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체 게바라 평전]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 본문

內 世 上 /圖書館

[체 게바라 평전]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

EAST-TIGER 2010. 5. 9. 10:00


작년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받은 책이다.


  39세의 나이로 숨진 사람의 평전이기에는 정말 많은 분량의 평전이다. 7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나는 지난 1월부터 읽었고 집중적으로 읽기보다는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3월 말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청량리행 전철 안에서 이 책을 다 읽었다. 시간은 밤 11시가 다 되었고, 책을 덮는 순간 나의 입에서는 짧은 탄식으로 체 게바라의 이름을 불렀다. 생각해보니 지난 1월부터 3월 말까지 나는 이 책을 읽는 시간이면 항상 체 게바라와 함께 있었고, 그의 생각과 기분을 전투와 일상 속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어쩌면, 아니 분명 낭만주의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을 가진 낭만주의자, 

  뜨거운 심장을 가진 '체' 와 같은 사람들이 역사라는 공간에서 버림받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151p>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체 게바라에 대해 잘 몰랐다. 그 전까지 내가 체 게바라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면 수염과 긴 머리가 인상적인 그의 얼굴이 담긴 사진과, 군대에 있을 때 서울대 서양학과를 다니던 선임병이 생활관 게시판에 체 게바라의 얼굴을 직접 그리고, 그 옆에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를 적었다. 내가 그 그림과 사진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체 게바라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이 전부였다. 그러기에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체 게바라에 대해 잘 몰랐던 내 자신이 후회되었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자신이 가진 소신과 신념을 진실로 삶에서 보여준 몇 안되는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강렬하고 인상적이지만 외롭고 치열하게 짧은 생을 마감하고, 그가 없는 이 세상에 남겨진 자들은 그를 그리워하며 아쉬워 한다.



  "게릴라란 흔히 여겨지듯 소규모 전투를 벌이는, 

강력한 군대에 대항하는 소수 과격파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게릴라전이란 압제자에 대항하는 전체 민중의 싸움이다. 

게릴라는 민중 군대의 전위에 지난지 않는다. 

작게는 어느 한지역, 크게는 어느 한 나라에 사는 모든 주민들이 형성한 군대의 주력이 게릴라이다.

아무리 심한 탄압 아래에서도 소멸되지 않고 언젠가는 이기게 되어 있는 게릴라의 힘도 여기서 나온다.

일반 민중이야말로 게릴라전의 바탕이자 본질이다." <315-316p>


  20대 초반에 그의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떠난 남아메리카 여행은, 그가 에르네스토 게바라에서 혁명적 게릴라의 영웅 체 게바라의 삶을 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여행 중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로 인하여 강대국과 자본가들의 착취에 고통을 받던 남아메리카인들을 본 체는, 그들의 고통이 부당한 것이고, 강대국과 자본가들은 남아메리카의 평화와 안녕을 파괴하는 침략자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화해와 이해의 고상한 대화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것을 체는 알았고, 오직 무장혁명으로 남아메리카와 전 세계에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살 것을 결심한다. 


  여행을 마치고 현재 쿠바의 실질적 통치자인 피델 카스트로를 만난 체는, 그와 함께 쿠바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에 항거하기 위한 게릴라 조직의 일원으로 혁명의 첫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쿠바의 산악지대인 시에라마에스트라를 거점으로 한 정부군과의 게릴라들 간의 전투는, 혁명을 열망하는 게릴라들과 쿠바인들의 승리로 끝이 난다.



..얼마 후 대원 중 한 명이 체에게 와서, 자기들이 방금 포로로 잡은 적군 중위 한 명을 바케리토의 죽음에 대한 보복으로 사살하는 일을 허락해달라고 하자 체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는 우리가 그들과 똑같다고 생각하나?" <419p>


  피델과 체가 주축이 된 게릴라들의 쿠바혁명 성공요인은 혁명에 대한 불굴의 의지와 단합된 조직력도 있었지만, 억압받는 쿠바 농민들과의 연대와 피델의 예리한 전략과 언론 플레이 그리고 체의 인애(人愛)의 마음이었다. 체는 그가 게릴라 활동을 전개하는 곳마다 학교를 세워 글을 가르쳤고, 그도 거기서 현지 언어와 문화를 배웠다. 또한 의학을 전공한 체는 병원을 세워 구호활동을 하였고,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치료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체가 지휘하는 부대에서 생포한 포로들은 고문이나 살해하지 않고 풀어준 것이다. 정부군은 포로로 잡힌 게릴라들을 고문하여 그들의 정보와 기밀들을 캐려고 했고 때로는 죽이기도 했으나, 체는 아군이든 적군이든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겼고, 심지어 변절자들도 잘못을 뉘우치면 용서하였다. 이러한 체의 인품은 적군도 감동시켰으며, 체의 부하들이 목숨을 다해 그를 따랐던 근거가 되었다. 



