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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마음속에는 그의 불꽃이 남아있다

EAST-TIGER 2010. 8. 26. 11:01


대학원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이다.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다.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알았던 전태일은 분신자살한 불쌍한 노동자였을 뿐, 그가 무엇을 위해 살고 죽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고, 불꽃같은 그의 삶과 죽음이 우리 역사와 사회에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주었는지 더욱 알지 못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후에는 한동안 전태일의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오늘의 나와 현실을 돌아보며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깨우치고 희망을 갖게 했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길에서 일어난 사건은 단순히 한 젊은 노동자가 죽어갔다는 것일 뿐이다. 한국사회에서 한 노동자의 죽음은 전혀 중요한 사건이 되지 아니한다. 먼 나라의 어떤 유명한 영화배우가 손가락을 다치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어도 노동자가 죽어간 사연은 세상에 알려지지 아니한다. <21p>


  인권과 법질서 회복을 위해 죽음으로 항거했던 전태일은 당시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아무리 언론에서 대서특필을 하여도 권력자들은 부조리한 현실의 뿌리가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다. 그 후로도 여전히 한국사회는 경제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많은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요구했고, 유신체제의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봉기와 침묵을 반복했다. 그러나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를 해야 할 언론은 이미 권력자들과 협력하였거나 목숨을 내놓을 용기가 없었다. 이렇듯 암울했던 시절에 전태일의 죽음을 비롯한 밑바닥 인생들의 짓밟힘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진실은 현실의 힘 앞에 매장 당했다.



지금까지도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들과 팔다리밖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날마다 몰려드는 곳이 서울이다. 땅 잃은 농민들, 흙에 묻혀 아버지 어머니가 겪었던 괴로운 무지랭이의 삶을 이어받기를 거부하는 젊은이들, 일자리가 없어서 멀쩡한 팔다리를 갖고도 입에 풀칠을 할 수가 없는 실업자들, 그 밖에도 살 길을 잃은 가지가지 사연의 사람들이 특권과 부귀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를 주워 먹기 위하여 그들의 지친 발걸음은 이렇게 해마다 서울로 향하였고, 그리하여 서울의 판자촌, 뒷골목, 이른바 ‘우범지대’ 는 때려 부숴도 더욱 늘어만 갔다. <37p>


  급격한 경제발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도시로 몰려들게 했고, 특히 수도 서울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오로지 돈을 벌어 가족들을 부양하거나 개인적 야망을 실현하려는 사람들의 광기(狂氣)는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 윤리를 파괴했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남의 가치를 짓밟았다. 남의 불행이 곧 자신의 행복이고, 빈부격차는 점점 커져만 갔다. 


  연이은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가난한 집안사정은 어린 전태일의 발걸음을 서울로 향하게 했고, 좌절과 실패 속에 상경과 귀향을 반복하며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는 점점 서울이 어떤 곳이고, 자신이 왜 좌절과 실패에 익숙한지 알게 된다. 그것은 필연적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지. 그 억센 비를 맞으며 하나라도 더 팔려고 “우산!” 하는 소리에 한달음에 3층까지 뛰어올라 갔었지.

“우산 하나 얼마니?” “예 35원입니다.” “왜 35원이야. 전에는 30원 주고 샀는데.” “아니에요. 30원이면 본전도 안 됩니다.” “밑지기는 뭐가 밑져. 애들은 왜 곧 죽는 소리야? 기분 잡치게······.”

“아니 이거 헌 우산 아니야! 자루가 이게 뭐야. 곰팡이가 쓸고, 이거 헌 거로구나!” “아―, 아닙니다. 천만에요. 이건 분명히 제가 이제 금방 받아온 거야요.” “변명은 말아! 너희들이 그런 지저분한 변명을 하니까 밤낮 그 모양 그 꼴이야. 이 거지 같은 자식아!”

