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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강우석 감독의 새로운 변화

EAST-TIGER 2010. 7. 16. 12:53


늦은 오후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오후 4시라 누군가와 약속을 정하기엔 조금 늦은 시간이었고,

그래도 몇몇 친구들에게 제안을 했지만 다들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


결국, 오랜만에 혼자 보기로 결심하고 강우석 감독의<이끼>를 예매했다.

혼자 볼 영화니 시간은 넉넉하게 밤 10시 45분으로 했고,

버스도 있지만 걸어서도 집에 갈 수 있는 구로CGV로 영화관을 정했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꽤 많았고,

디지털 버전이라 깨끗한 화면에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진짜 악마는 사람의 마음을 훔친다 아이가."


20년 넘게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뜻밖의 부고를 들은 해국은, 

심난한 마음으로 아버지가 살던 마을로 간다.

그러나 이장과 마을 사람들은 해국의 말과 행동을 경계하고 

해국은 그들로부터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아버지의 장례는 마쳤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의심을 품은 해국은, 

마을에 남아 의심을 풀려하고 이장과 마을 사람들은 그런 해국에게 위협을 가한다.

시간이 갈수록 해국의 의심은 생각을 넘어 행동으로 옮겨지자,

이장과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비밀을 숨기고자 해국을 죽이려 든다.



"몸이 무거워지면 생각이 게을러지죠. 그러면 죄가 끼어듭니다."


윤태호 작가의 동명만화인<이끼>를 원작으로 제작한 강우석 감독의<이끼>.

강우석 감독의 영화는 2000년대 이전과 2000년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 이전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제작하며 현실 사회를 풍자했다면,

2000년대 이후는 우리 사회 내의 부조리와 숨겨진 역사들을 영화로 고발했다.

나는 강우석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투캅스>의 향수를 느낀다.

대표적으로 그가 2000년대 이후의 영화들 중<공공의 적>시리즈는

<투캅스>의 외전에서 가깝다는 느낌이 강하고 스토리도 단조롭다.

반면에<실미도>와<한반도>같은 영화들은 원작을 기반으로 각색을 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신만의 스타일을 바꾸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이런 강우석 감독의 노력이<이끼>에서 빛을 발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은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보면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는데, 

그 이유는 이미 스토리를 알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본<이끼>는 원작과 비슷한 흐름이지만, 

강우석 감독의 전작들과는 다른, 뭔가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을 되새겨보니 기존의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원작을 충분히 이해하여 각색에 좀 더 신경을 쓴 면이 영화에서 많이 보였다.

나는 이것이 강우석 감독의 새로운 변화이고, 

앞으로 제작될 그의 영화들이 기대되는 이유가 되었다.


<실미도>,<웰컴 투 동막골>등 다양한 장르에서 

개성있는 연기을 보여준 정재영은 이번 영화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자연스러움이 묻어나 어떤 장면에서도 어색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그의 연기변신이 흥미롭다.


<살인의 추억>,<연애의 목적>,<괴물>의 박해일도 준수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30세가 넘은 나이지만 애띤 얼굴이 20대 초반의 모습을 풍겼고,

<살인의 추억>에서 보여준 비밀스런 이미지와 

<연애의 목적>에서 보여준 발랄함과 짓궂은 매력을 이번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두 배우외에도 이 영화에서는 명품급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다.

대표적으로 유준상, 허준호, 유해진, 김상호, 김준배, 강신일 등을 꼽을 수 있다.

오랜만에 김준배를 영화에서 보았는데, 

역시 특유의 분위기와 개성 넘치는 연기를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김상호, 유해진은 명품 조연이긴 하나, 

한정된 배역만 맡는 것 같아서 이제는 새로운 이미지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니는 신이라도 될라했나? 내는 인간이 될라고 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심야버스를 타지 않고 집까지 걸어갔다.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면, 걷는 것이 가장 좋다.

걷다보면 마음도 안정되고 좀 더 냉철하게 생각할 수 있다.


일단 영화는 몇 가지 흥행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강우석 감독의 영화' 라는 브랜드 효과이고,

둘째는 연기파 배우들을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며,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들이 흥미롭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질문을 먼저 떠올렸다.

어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종교의 비합리성에 비판을 가했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관객들은 우리 사회 내 총체적인 부조리의 축소판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개인의 가치관 점검이나 여러 가지 문제의식을 갖게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종교적 차원에서 이 영화는 종교인들의 문제점을 조명한다.

