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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섬세한 연출과 흥미로운 시선들 본문
2006년에 난 군 복무 중이었고 이 드라마는 그 해 봄에 방영되었다.
밤 10시가 되면 잠을 자야 했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간혹 생활관 불을 끄고 불안한 마음으로 보기는 했지만 집중하며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종영 후에도 언제부턴가 다시 보기를 마음 먹고 있었다.
하지만 늘 막연하게 계획했던 것은 잊혀지고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한다.
결국 나는 이 드라마를 한국이 아닌 독일에서 다시 보았다.
무려 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보게 된 것에 오히려 이상한 기분이 든다.
7년이라 시간 동안 머리 어딘가에서 이 드라마를 보겠다고 하며
나도 모르게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울고 싶은 이유는 많았다. 불륜처럼 느껴지는 연애.
낯선 경찰서에 대한 두려움.
그 녀석 어깨에 묻은 긴 머리카락 따위는
쨉도 안되는 이유들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서로에게 너무나 크게 다가온 출산 중 사산된 아기.
서로 간의 성격 차이라고 이혼 사유를 말하지만
동진과 은호는 계속 일상 속에서 서로를 찾는다.
그리고 그 둘을 다시 이어주고 싶은 준표와 지호.
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린 이혼이니 다시 재결합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존재하는 의미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둘 앞에 나타난 미연, 현중, 유경, 윤수가 나타나지만,
다른 사람들을 만날수록 깊어지는 서로를 향한 그리움은 커진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둘 주변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사랑과 다시 시작되는 사랑.
"아무리 큰 일이 일어나도 그 당시엔 모르죠.
지나고나야. 아- 그때 내인생이 요동쳤구나."
이혼 한 남녀가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나 재결합을 할 수 있지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이혼 역시 이별이기에
서로의 삶에 잠시라도 머무는 것 역시 부담스럽고 힘들다.
동명의 일본 소설<연애시대>를 원작으로 했지만 이러한 설정은
'이별 = 다시 만나지 않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 정서 상 조금 이질적이다.
그렇다고 동진과 은호가 사회적인 체면을 생각해야 할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이혼 이후에도 결혼 기념일과 사산된 아이의 묘 앞,
함께 시간을 보냈던 도넛츠 가게, 술집에서 계속 마주치고 만나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이제서야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깊게 느끼는 것일까?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서야.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드는 생각.
그때 우리중 한사람이라도 솔직했더라면 좋았을걸.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이별 뒤에는 보내지 못한 마음과 감정들이 있고 되돌리고 싶은 시간들이 있다.
가끔 원치 않았던 말들과 행동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삶의 순간마다 불현듯 나타나서 괴롭히는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드는 기억들도 있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반복되는 실수를 되풀이 하거나
학습된 습관들과 좀 더 나은 행동들이
때로는 이전에 겪지 못한 새로운 감정이나 경험들로 이어진다.
그래서 가끔은 이별의 아픔들은 다른 사랑으로 치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억'은 상황에 따라 뚜렷해지고 옅어지지만,
언젠가 잔잔히 또는 갑자기 삶의 어느 순간에 나타난다.
혼자 있거나 다른 사랑을 하고 있더라도.
"충주 사는 H양 잘 들으세요. 사람은 이기적인 겁니다
내가 행복해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행복따위 진심으로 바랄수 없는 겁니다."
은호에게는 동진이 처음이었고 동진은 은호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래서 은호는 동진이 무엇을 하든 지 동진보다 더 많이 의식한다.
개인적으로 볼 때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은호이다.
은호는 매회 이야기를 만들고 끝내거나 연결한다.
그리고 동진과 주변 인물들은 은호가 만드는 이야기에 몰려든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조금 식상한 면들이 다분하고 우연들과 행동들은 너무 억지스럽다.
그래서 예고편만 보아도 다음 화가 무슨 내용인지 대충 또는 거의 알 수도 있다.
그러나 배우들의 열연과 "이게 뭐야!"라고 하기 전에 들리는 나레이션과 적절한 OST.
매회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장면들에 대한 섬세한 연출과 흥미로운 시선들 때문에
이 드라마를 계속 볼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노영심 음악감독의 OST는 드라마 분위기를 순간적으로 바꾸고 전환하고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귓가에 맴돈다.
"고마워. 정말 너에게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너무 많이 돌아와 잊을뻔했던 말.
정말 고마워."
드라마를 보면서 지나간 일들이 많이 떠올랐다.
설정은 이혼한 뒤에 서로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과정이었지만,
그 과정의 의미는 사랑을 하고 있거나 이별을 해 본 사람들이 대상이다.
'첫사랑'이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했다면 그 역시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다.
가끔은 문득 떠올라 하루 전체를 망가뜨리기도 하고,
중요한 순간에 떠올라 집중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추억과 기억 때문에 하루를 살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 다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랑이 만든 행복과 아픔은 사랑만이 유지하고 치유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자들의 행동들이 아무리 유치하고 닭살 돋고,
'사랑'에 관련된 글과 말들이 오글거리고 듣기 거북해도,
결국 다들 '사랑'에 목마르고 아파하며 서로 받고 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사람 둘 이상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그 주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 드라마는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을 해보았던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나 역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하지만 너무 많이 늦은 상황에서 하게 되었다.
지금은 나보다 더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나도 그러기 위해서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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