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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 "너만큼 겁은 나지만 같이 살아가야지. 살아가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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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 "너만큼 겁은 나지만 같이 살아가야지. 살아가자."

EAST-TIGER 2021. 3. 16. 10:48

처음으로 NETFLIX에서 본 영화다.

 

Noah Baumbach 감독의 영화를 처음으로 본다.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남녀가 이혼을 결심하고, 재산 분할과 양육권 분쟁을 하는 소재는 낯설지 않다. 아마 이 영화를 보면서 Robert Benton 감독의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가 생각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두 영화들은 결혼 이후에 생길 수 있는 일들, 특히 이혼과 양육권 분쟁을 소재로, 남녀 간의 애정이 결혼 이전과 이후에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묘사한다. 1979년작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이혼소송을 통해 여성인권 신장과 함께 가사노동에서 역할 변화 요구가 드러난다면, 2019년작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는 그 신장된 여성인권을 바탕으로 현대 부부가 어떻게 이혼을 하는가에 좀 더 집중한다.

 

"찰리는.. 날 인정하지 않았어요. 자기와 별개인 독립적 인격체로요." 

 

영화 <결혼 이야기>는 결혼한 남녀의 대부분의 표면적인 이혼사유인 성격차이를 고찰한다. "니콜은 뭘 모르거나 보지 못한 책이나 작품이 있어도 솔직히 말하지만 난 아는 척이나 본 지 오래된 척을 한다." 도입부에서 찰리와 니콜은 서로의 장점들을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서로 다른 장점들이 서로가 가진 성격과 성향의 차이들이다. 이 차이들을 바탕으로 이혼과 소송에 임하는 찰리와 니콜의 생각과 반응들이 다르다.

 

독선적이지만 찰리는 니콜과의 이혼보다 결혼생활을 계속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찰리의 매력은 굴하지 않는 성격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어떤 실패를 만나든 자기 뜻을 꺾지 않는다." 니콜은 가부장적인 면을 가진 찰리의 말과 행동들 때문에 상처들이 누적되었고, 이혼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둘의 갈등은 아들 헨리의 양육권을 누가 가질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서 절정에 이른다. "진짜 잘 놀아주는 엄마다. 놀다가 마는 일이 없고. 힘들다는 말도 안 한다." 찰리와 함께 지내던 뉴욕을 떠나 고향 LA에 돌아온 니콜은 더 의욕적으로 일을 하면서 헨리를 양육한다. 헨리도 찰리보다 니콜을 더 따르고 새로운 도시 LA에 잘 적응한다. 찰리가 이 둘을 또는 아들 헨리만이라도 다시 뉴욕으로 데려오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감정에 호소하려는 듯한 찰리에 맞서 니콜은 LA에서 이혼소송을 준비하고 찰리보다 먼저 변호사를 선임한다. "까다로운 가족문제에서도 언제나 정답을 안다." 양육권과 재산권 분쟁에 있어 니콜은 거의 모든 면들에 찰리보다 우세하고, 판단들과 그에 따른 말, 행동들 역시 자연스럽고 뚜렷하다. 이혼소송에 임하는 "니콜은 용감하다." 찰리도 뒤늦게 변호사를 선임하고 소송을 준비하지만 역부족이다. "찰리는 경쟁심이 강하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경쟁심에서 비롯되는 말과 행동들이 거칠어지고, 니콜 역시 그런 찰리의 변화에 물러서지 않는다. 결국 찰리와 니콜이 처한 상황들은 그들이 처음 의도하고 생각했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그들을 이끈다.   

 

니콜: "메리 앤을 사랑해?"

찰리: "아니, 그녀는 날 미워하진 않아. 당신은 날 미워했지."

니콜: "당신도 나 미워하잖아. 우리랑 일하는 여자랑 잤고."

찰리: "당신이 작년부터 잠자리를 거부했잖아! 그러니까 바람이 아니지!" 

니콜: "그건 바람이야!" 

찰리: "난 그럴 기회가 넘쳐났어. 자수성가한 20대 감독이었고 유명 잡지 표지를 장식했으니까. 잘 나갔고 여러 사람이랑 즐기고 싶었지만 참았어. 당신을 사랑했고 잃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땐 20대였고 즐길 기회도 놓치기 싫었지만 지나쳐 버렸어! 당신은 단기간에 많은 걸 원했고. 난 결혼할 생각도 없었어. 그건... 젠장! 난 놓친 게 많다고!"

 

"난 매일 눈뜰 때마다 당신이 죽길 원해! 헨리만 괜찮다는 보장만 있으면 당신이 병에 걸려 차에 치여 죽었으면 좋겠다고!"   

 

연애와 달리 결혼은 그 시작과 끝이 법적인 절차들로 이루어진다. 니콜과 찰리에게 아이가 없었다면 이혼은 좀 더 쉬웠을 것이다. 진정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깊은 고민들 끝에 결혼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충동적이고 감정적이었다는 것도 일찍 깨닫지 않았을까? "당신이랑 결혼했던 날 생각하면 스스로가 낯설 정도야! 그건 조혼이었다고!" 최종적으로 니콜과 찰리는 법적으로 이혼했고 니콜이 양육권과 함께 재산 분할에 있어서 찰리보다 조금 더 많은 비율을 받았지만, 몇 년 동안 그들은 그 법적 근거에 따라 헨리라는 "공"을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지금 니콜과 찰리는 헨리에게 있어서 좋은 어머니, 아버지다. "아빠 노릇을 즐긴다. 보통 사람들이 싫어하는 아이의 생떼나 밤에 깨는 것도 좋아한다." 둘 중 누군가 재혼을 하거나 새로운 아이를 낳는다면, 니콜, 찰리, 헨리는 지금과는 또 다른 감정으로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때도 니콜과 찰리는 헨리에게 좋은 어머니, 아버지일까? 아마 서로 간의 공놀이는 끝났을 것 같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다. 어느 순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아이 때문에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하거나, 아이의 양육권만 가지면 이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순간부터 결혼은 그 의미를 잃는다.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사랑의 방향이 점점 서로가 아닌 아이에게로만 향한다면, 객체인 아이가 주체인 부모의 삶을 결정한다. 아이는 사랑의 결과이지 사랑 그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했고 여전히 변함없다면, 아이가 있든 없든 그 이유만으로 결혼은 유지된다. 더 이상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혼사유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데 아이 때문에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불행이다. 정말 사랑하지 않거나 확실한 신뢰가 없다면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1+1이 2가 되면 좋겠지만, 1이거나 그보다 적다면, 결혼 생활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을 것이다.

 

긴 러닝타임(136분)이지만 지루하지 않다. Adam Driver, Scarlett Johansson, Laura Dern, Alan Alda 등 출연 배우들의 연기들이 훌륭하고, 특히 배우 Ray Liotta를 오랜만에 보았다. 인간의 삶에서 겪을 수 있는 결혼에 대해 심도 있게 묘사하는 Noah Baumbach 감독의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아내이자 배우, 영화감독인 Greta Gerwig이 그의 영향을 받았는지,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 <레이디 버드>에서 봤던 몇몇 장면들이 연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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