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오늘도 나는 '나'를 가꾼다 본문
일교차가 큰 날들이다.
낮에는 봄 기운을 느끼지만 밤에는 늦 가을 같다.
4일 정도 비가 왔고 자주 침대에 누워 그 소리를 들었다.
어딘가 부딪혀서 들리는 그 소리는 나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불 속에서 따뜻함을 찾아 더 깊숙이 움추렸다.
그러나 그 따뜻함은 내게 잠시만의 휴식을 줄 뿐,
나는 다시 일어나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가야 했다.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나는 지금.
단기 속성으로 독일 관념론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다시 Schelling의 초월적 자연철학을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여러 관련 책들을 읽다보면 학자들마다 다른 해석들을 내놓을 때가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누군가의 글을 보고 자기 해석을 달거나 아니면 그대로 인용하거나,
그 인용에 대한 출처도 없이 그냥 자기 것인듯 써놓기도 한다.
그것들을 다 비교하고 새로 글을 쓰는 일은 무척 귀찮은 일이다.
그나마 요즘은 인터넷이 잘 되어 있어서
관련 자료들을 미리 보거나 학교 도서관에 대출을 예약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 도서관에 가는 날에 학교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뭔가 무척 단조롭다는 느낌이 든다.
얼마 전까지는 주로 낮에 글이 잘 써졌는데,
근 이틀 간 새벽에 글이 잘 써지는 바람에,
다음 날 아침 늦게 일어나게 되었다.
그런 날의 낮에는 몸과 정신이 조금 무거워 무엇을 하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 꾹꾹 참고 글을 읽어보아도 어려운 퍼즐처럼
써놓은 문장들을 부드럽게 연결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밤이 되기까지 기다린다.
글쓰기의 어려움과 지겨움은 여기서 시작된다.
양팔에 생겼던 두드러기는 점점 완화되고 있으나 더디다.
마치 여름에 뜨거운 태앙 아래 해수욕장에서 한나절 놀다가 들어오면,
"살이 익었다"는 말처럼 붉은 빛이 도는 부분들이 생기고 열기가 느껴지듯이,
지금 내 양팔에는 그런 열기가 가득하다.
어제 밤 춘하 누나에게 연락을 해서 누나가 준 피부약들의 정체를 다시 확인했다.
"그거 항히스타민제하고 소화제니까 그거 먹어, 근데 그거 좀 오래되지 않았냐?"
누나 말처럼 오래된 것은 사실이지만 예상했던 것을 확인 받은 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다.
안구 건조증이 생기면 글 쓰는 동안 눈이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눈이 괜찮아지니 두드러기로 인해 가려움증이 생겨 불쾌한 '시소'를 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 두 개가 같이 나를 공격한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나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원래는 안경을 쓰지 않았던 눈이었는데,
이제는 안경을 써야 또렷이 사물들이 보인다.
그래도 나는 될 수 있으면 안경을 안 쓰려고 한다.
흐릿해 보이는 세상이지만 그 세상이 나는 이상하게 좋다.
너무 또렷히 보이는 세상은 나에게 어떤 대답과 생각을 강요하는 느낌이 든다.
조금 흐릿하더라도 가까이 다가가 보면 또렷하기에 괜찮다.
언젠가.. 더 흐릿한 세상을 봐야할 지도 모른다.
나의 눈과 몸은 내 나이에 맞게 늙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 투표는 독일에서 할 것 같다.
3월 말까지 재외국민 투표를 신청하라고 해서 Bonn 영사관에 신청을 했고,
접수 결과에 따라 소정의 양식들이 우편으로 올 것이다.
현재까지는 4월 말쯤에 투표가 이루어질 것 같다.
새로운 경험이지만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냥 오랜만에 Bonn을 간다는 생각이 조금 기대된다.
나는 Bonn 대학교의 넓은 잔디밭을 좋아한다.
평생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
몇 명인지 다 셀 수 없고 이름과 특징들을 다 기록할 수 없지만,
나는 기억에 기억을 얹고 그 언제가 그 기억들을 더듬을 것이다.
근래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서는 이전과 같은 따뜻한 감정을 느끼기 힘들지만,
나는 그 감정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물론 그들이 나를 원하지 않거나 어려워 한다면 그것 역시 받아 들여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할 매력이 내게는 없고,
모든 사람들을 좋아할 수 있는 정성과 능력도 없다.
그래서 나는 적당히 친절하고 적당히 불친절하다.
하지만 나는 내게 온 사람들에게, 내게 올 사람들에게,
늘 그들이 기대했던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나'를 가꾼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른 것들과의 비교를 위해 존재하기도 한다.
지난 주말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나는 그 비교에 대한 불안감을 아버지와 함께 지웠다.
나는 여전히 내 주변의 불안과 걱정들을 상대하며 늘 꿈꾸었던 곳을 향한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나와 아버지, 그리고 가족 사이의 관계에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다.
그래서 가족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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