영화에서는 전형적으로 기독교를 타겟으로 삼았지만,

사실 기독교뿐만 아니라 기성 종교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종교인들은 자신의 종교의 교리와 순수성을 강조하며, 

교인들에게 인간을 넘어서 신이나 신에 가까워지도록 가르친다.

하지만 그것을 가르치는 종교인들 역시 인간이지 신이 아니다.

종교인이라고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고 

죄를 이길만한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종교인이나 교인이나 절대적인 신 앞에서는 그저 흠 많은 인간일 뿐이다.

이 영화에서 유목형은 스스로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는 자신이 깨달은 기독교의 교리를 자신의 생활 속에 실천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신과 같은 삶을 살도록 가르쳤다.

처음엔 그를 따랐지만 결국에 참지 못한 사람들은 그로부터 등을 돌렸으며,

위기의식을 느낀 유목형은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을 완전히 잃고 사람들의 횡포를 묵인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려던 그는, 

사람들의 변심을 유발한 가해자가 되었다. 


사회적 차원에서 이 영화는 약육강식(弱肉强食)과 배금주의 등등..

우리 사회 내 부조리를 고발한다.

일반적으로 강한 자는 약한 자를 통제할 권한을 부여받고, 

그 권한이 남용될수록 사회 부조리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만, 

문제의식보다 받는 이익이 크다면 굳이 문제의식을 오래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이런 현실에 사람들이 익숙해지고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순간, 

강자의 세력은 더욱 단단해지고 사람들은 강자의 이익을 위한 도구가 된다.

이 영화에서 천용덕은 자신이 가진 힘과 능력으로 주변 사람들을 장악했고,

유목형의 약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세력유지를 위해 불법을 자행했다.


개인적 차원에서 "사람은 어떻게 악하게 되는가?" 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는 사람은 이기적 본성을 가졌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선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근거로 우리 안에 선한 의지, 즉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악해지는 원인은 그가 접하는 환경과 상황에 있다고 본다.

악이 만연한 환경에서는 선이란 희박해질 수밖에 없고,

정신적 충격을 줄만큼의 상황은 사람의 이기적인 본성을 자극하게 만든다.

결국 사람들은 선한 의지와 양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조건들 앞에서 이기적 본성과 악함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 내에 일부 범죄자들을 교화시키지 못하고 

교도소 밖을 나가게 하는 지금의 현실과 불법을 당연시 하는 사회적 분위기,

법과 윤리의 느슨함과 사각지대에서 일어나는 

개인과 집단의 이기적 본성이 가져다 준 시대의 참극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아버지의 죽음을 추적하던 유해국은 

자신을 위협하는 이장과 주변 사람들과 끝까지 싸우지만,

그 싸움은 누군가의 목적을 위해 미리 계획된 하나의 그림이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맞는 말이네. 성경 참 좋네."


이외에도 영화는 사회와 개인이 가지는 여러 문제점들을 보여준다.


한 가지만 말한다면, 서로 간의 소통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될 수 있는 것도,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는 것도,

서로 간의 소통 유무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회, 종교, 집단, 개인 등등..

우리가 처한 지금의 현실은 소통의 단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는 헌법이나 정책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해주어야 하지만, 

오늘도 현실을 원망하며 자살이나 극단적 행동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고,

빈익빈, 부익부 등 사회 계층 간의 불평등은 심해지고 있다.

종교집단 역시 자신들의 종교 교리를 바탕으로 포교활동을 벌이지만,

사회와 자신들을 분리하여 불완전한 인간을 신으로 만들려 한다.

그리고 종교의 표리부동적 모습은 언론의 좋은 먹이감이 되고,

대다수 사람들은 종교집단의 독선적 행동과 이기주의에 염증을 느낀다.

결국 종교집단은 그들의 교리 신봉함으로써 타자들 간의 소통을 단절한다.


집단과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이 속해 있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타 집단과 경쟁하고,

불법과 비리를 자행하며 모든 대상을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개인과 개인 간의 소통은 서로 간의 이해없이는 어려운 일인데,

요즘은 먼저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이해를 상대방에게 먼저 주입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영화에 나타난 다양한 배역들이 서로 간의 소통을 중시했다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을 조종했던 보이지 않는 손에 놀아나는 결과도 없었을 것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 없이 개인과 집단의 욕심과 명예추구는 소통의 단절을 이끌고,

소통의 단절은 개인과 집단의 극단적인 행동을 유발하여,

사회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로 치닫는다.


우려되는 것은, 

이 모든 것이 누군가가 계획한 바보놀음이라면 더욱 비참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근래에 보았던 영화들 중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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