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그대들이 내 글을 보는 이유 본문
주일 이른 아침에 하늘을 보니 오리온자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동쪽 하늘에는 어느새 반으로 줄어든 달이 지고 있었다.
창문을 열자 찬 공기가 방으로 밀려 들어왔다.
건너편 건물에 켜진 몇 개의 노란 불빛들이 보였다.
옆 건물은 아직 어둠 속에 있었다.
"편협한 관계"에 대해 고민했다.
물러설 수 없는 경계들이 만들어 낸 공멸.
나는 "배려"를 "배려"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의미가 완성된다.
오랜만에 치과에 가서 검진을 받았다.
며칠 전 오른쪽 아랫니 어금니 윗부분이 살짝 깨져서,
치료 겸 검진도 함께 예약했다.
10월 첫 주 화요일 오전 9시 15분에 병원에 도착했고,
첫 방문이라서 개인 문서들을 작성을 했다.
코로나 방역수칙으로 인하여 병원 밖에서 대기했다.
얼마 기다리지 않고 다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의사 외모는 현 영국 총리를 닮았고 목소리는 얇았다.
"튼튼한 치아를 가지고 있군요."
깨진 부분은 새롭게 메워졌다.
그 외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의사는 내게 무엇을 공부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자신이 Nienberge에 살고 있다며 반가워했다.
오랜만에 그곳에 있었던 기억들이 짧게 떠올랐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맹목적인 일이 아니다.
비록 그것이 종교와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고 해도,
자기 자신을 그 사랑 속에서 잃어버리는 짓은 할 수 없다.
먼저 개인 스스로를 지켜야 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때 서로를 지킬 수 있다.
어느 한쪽이라도 의존의 비율이 높아진다면,
그 비율이 다시 작아지거나 없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사랑할 때 열심히 사랑하고,
헤어질 때 뜨겁게 헤어져야 한다.
기억들은 그렇게 남았다.
지난 화요일에 정장 두 벌을 세탁소에 맡겼다.
아직 마음에 드는 세탁소를 찾지 못해서 이곳저곳 한 번씩 맡겼었다.
다른 곳들보다 10센트 정도 쌌지만,
세탁이 일주일 정도 걸린다는 말에 조금 놀랐다.
외진 골목에 있어서 처음에는 낯선 기분도 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아시아 마트를 보고 잠시 들렀다.
이 도시에서는 처음 보았으나 특별하지는 않았다.
오늘 세탁된 정장 두 벌을 받았고,
집으로 돌아와 옷장에 걸었다.
"솔직하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사람의 무엇을 보고 들어서 "솔직하다"는 것일까?
누군가 머릿속의 생각들과 순간의 감정들을 가감 없이 사람들 앞에서 표현한다고 해서,
나는 그를 "솔직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미쳤다".
"솔직하다"는 것은 머릿속의 생각들과 순간의 감정들을 정리해서,
상황에 맞는 자신의 언어나 행동들로 표현할 때 "솔직하다"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잘 되는 사람이 있고,
잘 안 되는 사람도 있다.
솔직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느껴지는 그대의 진심을 원한다.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그만두게 되면,
가끔 아쉬움보다 후련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 공간과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했기 때문에,
그만두게 되더라도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덜하다.
특히 공간이 작고 시간이 짧을수록.
그 반대라면 아쉬움의 크기도 그것들에 비례한다.
최근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었을 때,
후련함을 오랜만에 느꼈다.
지난 화요일 저녁에 동생으로부터 긴 문자가 왔고,
목요일 오후까지 매일 일정 시간 대화를 했다.
코로나 사태로 취업이 어렵다는 것을 동생의 말들을 들으며 체감하고,
부모님이 자식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깨닫는다.
여린 마음을 가진 동생이니 어느 정도 걸러서 들어야 하지만,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가는 느낌은,
속도가 붙을수록 삶의 의미도 비례하여 옅어진다.
하고 싶은 일들을 즐겁게 하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나 역시 자유롭게 살기 위해 유학을 시작했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은 도처에서 발생하고,
그 일들 때문에 삶의 무게가 가벼워질 틈이 없다.
동생이 가진 삶의 무게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워졌을까..?
무슨 말을 해도 위로할 수 없고,
간간이 링크한 음악들만이 동생의 마음에 닿는 것 같다.
"고마워 오빠-"라는 말과 함께 대화는 끝났다.
우리는 이제 화해를 한 것 같다.
마음을 흔드는 사람이 없으니,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니 별 것 아닌 흔들림이었나 보다.
엇나가는 감정들과 감성들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고,
비어있는 문장들로 빈 공간을 채우는 것만큼 허무한 것도 없다.
"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그대"라고 부른다.
약속들은 어느 것 하나 가벼운 것이 없다.
그것들이 어느 순간 족쇄가 되는 기분을 알기에,
돌아설 때는 냉정하지만,
시작할 때는 항상 어렵다.
어느 순간에도 변함없는 것은 다가올 그리움과 남겨진 고마움.
많은 "그대"들 속에 "너"를 찾는다.
코로나 사태로 거의 전 세계가 근심하고 있지만,
내 주변에 확진자들이 없기에 그 위험성을 주로 머리로 이해한다.
마트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마스크를 꼭 쓰고,
불편하지 않으면 그 외의 장소들에서도 쓰려고 한다.
길을 걷다가 버려진 마스크들과 위생장갑들을 봄으로써,
짧은 순간이지만 코로나 사태를 체감한다.
아버지의 삶은 무엇일까?
나는 평생 남을 나의 라이벌로 생각한 적이 없다.
