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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tion 日記/One Sweet Day

11월의 국화

EAST-TIGER 2014. 11. 8. 19:11


4월에 마트에서 국화를 구입했다. 

하국(夏菊)은 아닌 것 같은데 구입했을 때부터 개화가 진행 중이었다. 

좁은 화분에 비해 많이 자라던 국화들을 다른 화분들도 나누어 옮겨 심었고,

내가 사는 좁은 방을 국화 '밭'으로 만들겠다며 창 틀 이곳 저곳에 두었다. 

그리고 국화가 만개했을 때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서 절명(絶命)했다.

나는 만개한 국화를 보며 만개하지 못한 채 죽은 이름 모를 '꽃'들을 애도했다. 

한 여름에 나는 일부 성장한 국화들의 가지들을 집 주인의 정원으로 삽목했다.

뿌리가 없는 채 맨 몸으로 심겨진 가지들은 당연히 힘을 없이 늘어졌다. 


Frau Freude가 내가 물었다. 

"이것들이 정말 자라고 가을에 꽃이 필까요?" 

이미 정원에 많은 꽃들과 나무가 있고 가꾸어 본 경험이 있는 그녀가 내게 물었을 때,

나는 확신을 가지며 말했다. 

"그럼요, 당연히 그럴 겁니다"


그렇게 말해 놓고 불과 2-3달이면 가을이 온다는 사실이 나를 엄습했다. 

사실 삽목은 3-4월에 해야 했는데.. 그냥 자연의 섭리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창 틀에 두었던 몇몇 국화들은 너무 일찍 꽃봉오리를 만들어서 개화 중 잠들었고, 

너무 빨리 성장한 국화들은 좁은 화분 크기에 잎들이 말라갔다. 

그리고 어디서 왔는 지 모를 진딧물들이 잎과 줄기에 내려 앉아 괴롭혔다. 

정원에 삽목한 국화들 중에는 날아온 새들이 장난스럽게 쪼아대어 줄기가 뽑혀 있었다.

'꽃들의 시간은 지금 어디 쯤에 있는 것일까?' 

'꽃들에게 가을은 오고 있을까?'

나는 비바람이 칠 때마다 정원에 심겨진 국화들을 걱정했고, 

일조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내 방 창 틀의 국화들을 정성스럽게 가꾸었다. 


어느 덧 계절은 가을로 바뀌었다. 

정원에 있던 국화들은 꽃봉오리를 만들더니 10월 중순부터 개화를 시작했고, 

내 방에 있던 국화들은 10월 말부터 개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보니 정원에 있는 국화들은 완전히 만개를 했고,

방에 있는 국화들 역시 거의 만개를 했다. 

정원에서 자란 국화들은 줄기가 크게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꽃들은 거의 대국(大菊)처럼 자라 활짝 피었고, 

실내에서 자란 국화들은 줄기는 성장했지만 중국(中菊)처럼 피었다. 

국화가 만개했던 어느 날 Frau Freude가 내게 말했다. 

"당신을 통해 우리도 배우는 군요" 

팔십이 넘은 집주인의 말을 되새기며 하루를 보냈다. 


4월에 만개한 꽃이 지고 다시 꽃이 만개하는 11월 사이의 시간과 과정들은 

내게 무척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들이었다. 

그것은 나로 인한 고통보다는 

내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며 생각했던 작업들 속에 머물러 있었다. 

사람들 죽은 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졌고, 

나라 잃은 사람들의 시위들 역시 끊임없었다. 

'능력'을 경쟁시키는 것도 모잘라 '삶'을 경쟁시키고, 

경쟁에 살아 남아도 또 다른 경쟁들이 기다렸다. 

결국 그들에게는 죽음이 경쟁과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는 탈출구였다. 

그래서 그들은 '꽃'같이 태어나 '유기견'같이 죽었다.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던 '영웅'들은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도대체 '위로'와 '평안'이 어디있는 것일까? 


살아 있다는 것, 

살아 남았다는 것, 

그것이 과연 사람들에게 행복이자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결국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불행과 슬픔에 비례한다. 

허무한 종교들은 세상을 버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집중하며, 

현학적이거나 의미없는 말장난들과 몸짓들은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에 짧은 진통제를 놓아주고, 

잠시동안 '위로'와 '평안'의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상처는 여전히 성나있다. 


언제 수고하고 짐진 자들이 합당한 쉼을 누르며, 

심지어 일하지 않는 자들도 평안히 먹고 취할 수 있을까?

언제 시대에 빼앗긴 개인의 삶을 도로 찾아와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까? 

언제 '나'보다 '우리'를 더 사랑할 수 있을까?


불필요한 경쟁과 불법들에게, 

세상이 변해서 성격과 행동마저 변한 사람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원래 있던 자리와 모습로 돌아가라!"

그리고 나와 함께 이 국화를 보며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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