그래요 나는 태어날 때부터 거지예요. 댁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도도한 집안에서 태어났고요. 내내 도도하십시오. ······이런 일이 있은 지가 어제 그제 같구나. <79p>


  태어날 때부터 부자인 사람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다. 한쪽은 너무 과해서 낭비요, 한쪽은 너무 없어서 생존이 위태롭다. 하지만 둘의 공통점은 ‘사람’ 이라는 점이다. 태어난 환경과 신체조건이 다르더라도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사회는 이것을 보장해주도록 노력해야한다. 봉건시대의 잔재처럼 부유층이 중산·빈곤층을 노비 대하듯이 하며 짓밟는다면, 아주 어리석고 무지한 행동이다. 부유층의 부는 중산·빈곤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나와 함께 살아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태어난 환경과 신체조건이 사람을 결정지을 수 없고, 인격과 가치를 판가름할 수 없다.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던 전태일은 현실과 직접 부딪쳐가며 이것을 알아갔다. 



섬사람들의 오랜 소원이 뭍에 나가 사는 것이라면, 시골 농부의 소원이 자식에게는 지게를 지우지 않는 것이라면, 떠돌이 청소년들― ‘거리의 천사’ 들의 오랜 꿈은 바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며 기술을 배워 안락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숱한 버림받은 거리의 천사들이 끝내 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가는 곳이란 형무소를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범죄생활의 숨 막히는 진구렁뿐이다. 그러나 어디에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이 있는가? 많은 거리의 천사들이 그나마 그들에게 좁은 문을 벌리고 있는 숱한 공장과 작업장들이 실은 그들의 목숨을 좀먹는 노동지옥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을 결국(선택의 기회가 있는 경우라도) 형무소냐 노동지옥이냐, 이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하기 위하여 고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96p>


  전태일과 그의 가족들은 가난이라는 현실에 맞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항상 끼니를 걱정하고 잘 곳과 누울 곳을 염려했다. 소년 전태일은 스스로 일탈하여 범죄행위를 할 수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정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아 적당한 대가를 받기 원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끊임없는 가난과 소외감이었다. 그래서 전태일은 안정된 직장을 찾아 동대문 직물시장으로 뛰어든다. 스스로 노동지옥 속으로 들어간 셈이다. 안정된 직장생활과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뛰어들었지만, 그의 확신과는 달리 눈앞의 현실은 노동자들을 향한 자본가들의 노동력 착취와 부당한 대우, 임금이었다. 이후 전태일은 돈과 안정보다 불의를 말 못하고 약 14시간 동안 일하는 직물시장의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회복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지럽게 들려오는 쇠금속 소리. 짜증 섞인 미싱사들의 언성. 무엇이 현재의 실재(實在)인지를 분간 못하면서, 그 속에서 나도 부지런히 그들과 같이 해나갔다.

무의미하게. 내가 아는 방법 그대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이외에는 무아지경이다. 아니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도 순서대로, 지금 이 순간에 해야 될 행동만이 질서정연하게 자동적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의 나는 일의 방관자나 다름없다. 내 육신이 일을 하고,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때까지의 육감과 이 소란스런 분위기가, 몇 인치 몇 푼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 긋고 나라시가 되고, 다 되면 또 재단기계를 잡고 그은 금대로 자르는 것이다. 누가 잘랐을까? 이렇게 생각이 갈 때에는 역시 내가 잘랐다. 왜 이렇게 의욕이 없는 일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렴풋이 생각이 확실해질 때는 퇴근시간이 다 될 때이다. 세면을 하고 외출복으로 바꿔 입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오면 밥상이 기다리고 있다. 밥을 먹고 몇 마디 지껄이다가 드러누우면 그걸로 하루가 끝나는 거다. - 1967년 3월 일기에서 <130-131p>


  18세기 후반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산업혁명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완성했다. 수공업이 기계화되면서 숙련공들이 아닌 어린이들도 산업현장에 투입되었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을 받으며 10시간이 넘는 노동을 하는 어린이들과 노동자들은 가난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개인생활은 없었고 꿈과 희망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게다가 호흡기질환과 피로누적 등 직업병을 얻어 젊은 나이에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빈자리는 다른 노동자들로 대체되었고, 악순환은 반복되었다.


