실패의 나날 속에서 성공과 승리의 나날을 맞이할 것이다.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지 않겠지만, 두 도전자 이름과 그들이 이루어냈던 일들을 나는 기억하겠다.
謹弔 - 산악인 고미영씨와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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