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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자서전] 이제 남겨진 자들의 차례이다

EAST-TIGER 2010. 11. 15. 09:24


  뜨거운 여름이었던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대통령은 서거하셨다. 나는 그때 울릉도에서 여름휴가 중이었는데, 독도로 가는 배에서 서거 소식을 들었다. 병세가 호전되어 퇴원을 앞두고 있다는 보도를 듣고 휴가를 출발했었는데, 급작스럽게 병세가 악화되어 서거하셨다는 보도는 큰 안타까움이었다. 같이 휴가를 온 선배도 애도를 표했고, 휴가를 즐기던 사람들도 서거소식을 듣고 잠시나마 묵념을 하며 애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휴가 내내 뉴스에서는 서거 관련 소식들로 가득했고, 정치, 경제, 사회계의 인사들과 일반 시민들까지 애도하는 모습이 보도되었다. 그 전에 서거하신 노무현 대통령과는 사뭇 다른 애도 분위기 속에서 온 국민은 슬픔에 잠겼고, 이러한 슬픔은 그가 얼마나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력을 주었는지 알 수 있는 증거가 되었다. 


  어느덧 1년이 지났다. 1년 동안 남북관계는 천안함 사건으로 인하여 긴장상태이고, 경제위기와 사회불안 속에 일반 시민들은 숨죽이며 살얼음판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재는 우리가 과거에 선택한 결과이고 운명이다. 그러나 미래는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예측이나 수정될 수 있고, 두렵지만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래서 나는<김대중 자서전>을 읽었다. 그의 유품처럼 느껴지는 책이자, 두려운 미래를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이었다. 그의 삶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아는 것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먼저 보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의 삶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고 이 시대의 선각자였다. 나는 떨리는 심정으로 책을 구입했고, 그와 대화하듯이 책을 읽으며 웃고 울었다. 그리고 이 기분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이 글을 썼다. 



정치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 상황이 나쁘면 최악을 피하고 차악을 택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정치인이란 현실을 살펴 미래를 향한 진리를 구하는 것이지 진리만 붙들고 현실을 도외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 정치인으로서의 내 생각이다.<1권 68p>


  올바른 정치문화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정치계로 뛰어든 김대중 대통령. 많은 선거에서 낙선을 거듭하고, 독재정권의 표적이 되어 사선을 넘나들며 파란만장한 정치이력을 가진 정치인은 여태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다섯 번의 죽음과 6년 동안의 옥중생활, 수십 년간의 감시와 연금, 망명 생활 속에서도 정치활동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근거는, 상황에 따라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최악을 피하고 차악을 선택했던 그의 정치신념에 있었다고 본다. 


  정치는 힘이나 돈의 논리로 하는 것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하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은 자기의 주장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의견과 관심에 주의를 기울이며 가장 좋은 대안을 선택하여 많은 국민들이 행복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만약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때를 기다리거나, 다른 정당한 방법으로 반대자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타협을 이끌어 내야한다. 이것이 올바른 정치문화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도구는 대화와 타협이었다. 6·25전쟁과 독재정권에 의해 숱한 죽을 고비를 넘겨왔지만, 지속적으로 적대세력과 대화를 하려 했고 연설과 글을 통해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자세히 말해왔다. 오직 한 가지 방법만 아는 사람들은 뜻을 이루지 못하면 사람과 시대를 탓하지만, 그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고, 사람과 시대를 탓하기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탓하며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 또한 죄는 부정할 수 없지만 죄인을 용서하려는 그의 신념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자신을 죽이려하거나 모함하던 독재정권과 음해세력을 공개적으로 용서했고, 대통령 재임시절 해마다 양심수들을 대거 사면했던 그의 모습에서 사뭇 고결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체 게바라나 마르틴 루터 킹 등과 같이 정의실현과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살았지만 그들처럼 허망하게 죽지 않았던 것은, 이런 정치신념을 가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정계 복귀를 결심한 근본적인 이유는 평생 품었던 내 꿈을 실현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민주주의 국가 완성이요, 다른 하나는 민족 통일에 이바지하고자 함이었다. 내 평생의 소원인 두 가지 중에서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1권 653p>