..어느 날, 올리브그린색 군복을 입고 M 7-26의 완장을 차고 기관총까지 든 한 소년이 그에게 물었다.

"산토도밍고를 해방시키고 트루히요를 끝장내러 가는 원정대의 대장을 맡으실 건가요?"

"천만에, 대체 어디서 그런 얘길 들었지?"

이 미래의 게릴라는 눈 하나 꿈쩍 않고 대답했다.

"다들 그렇게 얘기해요. 그런데 대장님은 해방자가 아니던가요?"

"나는 해방자가 아니다. '해방자들' 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민중을 해방시키는 건 그들 자신이란다." <434p>


  체가 생각하는 혁명에서 민중은 능동적 혁명 주체이다. 즉, 혁명은 게릴라들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이 계몽하여, 스스로 현실에 투쟁하고 서로 단결하여 혁명을 갈구하는 것이다. 카스트로와 체는 쿠바혁명을 일으키며 현실에 체념한 쿠바 민중들을 계몽시켰고, 그 결과 바티스타의 독재 정권은 월등한 군사력과 미국의 도움을 받았지만, 단결된 게릴라와 민중의 투쟁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러한 예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갑오개혁으로 대변되는 개화파의 개혁은 3일 천하로 끝났다. 그들의 실패의 원인은 간단하다. 개화파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만족으로 혁명을 일으켰지, 도탄에 빠진 민중이 바라고 원하는 혁명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학운동은 나라를 구하고자 단결한 민중들의 격렬한 몸부림이었다. 그것은 나라를 뒤흔들었고,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다. 왜놈들의 총칼에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의지야말로 혁명을 원했던 민중들의 의지다.

 

  이렇듯 혁명이란 게릴라들이라 위정자의 몫이 아니라, 현실에 분개하여 투쟁하고 개혁하려는 민중들 스스로의 자발적 결단이다. 체는 혁명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몸소 실천하며 민중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도왔다.



"우리 시대가 당면한 문제는, 기층민중을 헐벗게 만드는 자본주의와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할지 몰라도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제물로 삼는다. 한편 공산주국가는 자유에 관한 한 전체주의적인 개념 때문에 인간의 권리를 희생시킨다. 우리가 그 어느 것도 일률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혁명은 쿠바만의 주체적인 혁명이어야 한다." 라고 카스트로는 썼다. <441p>


  피델의 이 말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장단점을 간단하지만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이념에 대한 논쟁으로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던가. 그것은 인간의 이기심과 야만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그 주위의 다른 진실들을 보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자신들의 생각과 반대되는 세력들을 비판하고 숙청했으며,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철저히 이익만을 추구했다. 그 결과, 세계는 아직도 이념으로 인하여 전쟁 중이고, 서로가 평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사람들을 쉽게 죽이고, 사회구성원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면서 좋은 세상을 만들고 평화를 말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세계를 주름 잡는 두 경제체제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어느 것 하나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의 체제를 파괴하려 인류 전체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의 민주주의 역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국민들은 자신의 권리 일부를 위정자들에게 맡겼는데, 위정자들이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를 표방한 독재에 살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이념과 사상은 반대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하고, 이념과 사상의 분명한 의미를 내세우며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 속에서 인간과 사회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쿠바혁명에 성공한 피델과 체는 이 점을 알고 있었으나 현실 세계는 냉혹했다. 쿠바혁명은 독재정권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무장투쟁의 승리로 끝났지만, 평화로운 날들보다 당장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 당시 미국과 소련은 서로의 힘을 비축하기 바빴고, 두 나라는 경제협력을 주선해 온 타 국가들에게 자신들의 세력 확장을 위하여 겉으로는 상호협력을 표방했지만, 속으로는 경제, 군사적 식민지로 만들려 했다. 당연히 세계 국가들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특히 쿠바는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이웃나라 미국으로부터 군사적, 경제적 압박을 받았고, 소련은 쿠바를 통해 미국을 견제하려 하였다. 보다 못한 체는 다른 공산주의 국가와 제 3세계, 비동맹 국가들을 중심으로 경제적 원조와 대외무역협정에 나섰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로 인해 쿠바를 비롯한 약소국가들은 경제적으로 점점 더 어려워졌고, 피델과 체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혁명사상이 점차 현실 앞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다른 이들처럼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유명한 발견자가 되는 꿈도 꾸었고, 인류에게 도움이 될 무언가를 위해 지치지 않고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그런 것은 개인적인 승리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모두들처럼 환경의 부산물이었던 것입니다. 당면했던 특별한 상황과, 또 내 기질 탓도 있었겠지만, 일단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나는 아이티와 산토밍고를 제외한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여행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학생으로, 나중에는 의사로서, 나는 빈곤과 기아, 질병을 목격했습니다. 속수무책으로 어린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일이 우리 아메리카의 기층민중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현실임을 바라봐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유명한 학자가 되거나 의학상의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민중을 직접 돕는 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455p - 456p>