  이 부조리한 현실이 1960년대 후반부터 급속도로 경제발전한 우리나라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노동자들은 인간 이전에 거대한 공장의 부속품에 불과했으며, 낡은 부속품은 가차 없이 버려지고 새 부속품으로 바꿔졌다. 정부는 부의 축적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며 불의한 폭력과 강제를 묵인했고, 최소한의 인권과 법은 지켜지지 않았다. 


  전태일은 몇 번이나 정당한 방법으로 기업주와 노동청에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회유책을 써가며 전태일을 매수하려했고,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며 우롱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항의했던 전태일은,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근로기준법마저 현실에서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항거와 투쟁이 기업주와 노동청을 넘어서, 우리 사회 전체를 상대로 항거와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태어났을 때 이미 억눌리는 고통에 찬 현실은 존재하고 있었다. 이 현실 속에서 자라나면서 그는 그 현실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하여 자신에게 강요된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사실은 바로 인간이 그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똑똑히 보지 못하게 된다. 이 거대한 힘에 비하여 볼 때 자기 자신은 너무나도 약하고 초라하고 무력한 존재로 느껴진다. 조만간에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현실의 사회구조와 질서 앞에 무조건 머리를 수그리고 거기에 ‘순응’ 해야만 생존이 보장된다고 느끼게 되며, 따라서 현실 앞에서 위축되고 기가 죽어서 비굴해진다. 현실에 대한 모든 비판은 그 자신의 생존에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무모한 짓으로 되며, 따라서 자신에 대해서는 불성실하게 되고 나중에는 부도덕으로까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비판정신의 짝을 자신의 의식 속에 싹트기도 전에 잘라버리고, 사회가 강요하는 모든 명령, 모든 가치관, 모든 선전을 무조건 받아들여 ‘순한 양’ 이 된다.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 모르는, 주체성을 빼앗긴 정신적 노예로서 길들여지는 것이다. <134-135p>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어쩔 수 없다는 자세로 일관했고, 현실도 그러니까 그러려니 했다. 정의와 진실은 감추어진 채, 불의와 거짓만이 정의와 진실을 가장하며 힘없는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괴롭혔다. 현실은 무기력하게 무릎 꿇은 사람들의 꿈과 이상을 잡아먹었고, 돈과 안정을 주어 비굴의 감옥에 가두었다. 그래서 그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자 길이라며 사람들을 유혹했다.


  전태일은 태어나자마자 가난이라는 현실에 직면했고, 그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했다. 가난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그만두었고, 그와 가족들은 돈을 벌기위해 뿔뿔이 흩어져야했다. 현실은 냉혹했고 가난은 무엇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처럼 다가왔다. 전태일은 한때 자신이 처한 현실에 순응해가며 살았지만, 노동현장에서 자신의 동료들이 힘없이 쓰러져 죽음을 맞이할 때,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의 눈을 뜨게 되었다. 그는 인간답게 살고 싶었고, 정당한 대우와 최소한의 여건 속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그의 투쟁은 억압과 차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인간회복’ 을 위한 명분 있는 전쟁이었다. 그는 현실의 유혹을 거절했다.



