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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아이의 삶은 부모의 것이 아니다

EAST-TIGER 2009. 7. 31. 09:21


같은 영어권 나라이지만 

영국 영화에는 헐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깊이와 의미가 있다.


오늘 본 이 영화에도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보는 내내 여러가지 생각들을 했다.

교육, 청소년, 직업, 파업, 사회 등등...

모처럼 다양하게 시점에서 영화를 바라 볼 수 있어서 뜻 깊었다.


항간에 내 친구들이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본다고 하는데,

근래에 내가 책보다 영화를 자주 보는 것은, 

일시적이지만, 책이 주는 장점보다 

영화의 장점이 조금 더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령 한 권의 책을 3일동안 열심히 읽는 것 보다, 

약 2시간 정도의 영화 한 편이, 

2-3권 분량의 책을 읽은 효과가 있다고 느껴졌다.


단, 개인적으로 의미를 파악하면서 영화를 봐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여자들에겐 정상적이지만 남자는 아니야. 빌리. 

남자들은 축구나 권투나 레슬링을 하는거야. 

발레는 남자가 하는 것이 아니야."


영국 북부 더럼에 사는 빌리 엘리어트.

광부인 아버지와 형은, 광부노조의 파업으로 시위에 나가 있고, 

늙은 할머니를 돌보며 학교를 다닌다.

방과후 활동으로 권투를 배우던 빌리는, 

같은 장소에 발레수업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온통 여자들만 있는 발레수업에, 

뭔가 이끌리듯 참여하게 된 빌리.

빌리는 권투장갑과 신발을 벗고, 

발레 선생님인 윌킨스 부인에게 처음으로 발레를 배운다.



"전 절대 실력이 안돼요. 아직 하나도 모른다구요."

"네가 발레를 얼마나 아는지는 별로 관심들이 없어. 

거기서는 널 가르칠거야. 그러니깐 발레학교지.

중요한 건 네 움직임과 어떻게 표현 하는가야."


윌킨스 부인은 빌리가 발레의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런던에 있는 로열발레학교의 오디션을 제안한다.

그러나 빌리의 가족들은 빌리가 발레를 한다는 것에 격노한다.

발레를 배우고 싶은 빌리는 가족의 반대에 괴로워하고, 매사에 예민해진다.

시간은 흘러 크리스마스날, 

빌리는 아버지 앞에서 그동안 연습했던 춤을 선보이고,

아버지는 그런 빌리를 보며 발레를 시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가족들의 완벽한 지원이 없이는 어떠한 아이도 성공할 수 없죠. 

빌리를 완전하게 후원하시는 건가요? 아닌가요?"

"합니다. 네 물론 그렇죠."


어릴 때부터 조기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이의 선택보다 부모의 선택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어릴 때에 어머니의 극성에 피아노, 태권도, 미술, 웅변, 속셈, 영어 등등 많은 교육을 받았고,

중,고등학생 때에는 과외와 학원으로, 

공부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을만큼의 환경을 만들어 주셨다.

사실 내가 공부한 것은 내가 무엇이 되고자 공부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프로젝트에 따라 공부했다.

뒤늦게 알았지만, 

어머니는 내가 법조인이 되기를 소망하셨다.


아쉽게도 나는 지금 어머니의 계획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고,

만약 내가 다시 중,고등학생이 된다면 음악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게 음악을 배우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음악은 그 나이 때에 공부를 포기한 정신나간 애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그러니깐 어때요?"

"뭐가 어때?"

"런던이요."

"나도 몰라. 더럼 밖은 가본 데가 없어."

"정말 가본 적이 없어요? 

"왜 내가 런던에 가봤어야 하지?"

"수도잖아요."

"런던에는 탄광이 없어."

"맙소사! 그게 생각하는 전부예요?"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들 보다 월등한 아이로 성장하길 바란다.

조기교육은 그런 부모들의 소망의 산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조기교육의 특징은 범위가 좁고 한정적이다.

비슷하게 부모들의 소망도 범위가 좁고 한정적이다.

아이들은 많은 꿈과 넓은 세상을 뒤로한 채, 

부모들의 인위적인 계획에 따라 좁고 한정적인 꿈과 세상을 접해야 한다.

치열하고 경쟁적이며 인권은 친권으로 대체된다.


중학교에서 교사를 하고 있는 나는, 

가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게임든, 운동이든, 춤과 노래든, 공부든 난 너희들이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

내가 중,고등학생일 때보다 학업환경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OMR 카드에 늘 정해져 있는 반복된 답을 써야하고, 주관식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개성적인 행동은 학칙과 면학 분위기를 위해 제한되어야 하고, 

방과후 학생들은 운동장이나 학교, 집 밖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지정된 학원으로 제 시간에 가야한다.

방학인 지금도 학생들은 학교생활과 비슷한 학원생활을 하고 있다.

이것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몰래 몰래 준비한 학생들은,

정말 완벽하게 준비해서 자신의 부모 앞에서 뭔가 보여줘야, 

부모는 그제서야 못내 인정한다.


가끔 그런 아이의 모습에 더 화가 나셔서, 

아이를 말리거나 더 공부 시키는 부모들도 있다.

그런 부모들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의 삶이 부모의 삶인지 아니면 아이 자신의 삶인지를.

아이의 성공은 부모의 자랑이지만 성공은 상대적인 것이고, 

아이 역시 여러 면에서 부모와 상대적이다.


개인적인 결론으로, 

아이의 삶은 부모의 것이 아니지만 

부모는 아이의 삶을 지켜줄 유일한 존재이다.



"네가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니?"

"모르겠어요. 그냥 기분이 좋아요.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모든 것을 잊게 되고 그리고.. 사라져 버려요.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요. 내 몸 전체가 변하는 기분이죠. 마치 몸에 불이라도 붙은 느낌이예요.

전 그저 한 마리의 날으는 새가 되죠."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은 인류 역사상 없었다.

직업의 귀천은 늘 있었고, 직업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람이 평가된다.

누구나 안정된 직업을 원하고, 푸른 작업복 보다 양복을 원한다.

나는 가끔 '우리 사회의 실업률이 왜 오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조금 비극적인 일이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직장을 선택하여 취직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돈 많이 주고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해야 된다는 의지가 더 강하다.

그러니 실업률은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경제가 좋아져도 떨어질 수 없다.

다만 실업률과 상관없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맡겨진 하루에 열심으로 산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하는 것이 좋다.

젊었을 때 못 이룬 꿈들을 늙어서 하기에는 벅차다.

그렇다고 자신의 아이에게 자신이 못이룬 꿈을 이뤄달라고 부탁하기에는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부모와 자식 이전에 개인의 삶은 개인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의 스티븐 달드리(Stephen Daldry)에게 이 영화는 그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킹콩>과 <아버지의 깃발>의 제이미 벨(Jamie Bell) 역시 이 영화가 그의 첫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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