  이런 체의 고백은 지금을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격언과도 같다. 나는 서점에 갈 때면 베스트셀러 코너를 꼭 보는데, 문학분야의 도서들은 별 변동이 없으나 경제, 경영, 자기계발 관련 도서들은 자주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사람들이 현실의 문제에 민감하며 실용적인 지식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쉬운 예로 학생들은 입시, 청년들은 취업, 장년들은 금융과 투자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고 있다. 누구도 이런 경향에 대해 나쁘다고 말할 수 없고, 지극히 당연한 경향일 것이다. 


  체가 살았던 시대에도 지금과 비슷했다. 사람들은 이타심보다는 이기심이 많기에 성공과 이익을 위해 열심히 삶에 충실했을 것이고, 실존적인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주어진 하루에 충실했을 것이다. 또한 국가적으로도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두 강대국의 눈치를 보기 싫은 몇몇 국가들은 스스로 독자노선을 표방했지만 성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삶의 보편적인 이치일지도 모르나 든든한 소속이 없으면 존재는 늘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스스로가 무능력, 무가치하다고 생각한다.


  체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부조리를 보았다. 그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는 부조리였고 지금도 그 부조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에게 착취를 당하고, 사회적 약자들이 강자들에게 짓밟히는 현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그런 부조리를 보며, 분개하지만 나약한 자신을 개탄하며 지나쳤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아예 무관심하게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체와 같은 사람들은 그런 부조리를 규탄하며 자신의 한 평생을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을 보장하고 사회악과 부조리를 척결하기 위해 의로운 길을 걸었다. 각 시대의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영웅' 이라 불렀고, 그 '영웅' 들은 자신의 꿈과 의지를 굽히지 않으며 현실 속에 실현시키려 했다. 체는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가지 길 중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위험하고 경제적으로 별 도움이 안되는 길을 선택했고 그 길을 스스로 만족했다. 



"파리에서 나는 쿠바혁명의 목표가 사회주의의 건설인지 아닌지 명확히 대답하지 못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 쿠바인을 만날 때마다 같은 질문을 했다. 이제 그들이 나에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다. 이 혁명의 근원은 바로 국민에게 결핍된 것을 메우려는 데 있었지, 선험적인 이데올로기를 빌려 정의하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469p>


  이 말은 체와 프랑스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가 대화한 다음 훗날 사르트르가 한 말이다. 그는 체를 "우리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 이라고 평했다. 나는 그의 말에 상당히 공감했다. 체는 이데올로기나 시대의 사상에 자신의 신념을 수정하지 않았고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신념은 꽤나 고집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중,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간의 신념이다. 체는 모든 사람들의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평등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고, 바라는 것이지만 그것을 실천하기에는 무척이나 어렵고, 실천하는 사람 또한 적다. 


  개인적으로 지식이 실천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무지하기 때문에, 선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악한 행동을 한다고 말했고 그런 악의 결과들을 수용했지만, 안다고 해서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제대로 알았다고 제대로 된 행동이 나온다고 결론지을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예를 몸소 느끼고 있고, 실제로 주위에서 많이 보았다. 그러므로 지식은 지식에서만 머무를 수 있고, 실천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사르트르가 쿠바인들에게 했던 질문들은 좋은 예가 된다. 다시 말하면, 이미 형성된 객관적인 지식들이 사람들의 실천 속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고, 나타나지 않았다고 그것에 대해 모른다고, 틀렸다거나 애매모호하다고 말할 수 없다. 