인간의 존엄을 버리지 않고 인간다운 대접을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 바보인가? 노예로서의 고통과 굴욕으로 가득 찬 지루한 나날을, 아무런 의의도 보람도 기쁨도 없는 껍데기의 삶을 애걸하며 또 애걸하며 비루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보인가? 오늘의 현실이 절대로 변화될 수 없는 영구불변한 현실이라는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 ‘약은’ 자들이 참된 현실주의자는 아니다. 체념하고 굴종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일 수는 없다. 삭막한 겨울 벌판의 나무둥치 속에서 내일 화사하게 피어날 꽃잎을 바라보고 오늘의 꿈이 내일의 현실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고난의 길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현실주의자인 것이다. <160p>


  전태일의 투쟁은 쉽지 않은 투쟁이었다. 20대 초반의 젊은 노동자는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저학력의 재단사였다. 그저 옷감을 주고 사장이 지시하는 대로 재단하면 그만이다. 자신 밑으로 재단보조, 미싱사, 미싱보조, 시다 등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면 그냥 다른 사람들이 어찌되었건 자신만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전태일은 자신의 이익과 안정을 버리고 모두를 위한 투쟁을 선택했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사장은 당연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전태일 자신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은 그를 ‘바보’ 라고 일컬었다.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투쟁하며 고난의 길을 걷는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과 냉대였다. 노동운동을 한다고 직장에서 쫓겨났고, 무직인 상태에서도 노동운동을 계속했다. 그는 스스로 바보를 자처하며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의 투쟁이 오직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투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현실에서 바보라 칭함 받았고, 그동안 부조리한 현실을 인정했기에 스스로 바보임을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이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위해 그의 노력이 바보짓이라 말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진정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전태일은 보통사람이다. 누군가는 그를 노동운동의 선구자이며, 영웅, 열사라고 말하지만, 진정 그는 사회에 정당한 요구를 했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기에 당연히 실현될 것이라 믿었다. 이런 그가 바보인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하며 가슴앓이하거나 부당한 대우와 울분을 참는 것이 정상인가? 자신을 속이지 말자. 



소시민적인 안일한 삶에 연연하는 일부의 지식인이나 종교인들이 상투적으로 “억눌린 사람들의 고통에 동참하겠다.” 고 선언할 때에 우리는 그것이 그야말로 단순한 ‘동참’, 억눌린 사람들의 주위에서 얼쩡거리며 배회하는 데서 끝나는 것을 흔히 본다. 전태일의 경우 ‘돌아가겠다.’ 고 하는 것은 결코 이런 식의 어정쩡한 얘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목숨을 들어 돌아감’ 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투쟁, 타협 없는 투쟁,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거는 단호한 투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31p>


  전태일은 근로여건을 반드시 개선시켜준다는 직물공장장들과 노동청 직원, 근로기준국장 등의 말을 믿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정치인과 기업가의 말을 누가 곧이곧대로 듣겠는가? 그러나 전태일은 자신의 투쟁과 건의가 이루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기뻐했다. 


  만약 전태일의 투쟁과 건의가 받아들여졌다면, 그는 만족감에 더욱 일을 열심히 했을 것이고 분신자살로 삶을 마감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적어도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하며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실망과 좌절로 다가올 때, 그는 극단의 투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의지 또한 강단해졌다. 오직 자신의 동료들과 이 사회의 불의를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며 끝까지 싸웠다. 


  처음에는 가난이 싫어 일을 시작했고 일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이제는 고통 받는 동료들과 이웃들을 위해 자신의 온 몸을 불사르려한다. 누가 이 20대 청년의 마음을 자극하고 투쟁하게 만들었는가? 사랑과 평화를 외치던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은 꼬리를 감추고 제 살길을 찾아 떠나버렸고, 경제성장을 지향하던 정치인들은 인권을 짓밟았다. 말과 허세뿐인 이 시대의 지배계층은 사랑과 평화의 이름으로 가식적인 인기를 얻었고, 경제성장으로 권력을 얻어 독재정권을 수립했다. 여기 가난한 젊은 노동자는 자신의 온몸을 불사르고 친구들과 이웃을 대신에 진정한 사랑을 실천했다.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권력을 뜻함)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못 다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291-292p>


  1970년 11월 13일 1시 40분경, 전태일의 온몸이 불타올랐다. 노동운동을 저지하는 사람들 앞에서 불타는 몸으로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말하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동료들은 구급차에 그를 태워 병원을 보냈고 어머니가 달려와 사지가 불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아들을 만났다. 돈이 없어 수술을 안 해주는 의사와 방관하며 상황만 지켜보는 근로감독관의 행동에 침묵하며, 어머니는 아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과 함께 평생을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살기로 약속했다. 전태일은 타는 목마름을 느끼다가 그날 밤 10시에 눈을 감았다. 위의 유서를 남기며.


