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약속은 언제나 무겁다 본문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얼굴에 닿는다.
이렇게 또 겨울이 왔다.
단풍이 든 낙엽들에 흙빛이 들었고,
쌓인 무더기들은 가을이 남긴 무덤들이다.
몇 주 뒤면 다른 풍경으로 바뀔 것이다.
내년 가을은 어디서 보게 될까?
그때는 결론지어진 것들로 삶이 변해있을까?
불면으로 지새운 밤들이 의미를 찾을 때,
밤은 다시 부드러워질 것이다.
이번 겨울 학기 Kolloquium에도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했다.
유독 한 명이 눈에 뜨였는데,
아르헨티나 출신이고 F. H. Bradley의 형이상학을 공부하고 있다.
외모는 Florian Henckel von Donnersmarck 감독이 연상되었다.
현재 그와 대화할 수 있는 언어가 영어라서,
이번 학기 Kolloquium은 영어와 독일어로 진행될 수도 있다.
이번 학기에도 논문 발제를 하기로 했고 2월 11일에 할 예정이다.
발제보다 급한 것은 전체 논문의 완성이다.
오랜만에 Christian이 찾아왔다.
원래는 금요일 오후에 보려고 했지만 목요일 오후에 찾아왔고,
마침 Kolloquium이 끝날 때였다.
차를 마시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서로 말했다.
남아이는 라면 한 봉지를 그에게 주었다.
지난번에 준 것들은 난민들이 원해서 그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난민들 중 어린아이들이 K-Pop과 한국 문화, 음식들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1시간 정도 대화하고 Christian은 떠났다.
동생이 취업을 했다며 문자를 보냈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로 원하던 직장들에서 채용공고가 뜨지 않았고,
긴 기다림이 가져다준 우울과 불안으로 동생도 불면의 밤들을 보냈었다.
동생에게 축하의 말과 부탁의 말을 함께 전했다.
내가 한국에 없으니 동생에게 부모님의 평안을 바란다.
불면으로 인하여 토요일 밤을 지새우고 교회를 갔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기차가 연착되어 평소보다 2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서 장로님이 대신 중고등부 예배실 문을 여셨다.
피곤했지만 해야 할 일들을 했다.
오랜만에 성윤이가 왔고 다니엘의 동생 에스더가 새로 왔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들을 보며 피곤함을 잠시 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미로와 훈이를 정류장에서 만나 함께 버스를 탔다.
이번 주는 오고 갈 때 Duisburg 중앙역에 내려 환승했다.
기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Lockdown 때문에 봄부터 머리를 길렀던 성일이가 머리를 깎더니,
뒤이어 함께 머리를 길렀던 형준이도 머리를 깎고 나타났다.
오늘 나도 마트에서 장을 보고 헤어숍에서 머리를 깎았다.
헤어숍에는 총 세 명의 이발사가 있는데 오늘로서 그 세 명 모두에게 머리를 맡겨보았다.
모자를 벗은 느낌이 들 정도로 머리는 가벼워졌다.
짧은 머리가 만드는 단정한 분위기에,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눈만 깜빡거렸다.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 이상의 말을 하거나,
이상할 정도로 친절하고 성실하다면,
나는 그에게 마음을 쏟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것을 알지 못하거나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내 말과 행동들은 점점 허무에 가까워진다.
가까워질수록 나의 말과 행동들도 점점 차가워진다.
그가 이런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돌아선다면 나 역시 돌아선다.
서로 알아보지 못하면 "매일 스치는 사람들"일 뿐.
약속은 언제나 무겁다.
약속을 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 그 약속을 깨려고 하지 않는다면 지키려고 한다.
간혹 누군가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 서로의 관계를 극단으로 몰아가는 경우,
그와 또는 그들과 함께 약속을 지킬 이유가 더이상 내게 없다.
그럴 때는 내게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라고 묻지 말고,
왜 약속을 지키려는 내게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약속은 기억이고 실행될 때 의미를 갖는다.
나는 내가 한 말들에 대해 늘 기억하며 책임을 지려했고,
때로는 그 말들이 가진 무게감에 스스로 힘겨워했다.
무엇을 약속할 수 없는 시대에 있는 듯하다.
언제라도 "아니다" 싶으면 서로의 몸과 마음은 다른 방향으로 돌려진다.
땅에서 하늘만큼이나 멀어진 마음들의 거리를 본다.
무심한 표정들을 짓는 사람들 앞에서 억지로라도 웃는다면 괜찮아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내 몸 어딘가에서 눈물 같은 것이 정직하게 흐르는 것을 느낀다.
아버지 생신이 다가와서 아버지 계좌로 송금을 했다.
아버지가 그동안 내게 준 돈에 비하면 먼지 같은 돈이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한다.
나는 스스로 무엇이 되기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인가?
내 가족도 지킬 수 없다면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나는 지키고 있는 것인가,
잃고 있는 것인가?
밤바람이 차다.
아직은 알아보지 못함에 대해 아쉬워할 수 없다.
나는 숨어있고,
숨겨진 것은 누군가에게 발견되어야만 드러난다.
스스로 드러날 때가 온다면 알아보지 못함보다는,
내가 맞선 것들과 내게 맞선 것들이 주는 열정과 고통 속에서 살겠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은 없다.
무엇을 하든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는 짓을 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늘 하고 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에 관한 성찰이 나를 잠 못 들게 할 것이다.
이 목사님이 생일을 맞이해서 축하 인사를 전했다.
Blog 댓글들 중에 이제는 더 이상 공개할 필요 없는 댓글들을 삭제했다.
서로 모르면 상관없지만 상대가 조금이라도 나를 알면,
대화를 계속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상대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편한 세상이지만 삶이 편해진 것은 아니다.
논문을 빨리 완성하고 원하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완성으로 인하여 자유보다는 구속에 가까운 삶을 살 수도 있다.
공부, 음악, 사랑.
여기서만큼은 언제나 정직하고 성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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