  쿠바혁명은 일명 공산주의자들이 주축이 되었지만,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결과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르트르의 말처럼 국민에게 결핍된 것을 메우려는 자들의 혁명이었고, 적당한 단어가 없어서 비슷한 단어를 사용하여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공산주의를 실현시키려는 자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이 보았던 부조리한 현실을 정의로운 현실로 바꾸려는 순수한 의도에서 쿠바혁명을 일으켰고, 그들을 통해 국민들은 삶의 희망을 되찾았으며, 능동적으로 그들을 지지했다.


 

  이 사회주의 사회는 당연히 절대적인 민주사회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회는 민중의 필요와 열망 위에서, 또한 민중이 모든 결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는 사실 위에서 건설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548p>


  쿠바정부에서 요직을 맡아온 체는 삶의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들을 글로 정리한다. 그가 아프리카 콩고와 그의 생의 마지막 장소였던 볼리비아로 떠나기 전에 썼던 글들은 그의 정체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그가 하는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체의 몇몇 행동에 아쉬움을 느꼈다. 체에게 있어서 쿠바혁명 이후 무장투쟁이 아닌 탁상공론 속의 삶은 답답했을 것이고,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과 주변 사람들의 조언과 회유는 그의 신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지위와 위치를 버리고 독재정권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위하여 다시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이런 체의 모습을 공감하면서도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또한 혁명에 있어서 무장투쟁만이 최적의 수단이 아닐텐데, 체는 무장투쟁을 근본적인 혁명의 도구로 생각하였다. 앞서 말했지만, 좋은 세상은 사람들을 죽인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이 현실 속에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체는 알았고 나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1956년 말, 멕시코에서 체가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속에서 무장투쟁에 대한 그의 의지를 확인 할 수 있다. 



"저는 예수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중략) ..저는 힘이 닿는 한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싸울 겁니다. 저들이 나를 십자가에 매달아두게도 하지 않을 것이며, 어머니가 바라시는 방식대로 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나 볼리비아 혁명을 위한 원정은 무리한 원정이었다. 그 원정은 위험요소가 많았고, 피델과 같은 유능한 동역자가 없었다. 당연히 상황은 체에게 좋지 않게 흘러갔고. 볼리비아 정부군에 붙잡힌 체는, 총살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1967년 10월 9일 체는 이 세계를 떠났지만, 오늘날까지 사상과 문화의 한 부분으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주고 있다. 그리고 현실의 부조리를 개탄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혁명사상 그 자체가 되어 영원히 살고 있다. 그의 또 다른 훌륭한 점은 평시든 전(戰)시든 자신의 삶과 생각들을 일기와 편지를 통해 기록하고, 타인의 모범으로서 존경 받기 위한 삶이 아닌, 존경 받을 수 밖에 없는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 삶이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목숨도 제대로 부지하기 힘든 세상에서 나 자신 외에 다른 존재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 삶이다. 하지만 역사는 바보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위대한 명예와 높은 가치를 부여했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어려운 고비를 극복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불의를 보고 불의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으나 불의를 정의로 바꿀려고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또한 자신의 야망이 아닌 사회적 약자들의 바람과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시키는데 한 평생을 바치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영웅이 되기는 쉽고 영웅인 척 살아갈 수 있지만, 끝까지 영웅처럼 살다가 죽기는 어렵다. 


  나는 사회의 주축이라 불리는 청년들이 체의 삶과 고백 속에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것을 발견했거나, 이미 알고 있었다면 선택해야 한다. 영웅이 될 것인가 아닌가를. 꼭 영웅이 되라는 법도 없고 그게 옳다고 말할 수 도 없다. 개인의 가치는 소중하고 판단 역시 개인의 몫이니까. 다만 아르헨티나인이면서도 고통 받는 쿠바인들을 위해 목숨을 건 총을 들었고, 생의 마지막까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방아쇠를 당기던 체의 이름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영원히 기억되어져야 하고,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같은 사람으로서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 오늘도 이 책을 읽은 나와 체 게바라의 후예들은 어디선가 불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것이고,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