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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世紀 Enlightener
중학교 때였던가.. 내 영어교과서의 저자로 장영희 교수님을 만났는데 에세이집에서 다시 만나보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다. 칼럼과 TV만평으로 매체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장영희 교수님은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젖은 눈망울로 인간만이 가진 사랑과 용기에 마지막 희망을 둔 이 시대의 시민 교수님이다. 이 책은 단지 교수님이 추천하는 문학들의 소개나 느낌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그 문학을 통해 교수님의 삶과 사회를 향한 외침을 엿볼 수 있다. (지금부터 장영희 교수님이 아니라 장영희 선생님으로 정정해서 쓰려고 한다. 그게 더 친근하고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윌리 로우 맨처럼 큰돈을 버는 일도 신문에 이름이 나는 일도 없다. 가끔씩 ‘인생역전’의 허무맹랑한 꿈도 꾸어 보지만, 매일매일 가족을 ..
몇몇 작가들의 작품들은 읽지 않았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읽었고 그 내용을 대화나 글에서 자주 언급하거나, 그 작품을 읽은 사람이 내게 그 내용을 설명해 주면 알게 되는 경우이다. 위대한 작가 Ernest Hemingway의 작품 는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 작품을 오래 전에 읽었지만, 누군가로부터 듣게 되고 신문이나 방송에서 언급되는 것으로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침 집에 책이 있어서 다시 읽게 되었다. 1년 전 한국에 있을 때 이 책을 읽고 있었지만 다 읽지 못하고 독일로 돌아갔었다. 그리고 다시 한국을 방문한 지금, 작년에 읽었던 부분부터 읽었고 빠르게 다 읽었다. 흥미로운 책 읽기였다. 그러나 그것만은 자신이 정확히 하거든, 하고 노인은..
뮌스터 한인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지난번에 마광수 교수의 책 을 읽고 나서 김진애 박사의 책 을 읽기로 계획했었다. 前 국회의원이자 건축가, 도시계획가인 김진애 박사는 최근 언론과 라디오,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인물이 되었다. 나는 여자와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많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만났던 여자들은 깊은 대화보다는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들어주기 원했고, 편안한 대화를 하기 원했다. 그런 대화도 좋다. 하지만 어떤 주제로 여자와 깊은 대화 또는 토론을 하는 상상을 자주 한다. 대화나 토론 도중 뭔가 내가 간과했던 어떤 것들을 알려 줄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여자를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런 여자를 만나 그런 대화를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진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뮌스터 한인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작년에 한국에 있었을 때 마광수 교수가 별세했다. 그의 글들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해서 그에 대한 추모는 막연한 안타까움이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의 소설 가 외설물로 법적 고발되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고 뉴스에서도 재판이 있을 때마다 보도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우리 사회가 마광수 교수의 덕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박사 논문인 는 시인 윤동주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 중, 고등학생들이 그의 시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인증"을 위해 몇 명의 사람들만 읽은 학위 논문들이 해마다 각 대학 도서관 논문 보관소에 쌓여만 가는 것을 볼 때, 한 편의 박사 논문이 사회 전체에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뮌스터 한인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작년에 한국에 있었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를 읽은 기회가 있었지만, 친한 친구에게 이 신작을 선물로서 줌으로써 그 기회를 양보했다. 그리고 올해 초 뮌스터 한인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이 책들을 신청했고 한달 반 동안 읽었다.1, 2권으로 구성도었고 3권이 나올 수 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읽고 난 후 3권이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완성"된 느낌이 드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언젠가부터 나는 멘시키라는 사람에 대해 지금껏 다른 이에게 느껴본 적없는 친밀함을 품게 되었다. 친근감, 아니, 연대감이라 해도 좋을지 모른다. 우리는 어찌 보면 닮은꼴인지도 모른다-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손에..
뮌스터 한인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예전에 효성이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카뮈의 소설 에 대해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다. 주인공인 뫼르소의 삶과 나의 삶에 빗대어 표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석사과정 때 카뮈의 희곡 , 에세이 와 미셸 푸코의 , , 등을 읽고 둘의 자유론을 비교해서 논문을 쓰고 제출했었다. 그때 만났던 카뮈와 푸코의 글들은 같은 프랑스인으로서 동시대에 살았던 두 인물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과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에 대한 "부분 기억상실증"은 안타까운 일이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개인 블로그에 책을 읽고 서평을 썼지만 그 이전에 읽은 책들은 그저 내 기억력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15년이 넘은 지금 그 책들을 다시 읽으며 처음 읽었을 때 갖지 못했던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