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서둘러야 한다.. 본문

Section 日記/Hello- Yesterday

서둘러야 한다..

EAST-TIGER 2016. 7. 4. 09:32
어느 덧 7월이 되었다. 

여름이지만 봄 또는 가을 날씨처럼 서늘하다. 

하루에 한번 이상 비가 내리고 짙은 구름들이 머물다 지나가고,

바람이 강하지는 않지만 머리가 날릴 정도로 분다. 

반팔을 입고 나가기에는 춥고,

긴팔을 입고 나가면 약간 덥다. 

독일에서 이런 여름 날씨는 처음인데 기분 나쁘지는 않다. 

그동안의 여름들은 내 마음의 급함만큼이나 뜨거웠고,

그 뜨거움을 식혀줄 어떤 것도 없이 순식간에 지쳐갔으니. 

그러나 이 애매하고 변화무쌍한 기온과 날씨는,

현재 내가 처한 상황과 심리와 비슷하다. 


학기가 끝나가고 있다. 

2주 안에 끝날 것이고 아마 늘 그랬듯이 집에서 글을 쓰거나 음악을 하며 방학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굳이 방학이 아니더라도 평소의 일과가 그렇다. 


라틴어 수업은 열심히 수업에 참여함으로써 담당 강사인 Dr. Hermes의 신임을 얻었다. 

수업 대부분은 교재의 라틴어 문장들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것인데, 

나와 루마니아에서 온 여학생 그리고 두 명의 독일인 여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번역을 하고, 

나머지 학생들인 간간히 참여하거나 그냥 수업만 듣는다. 

수업 초기에는 수강생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수는 적어졌다. 

지금은 10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큰 강의실이 부담스러울정도로..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라틴어 번역도 사전이 있으면 가능하지만, 

솔직히 내 라틴어 실력은 내 적극성에 어울리지 않을만큼 부실하다. 

아직 그것을 들키지 않았고 내 번역이 나쁘지 않았기에 수업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 '부실함'은 수업 이후 그리고 방학을 통해 보완해야 할 과제이다. 


Dr. Hermes는 백인이고 백발의 키작은 노인이라 그의 얼굴을 보면 온통 하얗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과 행동에서 유쾌함을 느낀다. 

그는 나와 한국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짧지만 몇 번 둘이서 수업 후 대화를 나눴다. 

라틴어 강좌는 총 3학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다음 학기에는 석사논문을 완성해야 하기에 수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가 은퇴하지 않는다면 나는 다시 그에게서 라틴어를 배우고 싶다. 

그는 내가 Bochum에서 어학을 공부를 할 때 만난 Frau Kunao와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석,박사 학위과정생 모임은 크게 재미는 없지만 

지도교수님이 담당이고 학점이 배정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참여하는 식으로 하고 있다.  

원래 수업 초기에는 Spinoza의 Ethik을 읽어가며 공부했지만, 

중반부터는 학생들이 저마다 자신들이 쓰고 있는 학위 논문에 관련된 것들을 일부 정리하여 

매 수업시간마다 발제를 했다. 

지난 주 목요일에는 내가 쓰는 석사 논문에 관련된 주제 중 하나를 발제했고, 

예상대로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발제물은 충분한 참고자료와 논거가 부족했다. 

나는 지난 학기에 들었던 Prof. Dr. Leinkauf의 Schelling 수업에서 

기본 학점을 위해 제출했던 에세이를 가지고 발제를 했고,

어디까지나 기본 학점을 받는 것이기에 '성의있게' 작성하지는 않았다.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외쳤다. 

"나는 지금보다 잘 할 수 있다" 


내 발제에 앞서 Dimitri가 Siegfried Kracauer의 필름이론에 대해 발제를 했었고, 

오랜만에 만난 그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의 논문 주제에 대해 어려움을 표하기도 했고, 

Tobias의 근황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는 그리스인으로서 비자 연장할 필요가 없고 게다가 독일 여자와 결혼을 했다. 

