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世紀 Enlightener
[작은 연못] 진실을 밝히려는 영화 본문
예전에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나는 예매할 기회를 놓쳤다.
이후 다시 예매하려 했으나 또 기회를 놓쳐 DVD로 발매될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으니 다행스럽다.
난 사실 노근리 사건을 언론매체에서 보도하기 전까지 뭔지 잘 몰랐다.
단지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이 피난민들을 무참히 살해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언제?, 왜?, 무슨 이유로?, 어떻게? 같은 자세한 것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조금씩 알게 되었을 때 이 영화는 내게 진실의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우리도 피난을 가야 되는 거 아니예유?"
"아휴.. 가긴 어디로 간디야."
1950년 7월, 한국전쟁 초기였지만 깊은 산골짜기인
대문바위골에 사는 사람들은 평온한 일상을 보낸다.
전쟁이 났다는 소식에 불안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민군들이 자신들의 마을까지 올 수 없다는 생각에,
다른 마을의 피난 소식에도 마을 사람들은 생업에 종사한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군들이 와서 마을 사람들을 강제 피난을 시켰고,
마을 사람들은 급하게 짐을 꾸려 남쪽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뜨거운 여름 날에 미군들이 보호해줄 것을 믿으며 걷고 또 걸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미군들의 행동이 수상해지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쉬고 있었던 찰나에,
그들의 머리 위로 미군 폭격기들의 폭격이 시작된다.
"저기요,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몰라."
송강호, 문소리, 문성근, 전혜진, 김뢰하, 박광정, 강신일, 이대연 등등..
출연한 배우들을 소개하고 싶지만 너무 많다.
한국 영화계 명품급 주, 조연 142명이 참여한 이 영화는 출연진만 보면,
개런티 비용만으로도 중형급 영화 제작비가 나올 것이다.
물론 배우들마다 영화에서 짧게, 길게 출연했지만,
이 많은 배우들이 개런티를 받기 위해 출연했다기 보다는,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뜻있는 영화인으로서
거의 자원하는 마음으로 출연 했을 것 같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은 추측이다).
<칠수와 만수>,<네온 속으로 노을지다>,<죽이는 이야기>등 개성있는 연출가 이상우는,
거의 50세가 되어서 이 영화로 첫 감독 데뷔를 했다.
영화에서 피난 가는 장면과 미군의 무차별 사격을 받고 난 후 장면에서,
감독은 마치 바다 속을 유영하는 듯 한 고래와 고래 새끼를 삽입했는데,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과 묻혀진 진실의 역사를 살리고자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것 같다.
다작의 연출가는 아니기에 그의 작품을 언제 또 보게 될지는 모르겠다.
흥미로운 사실은, 대학원 차기 원우회 부회장님을 이 영화에서 처음 보았다.
그가 배우라는 사실은 알았으나 직접 언론매체를 통해 본 적은 없었기에,
이 영화를 통해 보았으니 확실한 인증을 받은 셈이다.
동갑내기인데 나보다 몇 살은 젊어보이신다.
모든 배우들과 감독, 스텝들은 故 박광정을 추모했다.
"미군이 쏘잖아요! 나가면 죽어요!"
"미군이 왜 쏴? 빨갱이들이 쏘겠지!"
전쟁영화들은 소재 자체만으로도 마음을 시리게 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는 군인들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미쳐버리는 모습들이나,
모두 인간 실존의 의미와 의문을 갖게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쟁영화들은 비극적이고,
간혹 마지막에 희망을 암시하지만 과정은 늘 비극이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하여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거나 죽는다면,
그것만큼 비극적인 일도 없다.
세계 역사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일본의 식민지 만행을 똑똑히 기억하고 기록했다.
하지만 역사는 늘 승리와 승자들 위주로 기록되었기에,
패배와 패자들의 죄들은 승리와 승자들의 죄들 마저 덮어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직접 알고 보고 깨닫지 않는 이상,
왜곡된 사실과 거짓된 역사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다.
단지 배우고 믿고 알고 있었던 것만을 진실로 받아 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리와 승자들이 통치하는,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이런 역사의 끄나풀들과 먼지들이 다수에게 알려지지 않거나, 깨끗하게 청소되길 바란다.
마치 일본과 중국이 앞 다투어 우리나라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거짓 조장하는 것처럼.
그러나 노근리 사건은 앞의 유형과는 다르다.
미군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과 함께 한국군을 도우러 왔고,
오늘날까지 한미동맹은 유지되고 있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듯이,
미국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자유주의 국가들을 보호하고 도움을 주지만,
상황에 따라 이기적이고 잔인한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나는 미국을 탓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준 영향력은
어둠보다 빛이 더 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사실들은 기억하고 끊임없이 알려져야 한다.
괜한 반미감정과 대미관계 악화를 염려하여
사실을 조작하고 왜곡 내지 거짓으로 바꾼다면,
우리나라는 미국과 동등한 국가가 아니라 미국의 개일 뿐이다.
그리고 서로가 인정할 것은 인정하여 사과와 보상을 정당히 요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북한군 소년 병사와 비슷한 또래의 짱이가 서로의 눈을 마추치는 장면이다.
한 소년은 북한군 병사로서 총을 쥐며 자신이 생각하는 적들을 죽여왔고,
한 소년은 시골에서 학교 다니다가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함께 떠났고,
미군들이 쏘는 총탄에 머리를 숙이며 부모와 마을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두 소년이 훗날 어른이 되었다면,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사람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누구 산 사람 없소? 동무들! 동무들! 미국놈들 다 도망갔소!"
어려움을 당하여 도와달라고 소리치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자신을 도와주러 온 사람이 도와주는 척 하면서
도리어 절망의 나락이나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는 악마로 돌변한다면,
이후 앞으로는 어려움이 다가와도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누군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해도 냉정하게 거절하거나
무시해야 하는 마음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우리가 사는 세상 내에 비일비재 한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신뢰와 믿음보다 불신과 불의가 만연할 것이다.
다소 부정적인 말이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스럽다.
그래서 올 한해 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공정사회를 위한 노력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다.
왜 이럴 때면 '이기적 인간'과 '상대주의 인간관'을 주장한 사상가들의 말들을,
마지못해 수긍해야 하는 기분이 드는 것일까?
이 영화를 통해 어떤 사람들은 반미감정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반미감정보다 인간의 연약함과 비정함을 보았다.
연약한 인간들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는 것과,
공동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때로는 아무렇지 않게 비정한 선택을 한다는 것,
이 두 가지 사실은 인류 문명을 오늘까지 이끌었고,
세계 역사의 글귀마다 기록되어 있다.
역사는 남겨진 자들이 평가하지만,
왜곡된 사실과 거짓된 역사들은 남겨진 자들도 때론 지나쳐 폐기처분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근래에 이 영화를 비롯한 '진실을 밝히려는 영화'들의 등장은,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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