  정치인생의 대부분을 야당에서 주로 활동했던 그는, 199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된 다음 날 모든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태도로 정계은퇴를 선언하여 영국으로 출국했다. 이때 그가 보여준 냉정하고 초연한 모습은 그의 지지자들이나 반 지지자들, 국민들에게까지 놀라운 충격과 감동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995년 정계복귀 후 1997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것은 지금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정치신념이 빛을 발했던 순간이었지만, 그의 정계복귀를 반대하는 이들에겐 더 없는 비난의 무기였다. 그리고 재임 중에 터진 그의 아들들의 청탁비리는 그의 정치인생의 큰 오점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인생이 위대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명석하고 총명하여, 약관의 나이에 조선회사와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신문인 목포일보를 사장이 되었고, 그 후 사업을 정리하면서 정치에 뛰어들어 숱한 민주화 운동, 독재정권의 모진 고문과 핍박을 받았지만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외길을 걸었다. 그는 누구보다 편하게 살 수 있는 기회와 유혹도 많았고, 대통령은 아니더라도 대통령 다음가는 권력자도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국민들을 위해 거절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어 자신이 열망했던 두 가지 소원을 모두 이뤘다. 그 소원들은 결코 혼자 이룩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의 위로가 있었고,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이 있었다. 또한 사형수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도왔다. 즉, 그가 이루고자 했던 소원들은 민주주의와 더 좋은 세상을 원했던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었다.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이른바 자생적 민주주의 국가이다. 중국은 아직 ‘못하고’ 있고, 인도는 영국에게 ‘배워서’ 하고, 일본은 패전 후 맥아더 장군이 ‘시켜서’ 하고 있다. 이렇게 민주화를 이룩해 내는 데는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었다. 사상 처음 국민의 힘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나는 이런 숭고한 희생에 보답을 해야 했다. 그들의 한을 풀어 줘야 했다. 정치는 한을 풀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을 쌓아 두고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2권 425p>


  해방 후 국민들은 정치인들에게 주권을 위임한 채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정치(正治)를 하지 않고 정치(情治)를 했고, 언론을 통해 여론을 조작했으며, 정경유착으로 사회정의와 시장경제를 문란하게 만들어 사회 불평등을 조장했다. 무엇보다 옳은 일에 옳다고 말하지 못했고, 잘못된 일에 분개하지 못했다. 단지 찬성에 대한 맹목적인 반대와 이념의 양극에서 벌어지는 도발이 해방 이후 우리 정치역사의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정치인들을 신뢰하지 않았고, 절망하듯 무관심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행보가 돋보였던 것은 권력과 출세에 눈멀었던 대부분의 정치인들과는 달리, 소외계층과 힘없는 국민들의 변호인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전자가 후자보다 적어야 당연한 것인데, 이런 정치적 상황은 왕정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으니 비극이다. 이 비극의 대안을 민주주의 실현으로 보았고, 끝까지 민주주의를 쟁취하려했던 그의 정치행보는 정치에 관심 없던 국민들에게 외치는 무언의 항변이었다. 


  그 항변은 곧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국민들은 그의 정치행보에 감동을 받았고 희망을 얻었다. 직·간접적으로 그를 도왔던 국민들은 어느새 그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치사의 자랑스러운 민주화 운동이 국민들의 자발적인 의식과 행동에서 비롯될 수 있었고, 권력자들의 압력과 폭력에 불안해하면서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던 국민들의 투쟁이 곧 오늘의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사실 ‘퍼 주기’ 논란은 많은 오해가 있다. 과거 서독은 20년 동안 동독에 평균 32억 불을 매년 지원했다. 우리는 13년 동안 매년 1억 5000만 불을 북에 주었다. 이것은 1인당 연간 5000원을 모아 북한을 도운 셈이다. 그 대가로 우리는 남북의 냉전 체제를 종식시키고 화해 협력의 시대를 열었다. 한반도 긴장이 일거에 완화되어 지난 10년 동안 안보 불안 없이 살아 온 것이다. 남북 대치로 엄청난 비용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것에 비하면 ‘퍼 주기’ 논란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 <2권 561p>


  지난 10년간 남북관계에 있어서 민주정부의 ‘햇볕정책’은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물론 ‘퍼주기’ 논란과 친북좌파의 오해를 받았지만, 현실적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전 세계도 이를 인정하여 2000년에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각국 정상들은 햇볕정책을 지지했다. 이러한 성과에도 그동안의 남북관계가 문제 있다며 햇볕정책을 비난하는 세력은 타 국가도 아닌 우리나라 정치계였다. 특히 보수 정치인들은 강경론을 주장하면서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을 좌파 친북인사로 모함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지난 민주정부의 햇볕정책이 현 정부의 대북정책보다 더 좋고 유익하다는 것이다.