내가 그에게서 약간의 부러움을 느끼는 근거이기도 하다. 

현재 그는 Köln에 살고 있는데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장을 보러 뮌스터로 온다고 한다.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Tobias와 함께 보기로 했다.


Big Band "No Surrender" 기타리스트 Sebastian Claas는 

5월 5일 예수승천일에 의식을 잃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고, 

6월 17일에 뮌스터 대학 병원에서 의식을 찾지 못한 채, 

가족들의 동의로 인공호흡을 중단했다. 

그리고 6월 23일 그의 장례식이 있었다. 

늘 있었던 자리에 없다는 것은, 

언제나 낯설다. 


비자 연장을 하기 위해 시청의 외국인 담당부서에 갔고,

담당 공무원은 지도교수님의 학업 연장 승인서를 요구했다. 

석사 과정은 규정상 2년(4학기)인데 이번 학기는 5학기째로 이 규정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독일인이거나 유럽인이었다면 상관없겠지만

나는 철저한 비유럽권 학생이기에 이 승인서가 필요했다.

하루만에 교수님과 연락이 닿아 승인서를 받았고, 

바로 다음 날 1년 연장 비자를 받았다. 

원래는 1년 6개월 정도를 예상했으나, 

석사 과정 규정에 따라 1년 비자를 준 것이다.

즉 나는 1년 안에 이 석사 과정을 끝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또 지도교수님으로부터 학업 연장 승인서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받으면서 연장을 해야 하나..?

정말 독일에 온 이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갑자기 테너 색소폰이 불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하고 싶다'는 실행으로 옮겨져 테너 색소폰을 구입했다. 

Jupiter 789-787을 350유로에 구입했다. 

대만제 기종으로는 최상급으로 기존 시세보다 무척 싸게 구입한 것이다. 

Achen에 사는 판매자는 DHL택배로 테너 색소폰과 그동안 구입했던 색소폰 물품 일체를 내게 보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자신의 삶에서 색소폰으로 보냈던 일부를 완전히 도려내어 내게 보낸 것이다.   

두 개의 피스가 있었는데 둘 다 불어보고 하나를 팔기 위해 ebay에 내놓았고, 

네덜란드에 사는 'Richard'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리페이싱 된 구형 Otto-Link 메탈 피스를 구입했다.  

그 외로 Selmer shot shank C* 알토 피스를 싼 값에 구입했다. 

이로 인해 6월 한 달 간 평소보다 많은 돈을 지출했고, 

결국 이후부터는 다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밴드 리더 Thomas에게는 방학 이후 8월 말부터 알토 대신 테너를 불겠다고 말했고, 

그 전에 알토에서 테너로 옮긴 Kerstin은 그런 나의 포지션 변경에 기뻐하며, 

다시 알토로 돌아가는 것으로 했고 그녀는 내게 자신이 모았던 테너 악보들을 서류철과 함께 주었다. 


테너 색소폰을 부는 것은 조금 힘든 일이다. 

알토나 소프라노는 아무래도 가볍고 한국에서도 계속 연주하여 익숙하지만, 

테너는 예전에 이승윤 회장님의 마크6 테너를 잠시 몇 주 불어 본 이후로 경험이 전무하다. 

일단 장시간 연습하기에는 악기를 지지하는 오른손과 무게에 따른 스트랩의 압박으로 목이 아프다. 

적응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고 기본적으로는 올바른 자세를 취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연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평소에 연습 시간을 2-3시간으로 배정하는데, 

오전에 1시간 정도 오후에 2시간 정도 하는 편이다. 

오전에 수업이 있으면 연습은 할 수 없고, 

오후에 밴드 합주나 특별한 일이 생기면 역시 할 수 없다. 


근래에 알토는 Kenny Garrett, 테너는 Joshua Redman의 곡들을 카피하고 있다.  