  그 후 2년 뒤인 1972년 10월 유신헌법이 선포되고 이에 반발하여 민청학련사건과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민주세력을 좌파세력으로 몰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많은 사람들이 무고한 피를 흘렸고 억울하게 죽었다. 그 주축은 젊은 20대였고 전태일의 불꽃이 그들 마음속에 불타올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태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그의 불꽃이 남아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집 옆에서 민중가요를 틀어놓고 영세상인들이 하루 종일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18년 넘게 장사를 해왔던 장소에서 쫓겨나게 생겼으니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그러나 법은 그들의 편이 아니라 그 장소를 매입한 사업자의 편에 있다. 최소한의 보상으로 상인들에게 돈을 손에 쥐어주면 모든 게 깨끗이 끝난다는 생각을 하지만, 상인들의 빼앗긴 추억과 터전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또한 영세상인들을 내쫓기 위해 용역업체 직원들을 불러 영업을 방해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본가의 비열한 본색을 드러낸 한 단면이다. 법과 사회가 외면한 영세상인들은 오늘도 그들 외에는 소음같이 들리는 민중가요를 틀어놓고 기약 없이 힘없는 저항을 하고 있고, 그들의 터전은 새로운 주인들을 맞이하기 위해 사업자의 계획대로 새 단장을 하고 있다. 


  세상에는 돈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정(情)이 있다. 그것마저 돈으로 환산하려든다면 종이로 만든 돈이 생명이 있는 사람보다 귀중하다는 것인가? 그러니 노동운동이 국민들이 보기에도 거부감이 들 정도로 과격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답게 살고 싶고 불의를 시정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한낱 부정한 돈과 기업가들의 어리석은 경제논리에 피해를 받아 삶을 위협받는다면 누가 참고 그 위협을 받겠는가? 우리는 스스로가 지위와 자격을 생각하기 이전에 똑같은 사람임을 기억해야하고,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이 필요하다. 



  벌써 전태일이 죽은 지 올해로 40주년이 되었다. 80살을 살아도 가족 외에는 이름 하나 기억되지 않고 땅에 묻히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22살을 살았던 그의 이름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한 청년의 투쟁이 오늘의 민주사회를 만들었다. 그의 죽음과 정신이 없었다면 오늘 민주사회는 더디게 다가왔을 것이고 무고하게 피해 받는 노동자들과 이웃들의 눈물과 울분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이 사회와 사람들을 위한 생명의 거름이 되었다. 또한 이 책을 쓴 故 조영래 변호사도 민주화 운동의 선봉장이자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인권변호사였고, 전태일과 같은 시대를 살며 그의 죽음을 애통하여 이렇게 책으로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으니 그 역시 생명의 거름이다. 


  역사적으로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자 불의의 청소부였던 20대는 오늘날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 간혹 비판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에게 주어진 불의에 저항하는듯하지만,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에너지가 부족하다. 모두가 투쟁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과 방식으로 있는 그 자리에서 투쟁하면 된다. 문제는 양심의 게으름과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바보라 칭하는 세상, 정의를 실천하면 더 큰 불의가 덮어버리는 세상, 부조리한 현실에 순응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만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라 칭하는 세상.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돈과 능력, 외모를 보며 사랑이라 말하는 세상. 누가 이런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가? 지금의 20대가 만들어 놓은 세상이 다가올 20대가 살게 될 세상이다. 지금의 20대들이 오늘의 불의와 부정을 외면한다면, 다가올 세상의 불의와 부정은 지금의 20대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이 글을 보는 나와 당신, 지금 있는 곳에서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온몸을 불태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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