나보다 뛰어나면 그것을 인정하고 잘한다면 박수를 친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보았던 나무였다.
그 나무가 내 키보다 더 커지고 무성한 가지들에 잎들이 만연했을 때 생각했다.
"내가 저 나무보다 더 큰 나무가 될 수 있을까?"
유학 이후 그 나무에 겨울이 찾아온 것 같다.
평범하지 않은 자녀들을 둔 탓일지도 모른다.
청렴한 삶이 불명예처럼 느껴진 것일지도 모른다.
나뭇잎들이 다 떨어지기 전에 뿌리부터 말라 가는 나무가 되었다.
아버지와 문자로 대화를 나누면서,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문장들로 아버지를 공격했다.
이렇게 나의 나무가 죽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한 살아있는 모습을 보기 원한다.
시대가 한스럽다.
주일 아침에 사랑이가 내게 물었다.
"왜 목사님이 되지 않으세요?"
간단한 질문이지만 대답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목사로서 사는 삶이 쉽지 않다는 것과,
목사가 "낙인"이 되어 할 수 있는 것들이 적어진다는 것.
무엇보다 내 여자가 될 사람에게 이것을 물어봐야 한다.
함께 그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현재의 나는 받을 자신이 없다.
신은 왜 내게 이런 마음을 주셨을까?
석원이 형이 얼마 전 목사가 되었으니,
이제 거의 나 혼자 남았다.
한국에서 체류하던 천 집사님이 오랜만에 독일로 돌아오셨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여행사를 운영하시는 천 집사님이 자주 걱정되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크게 달라진 것 없이 건강하여 반가웠다.
짧게 인사를 하고 서로의 길로 돌아섰다.
집사님의 자녀들인 사랑이와 기쁨이가 내 뒤를 따라왔다.
어머니와 오랜만에 길게 통화했다.
긴 통화를 할 때마다 주로 나는 듣는 쪽에 있다.
긴 어머니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끔 생각이 든다.
"내 말은 누가 이렇게 들어줄까?"
예전과 달리 어머니의 말들로 힘겹지 않다.
"빚이 무서워서 부동산 투기는 할 수 없었어."
이 문장이 부정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나의 부모님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셨다.
아버지는 친구 최 사장과 함께 추자도를 가셨다고 한다.
마음에 있던 말들을 쏟아낸 어머니는 편안하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잠시 침대로 몸을 던졌다.
같은 날 저녁에는 단비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짝사랑하던 사람으로부터 거절을 당했다는 이야기.
그전에 교제하던 남자와는 "서로 잠시 시간을 가지자"라고 했단다.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계획하고 있다.
이전보다는 밝아진 느낌이다.
나는 몇 가지 질문들을 단비에게 했고,
그 대답들은 조금 유쾌했다.
또 몇 달 후에 전화를 내게 걸겠지.
야권에 대선후보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야권을 지지하는 언론사들이 일제히 대권후보 행세를 하고 있다.
Youtube는 대학이나 책 보다 더 가치 있는 정보들을 생산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처럼 말한다.
예배는 신에 대한 경배가 아닌 시위의 비천한 도구가 되었다.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이 하는 지식 없는 말싸움들이,
생각이 빈약한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의사는 직업들 중에 하나이지,
직업들 중에 귀한 것은 아니다.
예배 후 하선이와 대화하는 것이 즐겁다.
이번 주는 평소보다 길게 대화했다.
"서로의 성격이 비슷하다"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몇 가지들이 비슷하다는 것을 서로 인정한다.
한국 나이로 "고3"이 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체험하는 모든 일들에서 자기만의 개념들이 생길 때이다.
이번 주부터 가을방학이라서 각자 집에서 같은 영화를 보고,
그것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대화하자고 했다.
덕분에 영화 볼 시간이 생겼다.
평소보다 늦게 부교역자실에 갔더니,
강 전도사는 퇴근하고 원 목사님만 있었다.
청년부 모임이 매주 오후 2시에 Youtube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요새 청년부원들 이름 외우기가 소소한 일거리다.
게스트로 참여하는 청년을 만났고 이름도 알았다.
MBTI 검사를 하고 있었고 그 결과에 대해서 서로 짧게 대화했다.
"여행작가" 같은 삶을 사는 음악인이자,
관계에 갇히고 싶지 않은 강한 의지를 가졌다.
오후 2시 되기 전에 작별 인사를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사랑이가 생일이라서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석원이 형이 목사가 되어서 축하보다 응원 인사를 전했다.
Thomas가 안부를 전하면서 밴드의 위기를 토로했다.
코로나 사태로 연습실 빌리기가 쉽지 않고,
여러 이유들로 밴드 멤버들도 교체되고 있다.
학업을 마치면 꼭 밴드에 참여해달라는 그의 부탁에,
일단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어느 단체든지 리더가 편할 수 없다.
Blog 배경음악들을 수정했고,
예전보다 더 자주 듣고 있다.
내 Blog 주소를 알려준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 정도로 알려준 사람들이 많지 않다.
대부분 스스로 찾아내서 내 글을 보고 있고,
찾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렇지..?
나는 그들에게 고맙다.
좋든 싫든 그들의 기억 어딘가 내가 있기에,
이 곳에서 나를 만난다.
내 글은 누구에게나 보이지만,
누구에게도 꼭 봐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대들이 가끔 또는 자주 내 글을 보는 이유는,
여전히 나에 대한 호기심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서로 만날 수 없더라도,
어디서든 만나게 된다면 그때도 여전한 호기심이 있기를..
살아있는 한 나는 글을 쓰고 그대들과 소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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