둘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감탄하는데,

Kenny Garrett의 연주는 빠른 텅잉과 현란한 아르페지오 패턴들이 곡마다 정신없이 쏟아진다.

Joshua Redman의 연주는 스토리가 있는 연주로 기승전결이 확실히 느껴진다. 

곡 카피가 좋은 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듣는 귀가 좋아져서 즉흥 연주시 어떤 음들이 떠오르면 바로 손으로 이어져 연주할 수 있다는 점과, 

다른 악기들과의 Interplay시 역시 귀의 빠른 반응으로 치고 받을 수 있다. 

작게는 카피하는 곡에서 연주자들의 특징과 코드 분석을 통해 사용된 음들을 

다른 곡이나 즉흥 연주에서 응용하기 쉽다는 점에서 좋다. 

당분간은 단순 코드 패턴과 카피 연습만 하려고 한다. 


2014년 4월 말부터 다녔던 Music Academy를 8월까지만 다니기로 합의했다. 

약 2년 반 동안 두 명의 선생님으로부터 레슨을 받았고, 

작년부터 한달에 한번씩 학원생들과 합주를 했다. 

그만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더이상 규칙적으로 레슨을 받을 이유가 없다. 

지금 내게 필요한 공부는 곡과 코드 분석이고 

그 분석에 따라 좋은 음들을 정확한 타이밍에 연주하는 것인데,        

이것은 규칙적으로 레슨을 받는 것보다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레슨을 받으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레슨을 받지 않아도 혼자서도 공부가 가능한 영역이다. 

이 점은 지금 나를 가르치고 있는 David의 생각과도 같다. 

아쉬운 것은 한달에 한번 있는 합주 연습에 더이상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참여하는 학생들의 수준은 차이가 있지만, 

나는 피아노 선생님이자 합주 멤버인 Juri의 플레이를 좋아했다. 

곧 나는 그와 그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한다. 


영국의 EU 탈퇴는 낯설지 않다. 

영국 사람들, 특히 연령대가 높을수록 

과거의 '대영제국'의 향수와 극우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투표율 역시 높다. 

영국 총리는 쓸때없는 말과 행동으로 쓸때없는 결과를 만들었다. 

곧 영국인들도 나와 같이 비자 연장을 하러 시청에 가야 하는 건가?

나이 많은 자들은 왜 그렇게 극우가 되는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좋으나 과거가 현재, 또는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시대착오적이다.  

이 '시대착오'현상들을 전 세계에서 볼 수 있으니.. 이것 역시 21세기의 미스테리이다. 


Christian은 난민들을 위한 독일어 선생님으로 채용되었다. 

그가 담당하는 레벨은 A1-B1까지이고, 

그 외에도 난민들 중에 학업이나 취업을 위해 도움을 주는 역할도 맡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담당하는 난민들은 대부분 자국에서의 지식인들로, 

독일에 난민으로 왔지만 자신들이 바라는 일들을 하려고 한다. 

나는그런 그의 말보다 그가 괜찮은(?) 직업을 얻은 것 같아서 좋았다. 

하지만 그는 새벽마다 하는 신문배달을 계속 하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의 그런 고집을 그냥 받아 들였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유쾌한 대화를 하고 있다. 

그를 위해 내가 다녔더 어학원의 교재들을 주었다. 


방학이 다가오니 

독일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독일로 오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가든 지, 

누가 오든 지, 

크게 상관하지 않고 안해도 된다. 

나와는 무관하다. 


Frau Freude는 노환으로 등이 불편하여 바퀴와 손잡이가 달린 롤러를 밀면서 움직인다.

이제 그녀에게 더이상 그의 남편과 함께하는 여름 휴가는 없다.

나이가 드는 것은 어딘가가 고장이 나서 더이상 고칠 수 없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언제 나의 몸은 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인가..?

나는 근래에 내가 가진 능력들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아직 젋다고 생각하지만 분명 어딘가는 고장나거나 그 힘을 잃고 있다. 

서둘러야 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