  국가와 개인 간에 신뢰가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폭력적인 말과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대등한 국가 간에는 신뢰관계를 형성하지만 군사적, 경제적 차이가 나는 국가 간에는 신뢰관계를 형성하기가 어렵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발언들은 도발적이지만 자신들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호의적으로 나올 수 없다. 그것은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대북관계에 있어서 상호 신뢰와 평화를 원칙으로 내세웠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반세기만에 이산가족이 상봉했고,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대북사업이 활기차게 진행되었다. 대외적으로는 해외자본 유치가 용이했고 국제사회에서 국가경쟁력과 신용도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국제적 약자인 북한과 신뢰를 형성한 결과였다. 역사에 유례없는 강자와 약자 간의 진보적인 대화를 이룩한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어떠한가? 재임초기부터 식량지원중단과 상호호혜주의 원칙을 고수하며 대북관계의 긴장상태를 유발시키더니 전시작전권 환수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천안함은 침몰하였고, 수치를 망각한 군부는 북한 탓으로 돌리며 대북관계는 극도의 긴장과 대결구도로 접어들었다.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은 국제적 제재를 통한 보복을 다짐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으니, 머지않아 9·11테러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지금 위험스러운 대북관계의 해결책은 서로간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얄미운 동포지만 동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그 동포가 어려운 일로 곤란한 상황을 당했는데, 그 상황을 비웃으며 동포의 존망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겠는가? 한반도의 전쟁은 곧 우리 모두의 피해이며 이익은 주변 국가와 강대국에게 돌아간다. 불신과 비난은 신뢰와 평화의 암초이다. 성난 동생에게 지혜로운 형은 달래면서 이해시키려고 하지, 때린다고 해결되었다면 국제사회는 미국의 대결주의에 평화를 맞이했어야 했다. 국민들은 북한과의 전쟁을 바라고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민주정부의 대북정책을 수정·보완하여 그동안 추진되었던 정책들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모함 받고 누명을 쓰고 박해를 받을 때 예수님의 삶을 떠올렸다. 악의 무리에 비폭력으로 저항하면 그 저항이 상대를 깨우치게 해서 결국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믿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무조건 나를 핍박하고 저주했다. 나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무조건 매도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의 최후를 떠올렸다. 군중들이 침을 뱉고 욕하며 돌을 던졌다. 그때 예수 편에 서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나는 감히 예수 편에 서려 했다. 진정한 용기는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헌신에서 나온다. <2권 601p>


  지금 같은 시대에 오직 외길을 걷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많은 권력자들이나 부유층, 심지어 돈 있는 중산층들도 직장이나 사업 또한 신념에 있어서, 더 좋은 여건이나 이익이 있다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이 다반사이다. 간단한 예로 모범이 되어야 할 정치계에서도 선거철마다 ‘철새’ 라는 말이 나오고, 일부 공직자들은 불법과 금품비리에 발목이 잡혀있다. 또한 소수 부유층들은 정부의 정책을 무시한 채, 서민들의 고통을 발판삼아 더 많은 이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현재 대한민국의 위기는 외세나 국내의 경기불황이 아닌 계층마다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 리더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 문제의 핵심은 정치라고 생각한다. 정치가 타락하면 사회 전체가 타락하듯이, 천박한 정치인들의 정치는 사회를 병들게 한다. 



  나는<김대중 자서전>을 읽으면서 인간 김대중과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을 만났다. 세 명의 김대중의 공통점은 호연지기(浩然之氣)였다. 아마 그는 이 마음을 품고 자신에게 닥친 시대적 숙명을 감당했을 것이고, 내게는 큰 도전과 감동이었다. 나는 우리 사회의 주축이라 불리는 청년들이 그의 삶과 고백 속에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부귀한 삶을 버리고 고통 받는 국민들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을 벌였고, 생의 마지막까지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며 연설과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제 남겨진 자들의 차례이다. 이 책을 읽은 나와 김대중의 후예들은 이 사회 어디선가 불의에 투쟁할 것이고, 정의실현과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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