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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世紀 Enlightener
빨래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 없이 한 해가 저무는 것 같지만, 한 것들은 차곡차곡 쌓여 삶을 이룬다. 아직 채워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근심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 채우고 있기에 삶은 생기가 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몇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누군가의 진심을 외면하지 않았지만, 내 진심이 외면될 때면 늘 쓸쓸했다. 이제는 그 쓸쓸함도 익숙해진다. 말수가 적어진다. 언제 사는 것이 즐거워질까? 언제 사는 것이 즐거웠었나? 즐거움은 창 밖 풍경처럼 덧없다. 시리고 진한 기억들만 오래 남아, 가끔 취할 때 턱을 괸다. 빗소리나 바람 소리를 들을 때 눈을 감는다. 먼 곳부터 가까운 곳까지 폭죽 소리가 들리고, 밤은 일찍부터 시작되어, 사람이 사는 건물마다 불..
작년부터 사람들에게 줄 Christmas 카드들과 선물들을 구입한다. 사역을 다시 시작한 이후 회복한 오래된 마음이다. 누군가를 위해 카드에 글을 쓰고 선물을 준비하는 것에 소소한 기쁨을 느낀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따뜻한 생기를 불어넣으면, 누군가에게 들어가 잠시라도 또는 꽤 오랫동안 살게 된다. 올해는 30명에게 카드를 보낼 생각이다. 작년에는 그보다 더 많이 보냈지만 올해는 딱 이 정도만. 어머니의 글씨체는 작고 예쁜데, 나는 어설프게 그 글씨체를 물려받았다. 스마트폰 자판과 컴퓨터 키보드를 누르는 것에 익숙해진 내 손은, 딱딱한 펜을 쥐고 글을 쓰는 것에 낯섦을 느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글과 편지를 손으로 썼던가? 손가락이 펜을 대신한 지 오래다. 가장 먼저 카드를 보낼 사람들은 나의..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냥 여러 날들 중 한 날이겠지만, 챙겨주는 사람이 있으면 오래 기억 되는 날이 된다. 누군가는 나에게,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된다. 파란빛의 쌀쌀함이 감도는 아침에 Düsseldorf 중앙역에서 버스를 탔다. 차창 밖 풍경은 달라지는데 귀에 꽂힌 이어폰은 바깥소리를 담지 않는다. 누가 타고 내리는지도 모른 채 마스크에 가려진 표정은 혼자만 안다.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갈 때 Chris를 만났다. 오랜만인듯 서로 안부를 물었다. 재택근무보다 현장근무가 더 좋다며 웃는다. 앞을 보며 걷고 있는데 Chris가 손을 뻗어 무언가를 내민다. "Frohen Nikolaustag!" Schoko Nikolaus가 눈에 보인다. 오늘이 그날이었던가..? 몇 년 전 같은 날 ..
나무를 보며 지나간 날들을 떠올린다. 이른 봄에 빈 가지들 사이로 작은 잎들이 올라오고 여름에 푸른색으로 옷 입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넓은 잎들이 서로 부딪쳐 먼 파도소리처럼 들렸다. 나무 밑 그늘에서 보았던 푸르고 파란 하늘.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라고 느껴질 때, 눈을 감는 버릇이 있다. 바람이 지나간 후 나무의 침묵은 산처럼 무겁다. 왜 여기 있게 됐는지,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언제까지 있을 것인지, 물음들은 땅 밑으로 가라앉는다. 가을이 되고 잠시 새 옷으로 갈아입는가 싶더니, 가지들 사이로 열매들이 보인다. 먹을 수도 있을 듯한 탐스러운 빨간색. "먹을 수 없다"는 말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고운 열매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 하나 없다니.. 땅에 떨어진 열매들은 사람들의 ..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 기도로 생일을 시작한다. 매일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는데,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이 오직 내 힘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신의 사랑과 동행이 없었다면 지금까지의 삶은 불가능했다. 나는 신의 은혜 입은 삶을 살고 있다. 종교를 믿지 않고 신을 믿는다. 흐린 가을 구름들 사이로 햇살이 내리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뜻함이 밤새 사늘했던 방을 녹이고, 입고 있던 웃옷의 앞부분을 열게 한다. 이상하게 바람의 기운이 느껴진다. 아직 식지 않은 마음은 오늘도 방황한다. 그 정도면 됐다. SNS들은 부지런히 지인들의 생일을 알리지만, 해마다 서로의 생일을 기억하고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졌고, 이제는 정말 아끼는 사람들만 남았다. 담백해진 인간관계가 새로운 시작이 준..
드라마 를 다시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본다. 앞으로 보는 동안, 또 보고 나서도 생각나면 끄적거릴 생각이다. 나 같이 드라마 잘 안 보는 사람들도 봤으니 이미 보거나 이름은 들어 본 사람들이 부산 인구만큼은 되지 않을까 싶다. 언제부턴가 서로의 수많은 다름과 차이들 속에서 몇 개의 같거나 비슷한 것들을 발견하여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뭔가 불안해졌다. 다름과 차이들이 가진 의미들을 찾는 것이 귀찮고 "뭐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정해진다"는 어른의 상식이 본능이 되었나 보다. 특히 연애에서 몇 개의 같거나 비슷한 것들만으로 수많은 다름과 차이들을 메우기에는, 휘발성 높은 그것들이 불 같은 시간에 연소되고 어느새 감당할 수 없이 쌓여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