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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ngelion: 3.0+1.0] "안녕, 모든 에반게리온."

EAST-TIGER 2021. 11. 24. 11:21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Evangelion: 3.0+1.0 Thrice Upon a Time>을 보았다. 스토리의 흐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Evangelion: 3.33 – You Can (Not) Redo>를 다시 봐야 할 정도로, 한 편의 후속작을 내기에 9년은 긴 시간이었다. 지난 3월 새롭게 편집한 초반 12분 분량을 선 공개했지만, 전투 장면이라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이전작에서 급변한 상황들과 새로운 설정들 때문에 보는 동안 혼란스러웠다. 에반게리온 모델로 Mark가 등장했고 NERV와 WILLE의 대립은 이전에 NERV와 SEELE 간의 대립처럼 서로의 행동들을 견제하지만, 최종 목적을 위해 서로 이용한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안노 히데아키(庵野秀明) 감독이 말한 대로 기존 에반게리온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설정들에서 비롯된 것들이었고, 그것들의 유기적 결합이 후속작 한 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이런 점에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정보 제공과 그에 따른 설명에 있어서 친절하지 않고, 최종작에서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은 여전히 있었다. 안노 감독 역시 이번 최종작이 "마지막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라고 말하며, <Evangelion: 2.0 You Can (Not) Advance과 Evangelion: 3.33> 사이에 있었던 14년의 공백기를 영화로 제작할 수도 있음을 알렸다.  

 

"넌 아야나미 씨와 다르잖아. 그렇다면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하면 돼." 

 

어쨌든 시리즈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Evangelion: 3.0+1.0 Thrice Upon a Time은, 러닝타임이 150분이 조금 넘었고 초반 12분 정도는 선 공개된 영상이었다. 이후 Evangelion: 3.33 끝에서 보았던 아스카와 레이, 신지가 "L결계" 밀도가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나왔다. 니어 서드 임팩트가 있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 "제3마을"을 만들었고, 부부가 된 토우지와 히카리, 여전히 캠핑하듯 사는 켄스케도 그 마을에 있었다. 서로 생사를 모른 채 오랜 시간 보지 못했던 그들이 다시 만났지만, 신지는 친구들의 존재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신지는 자신의 행동들이 가진 의도와 다른 결과들을 불러일으키자, 삶의 의지를 거의 잃은 상태다. 이 설정은 1997년작 <The End of Evangelion>의 설정과 유사하다. 다른 점은 신지 스스로 삶의 의지를 다시 찾으려고 노력한다.    

 

"나도 아스카를 좋아했어." 

 

오랜 제작기간의 결과로 작화와 모션, CG는 진일보했다. 부드러운 움직임과 깔끔한 채색이 돋보인다. 특촬물식 연출은 안노 감독의 개인 취향에 비롯된 것으로 이질감은 없었다. 오히려 장소의 경계가 확실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신지가 아버지 겐도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맞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듯 보였다. Evangelion: 3.33 이후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나타났는데 최종작에서도 그들에 대한 서사가 부족하여 "병풍" 역할에 그친 느낌이다. 특히 Wunder 승선원들이 다소 평면적인 인물들로 묘사된다. 사기스 시로(鷺巣詩郎)의 음악은 여전히 훌륭하다. <The End of Evangelion>에서 사용했던 음악들이 새롭게 편곡되었다. 미사토 함장이 가이우스 "빌레의 창"을 신지에게 주려고 거대 레이 손을 돌파할 때 "Joy to the World"를 배경음악으로 썼는데, 듣자마자 웃었다. 정말 신지에게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였다. "고마워요, 미사토 씨."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안노 감독이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 시리즈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최종작에서 비교적 쉽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뒤처리를 해야 한다고나 할까, 책임을 지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야지." 후반으로 갈수록 <The End of Evangelion>를 비롯해 TV판 25-26화가 재구성된다. 신지를 비롯한 겐도, 아스카, 카오루의 개인 이야기들은 이미 알려진 부분들부터 그동안 추측들로 채워졌던 부분들까지 자세하게 전개되었고, 그 결말들 중에는 이미 알고 있던 정보들에서 나올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다. 아마 이 예상치 못한 결말들에 영화를 본 관객들이 가장 공감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조금 더 되새기면 아주 이해를 못 할 정도는 아니다. 아스카는 카지 같은 남자 켄스케가 필요했고, 신지에게는 어머니 유이 같은 여자 마리가 필요했다. "네가 어디 있든 반드시 데리러 갈게. 그러니까 꼭 기다려 신지 군!" 신 극장판 최종작에서가 아니라 <The End of Evangelion> 마지막 장면에서 신지가 아스카에게 먼저 고백했다면 어땠을까? 신 극장판을 되돌아보면 "좋아해"에서 "좋아했어"로 변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스카와 신지 모두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들이 깊었고, 서로가 감당할 수 없기에 제삼자가 그 상처들을 보듬어줘야 했다. 안노 감독은 신지와 아스카가 서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결별을 선택한 것 같다. "안녕, 아스카."   

 

"너야말로 여전히 귀여워."

 

겐도의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최종작에서 안노 감독은 에반게리온 시리즈 내내 신지와 겐도가 다른 듯 같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랑 똑같았네요, 아버지." 겐도는 레이를 만들어 아내 유이를 그리워했고, 레이는 겐도의 아들 신지에게 친구이자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하며 곁에 있었다. 카오루는 겐도가 바라던 어떤 이상적 대상처럼 보였다. 카오루는 겐도와 비슷하지만 겐도가 신지에게 할 수 없는 것들을 대신했고, 신지 역시 카오루로부터 심리적 안정을 얻었다. 그런 겐도의 그늘에서 자라던 신지는 마침내 그 그늘에서 벗어나려 한다. "아버지는 뭘 바라는 거죠?" 신지는 인류 보완계획을 위해 아버지 겐도가 벌인 일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정리함으로써 소년에서 어른이 된다.

 

신 극장판 시리즈가 끝났지만 안노 감독은 언제라도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의 말대로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반복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제 신지는 에반게리온이 없는 세계에서 어른이 되었고, 신 극장판도 일본과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기대 이상의 흥행 수익을 거뒀다. 이 정도면 안노 감독이 "우리들은 또다시, 무엇을 만들려 하는가?"에서 밝힌 바람들을 어느 정도 실현했다고 생각한다. "안녕, 모든 에반게리온."   

 

여전히 1997년작 <The End of Evangelion>이 내게는 "최종작"이다. 그런 연출과 결말은 그때만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때와 달리 지금 안노 감독은 혼자도 아니고 불행하지도 않다. 어쩌면 내가 지금 그때의 안노 감독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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