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빛이 내 안에 있다면.. 본문
한국을 떠나기 전 나는 초연했다.
서로에게 지금 할 수 있는 위로와 감사를 했고,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심으로써 형식적인 송별식도 있었다.
편지를 쓸까 해서 편지지를 꺼냈지만 쓰지 못했고,
읽었던 책들에 대한 서평도 쓰지 못했다.
작년과 다르게 떠나기 전 어떤 글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2012년 12월을 되새겼다.
비 오는 아침이었다.
식사를 하고 가져갈 짐들을 들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헤어지는 어머니의 눈빛에서 따뜻함을 찾을 수 없다.
비가 내리는 풍경은 창백했다.
어딘가에 부딪혀서 들리는 빗소리들과,
익숙하게 켜놓은 라디오 소리가 차가운 침묵의 공간을 채웠다.
일어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차분하고 냉정하다.
공항에 도착해서 표를 받고 짐을 붙였다.
아버지와 짧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작년 그리고 몇 년 전처럼 떠나는 순간은 혼자다.
작년에 느끼지 못한 핀에어의 북극항로 10시간.
구름 위의 거대한 공간은 새하얀 눈처럼 하얗다.
몽고와 시베리아를 지나가는 동안 보았던 설원.
여기는 늘 겨울이 아닐런지.. 여기도 삶이 있다.
두 편의 영화을 보고,
두 번의 식사를 하고,
두 번의 잠을 자니 핀란드 헬싱키에 이르렀다.
1년 만에 같은 곳에서 뒤셀도르프행 비행기를 기다린다.
작년에는 짙은 어둠 속에 진눈깨비가 내렸었지..
오늘은 떠날 때의 한국처럼 비와 안개로 창백한 풍경이다.
짧게 전화 통화를 했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었지만 벌써 어둠이 짙다.
두 달 전만해도 같은 시간에 해가 떠 있었다.
뒤셀도르프 공항에는 여러 기억들이 머물러 있다.
짐을 찾고 집까지 가는 기차 시간표를 확인한다.
뒤스부르크역에 내려 뮌스터까지 가는 지역선으로 환승했다.
와이파이 없이는 쓸모없던 핸드폰도 생기를 얻었다.
지난 뉴스들을 들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초인종을 눌렀다.
Herr Freude가 나왔고 우리는 서로 껴안았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있던 Frau Freude를 보고 서로 껴안았다.
둘은 카드놀이를 하려던 참이었다.
"당신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저녁 식사를 하지 않은 나를 위해 둘은 식사를 준비한다.
그동안 나는 짐을 정리하고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
식사를 하면서 서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한다.
두 달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떠났고 누군가는 다시 돌아왔다.
식사 후 남은 짐을 정리했고 새벽 2시쯤 잠들었다.
오랜만에 꿈없는 긴 잠이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도 Frau Freude가 준비했다.
창문 밖에 바람은 차갑고 흐린 날씨였지만,
창문 안은 따뜻하고 정겹다.
논문에 관련된 책을 읽었고 글을 썼다.
이제부터는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좋은 아들이 아닌 것 같다.
좋은 친구도 아닌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가볍게 넘어가는 것이 별로 없다.
생각의 영역은 더욱 넓어지고 고민은 깊어진다.
이런 나에게 가벼움과 일시적인 것들을 요구하면,
나는 진지하고 복잡한 사람이 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는 허무하고 가벼운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매일 의미있고 무거운 것들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게 바라고 요구하거나,
그런 상황들이 되어가는 것이 싫다.
잠시 머물다 가는 곳으로 생각했던 내 방에서 깊은 편안함을 느낀다.
나를 감시하고 경계하지 않는 공간에서 내 할 일을 찾는다.
의미없던 시간들이 있었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불 속에 있었던 날들도,
빗소리에 마음을 놓아 한없이 잠들었던 날들도,
달과 별을 올려다 보며 생각과 마음의 움직임이 멈췄던 날들도,
나는 늘 외롭고 그리워 했으며 즐겁고 평온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두운 창밖은,
내가 걸어가야 할 길과 같다.
빛이 내 안에 있다면,
어둠을 밀어내고 계속 길을 낼 것이다.
혼자인듯 함께 걷는 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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